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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왕(3)
해와달을 하나씩 떨어뜨려 세상을 살기좋게 했다는 대별왕·소별왕은 원래 신과 인간사이에서 탄생한 인간의 아들들이었다.
천지왕이 「쉬멩이」를 처벌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였다.
박우왕의 집에 들른 천지왕은 저녁밥상을 요구하였다.
저녁지을 쌀이 없어 박우왕의 딸 총명이가 쉬멩이집에 쌀을 빌리러 갔는데 쉬멩이는 모래가 반이 섞인 쌀을 한 되 빌려줬다.
밥을 먹다가 돌을 씹은 천지왕은 『쉬멩이는 역시 못된 놈』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날 저녁 천지왕은 총명이를 자기방으로 보내달라고 청했다.
박우왕이 탄식을 하노라니 총명이가 『저 방에 온 손님이 천지왕이 아닙니까. 천지왕보다 더 좋은 사위감이 어디 있습니까』하고 자진하여 천지왕의 방으로 들어갔다.
천지왕은 『나비가 꽃을 찾는 법이지 꽃이 나비를 찾는 법이 있느냐』하고 야단을 친 후 자신이 총명이 방으로 들어가 5일밤을 묵었다.
쉬멩이를 징치한 천지왕은 하늘로 올라가며 징표로 향나무빗 반토막과 박씨 하나를 두고 갔다.
총명부인은 아들 형제를 낳고 대별왕·소별왕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들이 나이가 들어 서당에 다니니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 정도로 똑똑했다.
시기한 아이들이 두 형제를 애비없는 자식들이라고 놀려댔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고 체근하니 어머니 총명부인은 『너희 아버지는 천지왕이다』 하고 향나무 빗과 박씨 하나를 내줬다.
3월 맑은 날에 박씨를 심으니 무성하게 줄이 벋어 하늘위까지 올라갔다.
두 형제는 9월9일 아침에 향나무 빗을 가지고 옥황으로 올라갔다.
넓은 하늘에서 길을 잃어 은하수가에서 노는데 잘익은 복숭아 나무가 있어 천도 2개를 따먹었다.
선녀들이 아이들을 발견하고 천지왕에게 데려갔다.
향나무빗을 맞춰보니 신기할 정도로 들어 맞아 천지왕은 자신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천지왕이 지상권을 아들들에게 넘겨주려고 하니 대·소별왕이 서로 이승을 차지하기 위해 다퉜다.
『형님, 우리 그리 말고 수수께끼풀기로 결판을 냅시다』
『좋다. 그러면 어떤 나무는 주야 평생 잎이 아니지고 어떤 나무는 잎이 지느냐』
『동백처럼 짧고 통통한 나무가 잎이 아니지고 속빈 나무가 잎이 지는 법입니다』
『모른 말 말아라. 푸른 갈대는 속이 비어도 잘만 푸르더라. 그러면 동산 위의 풀이 길겠느냐 구렁의 풀이 길겠느냐』
『삼·사월 봄비에 흙이 씻겨내리니 동산의 풀은 짧고 구렁의 풀은 길어지겠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연유로 사람의 머리털은 길고 발등의 털은 짧더냐』
도저히 형의 지혜를 따를 수 없었던 소별왕은 꾀를 내었다.
『설운 형님, 우리 그리 말고 서로 꽃을 심어 잘 키운 사람이 이승을 차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서 그리 하자』
둘이 꽃씨를 구하여 심어 놓으니 대별왕이 심은 꽃은 벌써 봉오리가 봉긋거리고 소별왕의 꽃은 필 기척이 없었다.
『형님, 볕도 따뜻하고 꽃이 피려면 한참 걸릴 터이니 한잠 자고 일어나십시다』
『그리하자』
대별왕이 잠이 든 사이에 소별왕은 넌지시 꽃을 바꿔쳐 버렸다.
깨어보니 형님 앞의 꽃은 아우 앞에 가 활짝 피어 있고 아우의 꽃은 형님 앞에서 시들어 있었다.
약속이 약속인지라 대별왕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설운 아우 소별왕아, 이승법을 차지해 들어서라마는 인간에 살인·역적 많으리라. 도둑 많으리라. 남자는 자기 아내 두어두고 남의 아내 우러러보기 많으리라. 여자도 남의 남편 우러르기 많으리라. 나는 저승법을 마련하마. 저승법은 맑고 청랑하리라』
소별왕은 해와 달을 쏘아 떨어뜨리고 이때부터 이승을 차지해 다스리고 대별왕은 저승을 다스리게 됐다고 한다.

미니해설
제주도의 개벽신화중 이 부분이 가장 복잡하며 채록본에 따라 모두 내용과 순서가 뒤바뀌어 있다.
총명부인이 박우왕의 아내로 묘사된 본이 있는가 하면 딸로 나와있는 곳이 있다.
또 총명부인이 아니라 총명부인의 딸인 「서수아미」가 천지왕과 결연하는 것으로 된 본도 있다.
박우왕이라는 존재가 아예 나오지 않는 본도 있다.
그런가 하면 지상권투쟁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이 대별왕인 것도 있고 소별왕인 것도 있다.
또 대별왕이 이기는 것으로 묘사한 본도 있고 소별왕이 이기는 것으로 된 본도 있다.
저희들끼리 싸움을 하여 차지하는 것으로 나오기도 하고 천지왕이 분배해 주는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본을 통해 공통된 것은 생명에 대한 이해력과 꽃을 잘 피울 수 있는 능력이 지상권을 차지할 자격유무를 가린다는 점이며 결국은 아우인 소별왕이 간계를 써서 이승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천지왕이 지상에 체류한 기간으로 보아 대별왕과 소별왕은 쌍둥이이므로 형·아우의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해와 달을 떨어뜨리고 세상에 질서를 가져오는 이 형제들이 투쟁과정에서 순서가 역전됨으로써 인간사가 불안해 진다.
결국 이 신화의 목적은 질서 가운데서도 아직 무질서의 여지가 남아 있는 사회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에 뿌리를 내리고 지상에서 꽃을 피워 하늘까지 뻗어 올라간 거대한 나무의 상징은 전세계적으로 발견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우주목(宇宙木)」이라고 하고 도내 일부 채록본에서는「음양목(陰陽木)」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나무를 통해서 인간들은 신의 권능을 인수한다.
해를 떨어뜨리는 것은 일종의 혁명으로서 신적인 질서에서 인간적인 질서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원시의 제정일치사회가 해체돼 부족국가단계로 접어드는 상황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전편과 이 편을 연계해 생각해 보면 제정일치시대의 지도자인 천지왕은 오래살아 경험이 많고 세력이 커진 「쉬멩이」를 제압하는데 역부족을 느낀다.
이를 눈치챈 총명부인이 천지왕과 결탁하여 「쉬멩이」를 제거하고 아들인 대·소별왕에게 권좌를 물려준다.
실제로 일본인(日本人)의 채록본인 「조선무속의 연구(朝鮮巫俗의 硏究)」에서는 소별왕이 지상을 차지한 후 「쉬멩이」를 능지처참하여 모기·파리·빈대·각다귀등이 생겨났다고 말하고 있다.
「쉬멩이」를 처벌했던 것은 결국 태양의 상징인 불의 신 「해명이」인데 소별왕은 바로 그 태양을 쏘아 떨어뜨린 존재다.
소별왕이 권좌에 오르려면 걸리적거리는 존재인 형 대별왕을 제거할 수 밖에 없다.
소별왕은 간계를 써서 대별왕을 죽이고 성대한 예식으로 땅에 파묻고 나서 『대별왕은 지하로 내려가서 사후의 세계를 지배하게 됐으니 너희들은 내 말을 따르라』고 선언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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