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4<

제주섬 창조 거대한 여신

설문대할망
속옷 만들어주면 다리 놓아주마


[설문대할망이 오셨다!]
"제79회 전국체육대회의 성화점화를 돕고있는 설문대할망"

4백리 절해고도 제주도(濟州島).
돌이 많고 땅이 척박해 곡식은 안되고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지붕이 날아가며 며칠만 가뭄이 들어도 사람들이 굶어죽던 유배의 섬.
그러면서도 경관만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 기구한 섬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옛사람들은 가난했지만 거대하고 당당한 여신 「설문대」가 이 섬을 만들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어데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설문대는 어느 날 망망대해 가운데 제주섬을 만들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치마폭에 가득 흙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찢어진 치마구멍 사이로는 끊임없이 흙부스러기들이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에 한라산은 하늘에 닿을 듯 높아졌다.
치마폭 사이로 떨어진 흙들은 군데군데 모여 나즈막한 오름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산을 만들다 보니 너무 높아 봉우리를 꺾어 던졌더니 안덕면 사계리로 떨어져 산방산이 되었다.
설문대는 얼마나 거구였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제주시앞 관탈섬에 걸쳐졌다.
빨래를 할 때면 손은 한라산 꼭대기를 짚고 관탈섬에 빨랫감을 놓아 발로 문지르며 빨았다.
또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오른쪽 다리는 서귀포앞바다 지귀섬에 디디고 왼쪽 다리는 관탈섬에 디뎌 우도를 빨래판으로 삼아 빨래를 하기도 했다.
가난한 여인 설문대는 속옷이 없어 제주 백성들에게 『속옷을 한 벌 만들어 주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주마』하고 약속했다.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명주를 모았으나 아흔아홉동(1동은 50필)밖에 모을 수 없어 속옷을 지어주는데 실패했다.
결국 제주(濟州)는 섬으로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이때 설문대가 다리를 놓던 흔적이 조천(朝天)읍 조천(朝天)리와 신촌(新村)리 바닷가에 바위섬들로 남아 있다.
외로운 설문대에게도 배필이 생겼다.
역시 허우대가 큰 「설문대하르방」이었다.
두 거구가 사느라니 작은 섬에 먹을 게 없어 노상 걱정이었다.
하루는 둘이 합심하여 물고기를 잡아먹기로 했다.
설문대할망은 치마를 벗고 성산(城山)읍 신양(新陽)리 「섶지코지」 앞바다에 들어앉고 하르방은 우도(牛島)쪽으로부터 고기몰이를 했다.
하르방이 거대한 물건을 꺼내 바다를 휘휘 저으니 놀란 고기떼들이 섶지코지쪽으로 도망가다가 다리를 벌리고 앉은 설문대 할망의 하문(下門)속으로 들어가 잡혀 그 날의 요기거리가 됐다.
이런 연유로 섶지코지는 「설문대코지」라고 불리게 됐다.
몸집이 크니 정력이라고 떨어질 리 없었다.
우도(牛島)는 원래 따로 떨어진 섬이 아니었다고 한다.
설문대할망이 성산(城山)읍 오조(吾照)리 식산봉과 성산(城山)리 일출봉(日出峯)에 양다리를 걸치고 앉아 오줌을 싸자 육지가 패이며 바다가 그 사이로 들어와 섬이 생겼다.
얼마나 오줌줄기가 셌는지 바다가 깊이 패여 성산(城山)과 우도(牛島)사이 바다는 물살이 유난히 빠르다.
요즘도 배들이 이 부근에서 난파당하면 거센 조류에 밀려 일본(日本)의 대마도까지 흘러가기 일쑤다.
설문대부부에게는 오백명의 건장한 아들들이 있었다.
모두 한라산을 누비며 사냥으로 끼니를 이어 가고 있었다.
어느 날 설문대할망은 아들들에게 먹일 죽을 끓이고 있었다.
5백명에게 먹일 죽이라서 엄청나게 큰 솥에서 끓일 수 밖에 없었다.
할망은 솥전에 올라서 가래로 죽을 젓다가 발을 헛디뎌 뜨거운 죽 속에 빠지고 말았다.
저녁에 돌아 온 형제들은 잘 익은 죽을 먹으며 『오늘은 유난히 맛있다』고 아우성이었는데 막내아들만은 어머니가 안보이는게 이상해 죽을 먹지 않았다.
형제들이 죽을 다 먹고나자 밑바닥에서 사람뼈가 나왔다.
그때서야 형제들은 어머니가 솥에 빠져 죽은 줄 알게 됐다.
『어머니의 살을 먹은 형제들과는 같이 살 수 없다』 막내아들은 서귀포 삼매봉(西歸浦 三梅峰) 앞바다로 내려가서 슬피울다가 「외돌괴」가 됐다.
나머지 형제들은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 「오백장군」이 되었다.
한라산 영실기암(漢拏山 靈室奇岩)에는 설문대할망의 죽음에 얽힌 이런 슬픈 사연이 얽혀 전해지고 있다.
막내가 따로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말로는 「오백장군」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바위가 4백99개 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모계(母系)사회 거인 여신(女神)에 대한 원초적 신앙형태중 하나

제주도(濟州島)를 창조한 거대한 여신 설문대에 관한 이야기는 도내 어느 곳에서나 발 견되고 있다.
섬사람들은 무엇이든 크거나 괴이하게 생긴 것은 설문대와 연관지었다.
성산포(城山浦)에는 일출봉(日出峯)기슭에 촛대모양을 한 기이한 돌이 있다.
사람들은 이 돌이 설문대할망이 바느질을 할 때 등잔을 올려놓았던 돌이라 하여 「등경돌」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 제주(濟州)시 한천(漢川)인근에는 족두리모양을 한 큰 바위가 있어서 주민들이 이는 설문대가 쓰던 모자로서 빨래를 하려고 고개를 숙이다 머리에서 떨어졌다고 전하고 있다.
웅장하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한 이 거대한 여신의 상징은 어데서 비롯된 것일까.
서구의 신화에서 거인족은 신의 시대와 인간의 시대사이 과도기에 나타나는 중간자이다.
정상적인 인간들의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 제거돼야 했던 비극의 존재들이다.
아들들에 의해, 본의든 아니든, 죽임을 당하는 설문대신화의 구도도 이와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창조의 여신「설문대」에 대한 이야기는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으나 제주(濟州)의 다른 신들처럼 일반 굿의 현장에서는 구송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도내 마을들에서는 이 「할망」에 대한 신앙형태가 곳곳에 산재해 있는 것이 발견되고 있다.
설문대는 「선문대」「설명뒤」「세명뒤」「세명주」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표선(表善)면 표선(表善)리의 당(堂)신화에서는 『오백장군을 낳은 「세명주」할망이 표선(表善)리 「당캐」로 내려와 「할망당」신이 되고 아들들도 신이 됐다』고 전하고 있다.
또 구좌(舊左)읍 송당(松堂)리 본향당에는 「제주도(濟州道) 당신(堂神)들의 시조」라는 「금백조」할망보다 먼저 좌정한 「세명주」할망이 신앙의 대상중 하나이다.
「할망」에 대한 도민들의 신앙은, 세월이 흐르며 체계화된 현재의 민간신앙이전에 보다 원초적인 신앙형태중 하나가 아니였는가 추측되고 있다.
이 신화는 모계사회에서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여신에 대한 신앙이 남성중심사회로 이전되며 변질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어머니를 죽 쒀 먹은 아들들은 그때까지 섬전역을 장악하고 있던 어머니의 전권을 인수하고 그 후 제주도(濟州島)각지에 흩어져 고려(高麗)말께 창궐했던 한라산신(漢拏山神)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처럼 거대하고 뛰어난 생산력을 지닌 여성성으로부터 제주(濟州)와 제주(濟州)사람들은 탄생했다.
할망이 창조한 이래 육지로부터 고립된데다 생활의 어려움과 궁핍을 겪을 수 밖에 없던 제주도(濟州島)는 세월이 바뀌어 각광받는 관광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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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7th November,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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