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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왕(1)
천지가 혼합이었던 시절.
하늘과 땅은 구분이 되지 않아 한덩어리로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개벽하니 하늘이 먼저 열리고 땅이 열리고 인간세상이 열려왔다.
갑자(甲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하늘과 땅 사이에 시루떡같이 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새 날이 시작되니 하늘에는 파란 이슬 땅에서는 까만 이슬 그 사이에서는 누런 이슬이 생겨 한 곳으로 흘러내렸다.
동쪽 하늘에는 파란 구름 서쪽 하늘에는 하얀 구름 남쪽 하늘에는 빨간 구름 북쪽 하늘에는 검은 구름 가운데에는 누런 구름이 뜨고 흘러 내린 물은 바다가 되었다.
동쪽 하늘이 열리며 샛별과 삼태성이 뜨고 서쪽 하늘에 태백성, 중앙에는 은하수에 직녀성과 견우성이 뜨고 남쪽에는 노인성, 북쪽에는 북두칠성이 떠올랐다.
하늘에는 해도 둘이 뜨고 달도 둘이 뜨니 낮에는 만민백성들이 뜨거워서 말라 죽고 밤에는 얼어 죽어 인적이 뜸해졌다.
천지왕이 영을 내리니 대별왕 소별왕이 천근이 나가는 활에 백근짜리 살을 메우고 앞에 오는 해는 살려두고 뒤에 오는 해는 쏘아 바다로 떨어뜨리고 앞에 오는 달은 놔두고 뒤에 오는 달은 쏘아 서해바다로 떨어뜨렸다.
이때부터 낮에는 해가 하나 밤에는 달이 하나 남아 백성들이 살기에 편하게 되었다.
하늘이 생기고 땅이 생기고 인간세상이 생겨가니 물과 나라가 생기고 신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은 곤륜과 같고 물은 황해수, 나라는 남만(南蠻)국도 아니고 북적(北狄)국도 아니고 모라(毛羅)국이 됐다.
우리나라 천하해동 조선 남해 절해고도 4백리라 탐라(耽羅)국이 생긴 것이다.
물은 보니 황해수요 산은 영주 한라산이었다.
숱한 오름들과 아흔아홉 골짜기가 생겨났는데 한 골이 부족하여 곰도 범도 못 나오던 섬이 됐다.
산천의 영기를 받아 모흥(毛興)굴[삼성혈]에서 을축 삼월 열사흗날 자시에 고을나가, 축시에 양을나, 인시에 부을나가 솟아났다.
고씨가 왕으로 등극할 때 땅을 갈라 일도(一徒) 성안은 고씨, 이도(二徒) 산방(山房)은 양씨, 삼도(三徒) 토산(兎山)땅은 부씨가 차지하고 도성(都城)에는 광양당, 산방(山房)리는 옥녀당ㆍ광정당, 토산(兎山)리는 토산당이 생겨 신들을 섬겼다.
하늘에는 옥황상제가 좌정하고 땅차지는 지부(地府)대왕, 산차지는 산신대왕, 물차지는 동해 용왕, 절은 석불님이 차지하고 인간세상은 명진국할머니와 총명부인,그의 아들들인 대별왕ㆍ소별왕이 차지했다.
석가여래ㆍ지장보살ㆍ천하 임정국대감ㆍ지하 김진국부인 녹아단풍자지명왕아기씨는 무신(巫神)으로 자리잡았다.
죽은 인간의 목숨을 차지한 것은 열명의 시왕이다.
첫번째는 진광(秦廣)대왕으로 도산(刀山)지옥을 다스렸고 둘째 초강(初江)대왕은 화탕(火湯)지옥, 세번째 송제(宋帝)대왕은 한빙(寒氷)지옥, 네번째 오관(五官)대왕은 검수(劍樹)지옥, 다섯번째 염라(閻羅)대왕은 발설(拔舌)지옥, 여섯번째 변성(變成)대왕은 독사(毒蛇)지옥, 일곱번째 泰山대왕은 거해(鉅骸)지옥, 여덟번째 平等대왕은 철상(鐵床)지옥, 아홉번째 도시(都市)대왕은 풍도(風塗)지옥, 열번째 전륜(轉輪)대왕은 흑암(黑暗)지옥을 다스렸다.
그 밑으로 지장대왕, 생불(生佛)대왕, 좌두(左頭)대왕, 우두(右頭)대왕, 동자판관, 천황차사 일직사자, 지황차사 월직사자, 인황차사 금부도사, 저승차사 이원사자, 이승차사 강림사자, 용왕국의 용궁사자, 상세경[농경신] 중세경 하세경, 일만팔천신들이 생겨났다.

『神들의 故鄕』연재에 들어가며
성서이야기를 제외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신화는 그리이스.로마의 신화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태양의 신 아폴론을 향하여 경배를 하거나 파르테논의 신전에서 엎드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기독교신앙의 영향으로 원시종교는 멸종되다시피 했으며 단지 문학작품과 예술속에서만 살아남아 왔다.
그러나 제주(濟州)에서는 자연발생적인 민간신앙이 아직도 존속하고 있으며 매해 1만명에 달하는 주민들이 마을마다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제물을 싸들고 「당(堂)나무」밑을 찾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곳 주민들이 몽매하기 때문에 시대에 뒤떨어진 「무속」 또는 「미신」에 혹하여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기독교 신학자들처럼 세계적인 힘을 갖지도, 이론적 무장을 하지도 못했을지는 몰라도 그와 꼭같은 신앙으로서의 의미를 인식하고 있으며 이 신앙은 오히려 수백년에 이르는 오랜 기간동안의 체제적인 억압을 이기며 지켜온 것으로서 하나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있다.
「고급」종교보다도 더 인간적이고 자연에 친화력을 가질 수 있을 뿐더러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신앙생활을 하며 현실과도 조화를 시켜나간다고 보는 것이 실상에 가까울 것이다.
단지 과학과 기계문명의 힘에 떠밀려 정서적으로 메말라 가면서 신앙으로서의 강력한 힘은 다소 퇴색하고 관습적인 성격이 어느 정도 득세를 하는 단계인 것으로 보인다.
신앙의 현장에서 구술되고 있는 각종 신들의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는 의식은 희박해졌으며 현대적 사고의 영향으로 최초의 신들은 상당히 추상화됐다.
그러나 인간의 나약함을 뛰어넘는 어떤 존재에 대한 의지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신앙은 다른 종교와 다를 바 없다.
이 신앙행위속에서 신화는 전승되고 변하며 끓임없이 생성되고 있다.
제의시간이 단축되는 경향때문에 -예전에는 보름씩하는 굿이 흔했었다.- 요즘 왠만한 굿판에서는 신화가 제대로 구송되지 않고 있어서 형태를 제대로 갖춘 신화를 찾아보기 위해서는 고서적을 뒤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채록된 제주(濟州)의 신화들은 기술자에 따라 전부 다르다.
큰 줄거리는 같으면서도 내용이 틀린가하면 신들의 이름조차도 뒤바뀐다.
심지어는 중국(中國)의 신화를 그대로 읊은 것까지 제주(濟州)의 신화로 채록됐으며 한정된 구술자로부터 채록하는 통에 본마다 여기저기 탈락한 부분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여기에서는 비교적 성실하게 채록된 본을 중심으로 현재 구송되는 신화를 보충하며 소개될 것이다.
지금까지 채록된 신화서적들중 많이 알려진 것은 1928년께 채록됐다는 고송(孤松) 문창헌(文彰憲)의 「풍속무음(風俗巫音)」과 일제(日帝)강점시대인 1937년 일본인(日本人) 적송지성(赤松智城)과 추엽(秋葉) 융(隆)이 같이 펴낸 「조선무속(朝鮮巫俗)의 연구(硏究)」가 있으며 진성기(秦聖麒)제주민속박물관장의 「남국(南國)의 무가(巫歌)」, 현용준(玄容駿) 제주대(濟州大)교수의 「제주도무속자료사전(濟州島巫俗資料事典)」등이 있다.
신화의 맨 앞부분에 나오는 개벽의 이야기는 육지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우주생성의 이야기로서 제주도(濟州道)신화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천지왕」은 채록본에 따라 「옥황상제」로 바뀌기도 하며 어떤 본에서는 동일시되기도 하고 또 다른 본에서는 동시에 등장,「천지왕」이 「옥황상제」의 하위 신으로 묘사된다.
신화의 구도상 「천지왕」이나 「옥황상제」나 신들중 가장 지위가 높은 신이고 천상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옥황상제는 다소간 추상화된 신이며 주민들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이 신화는 큰 굿의 첫 부분인 「배포도업침」에서 구송되고 있으며, 이 세계에 질서를 가져오는 신들의 이야기를 얘기함으로써 신화가 생성되던 당시의 도민들의 세계관을 엿보이고 있다.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는 동양적인 시간측정단위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태초의 시간임을 가리키고 있다.
신화의 내용으로 보아 세계의 형성은 신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된 것이라는 동양적 사고가 깃들어 있다.
이처럼 생긴 우주는 태양도 둘,달도 둘일 정도로 아직 혼돈의 상태이지만 신적인 힘에 의해 질서가 잡히며 이로 인해 신들도 사람들로부터 숭배받을 당위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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