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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종단(胡宗旦)(1)
옛날 탐라(耽羅)에서는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쳐 날아다니는 아기장수들이 심심치 않게 태어났다.
이 소문이 점점 퍼져 나가 중국(中國)까지 흘러 들어갔다.
중국(中國) 송(宋)나라의 왕이 지리서를 펼쳐 놓고 보니 고려(高麗)의 지기(地氣)가 심상치 않았다.
그 중에서도 탐라(耽羅)는 걸출한 인물이 많이 날 지형이었다.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중국(中國)이 위태로울 판이었다.
왕은 복주(福州)태생의 뛰어 난 풍수사 호종단(胡宗旦)을 불러 탐라(耽羅)로 파견했다.
『조선(朝鮮)이 배 형체라면 탐라(耽羅)는 닻가지 모양이다. 배라는 것이 항해하려면 닻을 거둬야 할 것인즉 탐라(耽羅)로 먼저 가서 지맥·물혈을 끊어라. 높은 지맥은 깎아 내리고 굽이 친 물은 터서 장부 하나 나지 못하도록 말려 버려라』
이것이 호종단(胡宗旦)이 제주(濟州)로 오게 된 연유였다.
호종단(胡宗旦)의 눈은 명의(名醫)가 사람의 뱃속을 꿰뚫어 보아 병을 알 듯 땅을 들여다 보면 어느 물길이 어데로 흐르는지 훤히 보이는 신안(神眼)이었다.
더욱이 그는 물혈을 찾는 커다란 개를 데리고 제주(濟州)에 상륙했다.
동쪽 구좌(舊左)읍 종달(終達)리경에 상륙한 호종단(胡宗旦)은 『이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종달리외다』
『무엄하게 내 이름을 닮아? 이곳부터 물혈을 뜨자』
호종단(胡宗旦)은 대번에 이곳 속칭 「물징거」샘의 혈을 따버렸다.
펑펑 흐르던 물은 갑자기 말라버렸다.
종달(終達)리 은월봉 인근 속칭 「대머들」에서 이 물에 의지해 살던 마을 사람들은 샘이 말라버리자 해안으로 이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종달(終達)리에서 물혈을 뜨기 시작한 호종단(胡宗旦)은 차츰 서쪽으로 가면서 마을마다 쓸만한 샘물은 모두 말려버렸다.
호종단(胡宗旦)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샘물은 없었다.
이러다가는 제주(濟州)에 있는 샘물들이 모두 말라버릴 것 같았다.
표선(表善)면 토산(兎山)리에는 「거슨새미」와 「노단새미」라는 두 샘이 있었다.
같은 구멍에서 나오는 생수였으나 한 줄기는 한라산(漢拏山)쪽으로 거슬러 흐르고 또 한 줄기는 오른쪽으로 갈라져 바다로 흘러내리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어느 날 이 샘물 인근의 「너븐 밭」에서 한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데 홀연히 아리따운 처녀가 나타나 간청을 했다.
『저 거슨새미 물을 떠다가 길마밑에 숨겨 주십시요』
농부는 영문을 몰랐으나 어차피 점심을 먹으려면 물을 마셔야 할 것이었다.
놋그릇에 물을 떠다가 길마 밑에 놓고 볕이 들지 않도록 우장을 씌워 두었다.
잠시후 부리부리한 사내가 개를 앞세우고 밭으로 다가왔다.
『이 마을 거슨새미와 노단새미 물이 어디 있소』
『저 아래 가서 찾아 보시오』
호종단(胡宗旦)이 물가로 내려가 찾아봤으나 물은 이미 말라 있었다.
『이상타. 여기가 틀림 없는 것 같은데…』
당황한 호종단(胡宗旦)은 지리서를 다시 꺼내 살펴보았다.
책에는 샘의 이름이 어느 새 「고부랑 나무 아래 행기물」이라고 바뀌어 있었다.
『고부랑 나무 아래 행기물이라는 게 있소?』
『허 살다보니 별 이름 다 듣겠군. 난 그런 거 모르오』
그제서야 나그네가 풍수가라는 것을 눈치 챈 농부는 딴청을 부렸다.
고부랑나무라는 것은 소의 길마를 얘기하는 것이고 행기물이라는 것은 놋그릇에 담긴 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신통한 역술서는 농부가 물을 떠서 숨겨 놓으리라는 것까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호종단(胡宗旦)은 고부랑나무라는 것도 행기물이라는 말도 알아 먹지 못했다.
신통한 호종단(胡宗旦)이었지만 땅속만 들여다 볼 줄 알지 그릇에 담긴 물은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호종단(胡宗旦)이 주의를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그의 개가 물냄새를 맡고 킁킁거리며 소 길마 쪽으로 다가갔다.
겁이 덜컥 난 농부는 『이 놈의 개가 내 점심을 먹으려는구나』하고 몽둥이질을 해 개를 쫓아버렸다.
끝내 샘을 찾지 못한 호종단(胡宗旦)은 『쓸모없는 책이로고』하면서 지리서를 찢어 버리고 이 마을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거슨새미와 노단새미 물길은 끊어지지 않았다.
농부에게 물을 떠다 놓도록 부탁한 것은 두 샘의 정령(精靈)이었다.
책을 찢어 버렸기 때문에 이후로는 물혈을 뜨지 못했다.
이때문에 제주(濟州)에서는 이 마을 동쪽까지는 모두 샘이 말라버렸으나 이 마을 서쪽으로는 아직도 샘물이 많이 난다고 한다.
호종단(胡宗旦)의 탐혈은 여기에서 그쳤으나 이때 제주도(濟州道)의 물혈은 많이 끊겨버렸다.
제주(濟州)시 병문천 인근의 두천(斗泉)은 그 모양이 말과 같이 생겼다 해서 「말샘」이라고 했다.
이 물을 마시면 능히 1백보를 날아갈 수 있었다고 하는데 호종단(胡宗旦)이 그 영기(靈氣)를 눌러 버려 없어졌다고 한다.
호종단(胡宗旦)은 떠놓은 물을 가지고 가다가 한림(翰林)읍 협재(挾才)리 앞바다에서 주머니끈이 떨어져 쏟아졌다고 한다.
또 제주(濟州)시 산지(山地)에서는 배를 타고 나가려다가 물에 풍덩 빠져버렸다.
그래서 산지천(山地泉)의 물은 아직도 콸콸 쏟아지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미니해설
호종단(胡宗旦)에 관한 이야기는 설문대할망에 대한 이야기처럼 전도에서 발견되고 있다.
서로 자기 마을의 샘이 바로 「고부랑나무 아래 행기물」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직접 연관되지 않은 주민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호종단(胡宗旦)에 대한 내용은 주로 「고부랑나무 아래 행기물」에 관련된 것으로서 기지를 발휘해 물혈을 지켜낸다는 내용이다.
서귀포(西歸浦)시 서홍(西烘)동에서는 이 마을 「지장샘」이 이야기속의 행기물이라고 하고 어떤 지역에서는 제주(濟州)시 화북(禾北)동의 「행기물」이 그렇다고 한다.
또 영평(寧坪)동의 「수세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또 물의 정령도 가지 가지인데 백발노인이 나타나는 곳이 있는가하면 마을에 따라 노파[물할망]나 청의(靑衣)동자가 나타나는 곳도 있다.
모두 마을의 상황이나 전승자에 따라 달라진 변이형태로 보인다.
지기(地氣)를 압(壓)한다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이외에도 정신적인 식민화의 효과를 가져온다.
이 신화는 완강하고 교활한 외세에 저항하는 도민들의 치열한 투쟁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전편에서 호종단(胡宗旦)이 탄 배를 삼성신(三姓神)[또는 한라산신(漢拏山神)]이 격파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신화가 현실과 어느 정도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화에서 나타나듯 섬의 동쪽지역은 물이 많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쪽은 비교적 물이 풍부한 편이다.
또 종달(終達)리는 신화에 나오듯 원래 「대머들」에 설촌했으나 수백년전에 해안으로 이주했다.
호종단(胡宗旦)은 주민들간에 고종달로도 불리는 인물로서 고려(高麗)때 실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화가 가리키는 것은 모든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제주(濟州)의 정신은 살아 남았으며 그 정기는 고려(高麗)나 중국(中國) 못지 않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삼성신(三姓神)이나 한라산신(漢拏山神)과 관련있는 점, 또 다른 신화들과 마찬가지로 「사서(史書)로 기록되기 이전의 역사의 전승」이라는 성격을 내포한 점에서 신화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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