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14<

″어느집 자손인데 여기 왔느냐″

꽃감관(3)
꽃감관 ″이 꽃으로 원수갚고 어머니살려 오라″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길을 잃어 헤매던 할락궁이는 헌집을 고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이 어느 쪽입니까』
『연 삼년을 우리와 같이 집을 지으면 말해 주마』
꼬박 3년을 일한 할락궁이가 다시 물었더니 그들이 말했다.
『가다 보면 발등에 차는 물이 있을 것이다. 그 물을 지나면 다시 오금까지 오는 물이 있을 것이다. 또 잔등까지 물이 차고 목까지 차 올라도 뒤를 돌아보지 말고 건너가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다』
과연 물이 점점 차 올라 목까지 찼으나 할락궁이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강을 건넜다.
강 건너에는 일곱 마리 까마귀가 앉아 울고 있었다.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이 어디냐』
『벌레를 잡아 주면 가르쳐 주마』
할락궁이가 벌레를 잡아 주니 배불리 먹은 까마귀들이 『가다 보면 세 선녀가 보일 것이니 물어 봐라』하고 말했다.
아니나다를까 곧장 가다 보니 세 선녀가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웬 선녀들이 울고 있습니까』
『우리는 옥황의 선녀들인데 죄를 지은 대가로 깨어진 동이로 물을 길어오라 하니 긷지 못해 울고 있습니다』
할락궁이가 들판에 있는 정동 덩굴을 걷어 광주리를 만들고 송진으로 구멍을 메워 물을 긷게 해주니 선녀들은 고마워하며 길을 가르쳐 줬다.
서천꽃밭에는 넓고 맑은 광청못이 있었다.
아이들이 이 연못에서 물을 길어다 꽃밭에 주고 있었다.
살아서 놋그릇으로 밥을 먹은 아이는 놋그릇으로, 사기그릇으로 밥을 먹은 아이는 사기그릇으로, 바가지에 밥을 떠 먹던 아이는 바가지로, 채롱에 밥을 먹던 아이는 채롱으로 물을 뜨고 있었다.
놋그릇으로 물을 긷는 아이는 손이 시려워 울었다.
사기 사발을 들고 다니는 아이는 그릇이 땅에 떨어져 깨어져 울었다.
바가지로 물을 뜨는 아이는 곧잘 떴지만 대나무 밥채롱으로 물을 뜨던 아이는 물이 좌르르 좌르르 새 버려 울고 있었다.
광청못가의 버드나무 가지 위에 올라간 할락궁이는 가지를 꺾어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고 연못으로 떨어뜨렸다.
아이들이 그 물을 길어다가 꽃밭에 주니 꽃들이 시들어 갔다.
『어쩐 일로 꽃들이 시들어 가느냐』
꽃감관이 화를 벌컥 내니 아이들이 『어떤 총각이 버드나무 가지 위에서 연못으로 피를 떨어뜨리고 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할락궁이를 부른 꽃감관은 『귀신이냐 사람이냐』하고 물었다.
『귀신이 피를 흘릴 리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느 집의 자손인데 여기까지 왔단 말이냐』
『어머니는 원앙부인, 아버지는 사라도령으로서 할락궁이라고 합니다』
『징표는 있느냐』
빗 반쪽을 꺼내어 맞춰 보니 꼭 들어맞았다.
할락궁이를 껴안은 꽃감관이 물었다.
『네가 올 때 발등에 닿은 물이 없더냐』
『예, 있었습니다』
『그 물은 네 어머니가 처음 매다짐을 받을 때 흘린 눈물이다. 오금에 찬 물이 없더냐, 그 물은 두 번째 매다짐을 받을 때 흘린 눈물이다. 잔등에까지 온 벌건 물은 네 어머니가 죽을 때 흘린 핏물이다』
울고 난 꽃감관은 할락궁이를 꽃밭으로 데려가서 뼈 오를 꽃, 살 오를 꽃, 피 오를 꽃, 오장육부 기를 꽃, 환생꽃, 웃음꽃, 싸움꽃, 멸망꽃, 열 가지 꽃을 주고 다시 세상으로 내려보냈다.
『이 꽃으로 원수를 갚고 어머니를 살려 오되 셋째 딸은 죽이지 말고 살려서 데려오너라』
할락궁이가 다시 세상으로 내려오니 만년장자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 죽일 듯이 덤벼들었다.
『죽기 전에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무엇이냐』
할락궁이가 품속에서 웃음꽃을 꺼내 휘두르니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다시 싸움꽃을 꺼내니 모두 물어뜯으며 싸움을 했다.
마지막으로 멸망꽃을 휘두르니 다 죽고 말았다.
겁이 나 숨어 있던 셋째 딸에게 어머니 간 곳을 물으니 대나무 밭을 가르쳤다.
어머니는 없어지고 뼈만 살그랑하니 남아 있었다.
이마에서는 동백나무가 자라고 배꼽에서는 오동나무가 컸다.
분노한 할락궁이는 셋째 딸마저 죽이고 말았다.
뼈를 모아 놓은 할락궁이가 일곱 가지 꽃을 꺼내 놓고 종나무 회초리로 세 번을 치니 어머니가 부시시 일어났다.
『아이고 봄잠이라 오래도 잤구나』
그간의 고초도 다 잊은 듯 건강해진 어머니에게 할락궁이가 물었다.
『어머니 이마에 동백나무가 자라고 배꼽에 오동나무가 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동백나무에 열매는 기름을 빼서 여자 머리에 바르면 좋고 오동나무는 잘라다가 어머니가 죽은 아들이 방장대로 쓰라는 뜻이다』
원앙부인과 할락궁이가 서천꽃밭으로 들어가니 원앙부인은 저승으로 온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어 아이들의 혼을 돌보게 됐다.
15세 이전에 죽은 혼은 이 꽃밭으로 올라가게 됐다.
할락궁이는 셋째 딸을 살려서 오라는 꽃감관의 말을 안 들었기 때문에 서천꽃밭에서 쫓겨나 구삼승할망의 아미도령차사(죽은 아이의 혼을 데려가는 차사)가 됐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육신과 함께 천국″ 기독교 내세관(來世觀) 유사

제주도(濟州島)의 신화를 만들어 낸 뛰어 난 작가들은 이 부분에서 다소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저승을 찾아 갈 수 있는지 그럴듯한 줄거리를 제시하지 못한 것 같다.
이 때문에 할락궁이가 서천꽃밭으로 가는 이야기는 본마다 제대로 나타나 있지 않거나 모두 다르게 묘사된다.
「풍속무음」본에서는 단순히 『어머니의 혼이 인도했다』는 얘기만 하고 있고 「남국의 무가」나 「제주무가집」은 『점쟁이에게 물었다』고 처리한다.
여기에서는 가장 오랜 본인 「조선무속의 연구」를 따랐다.
꽃감관의 신화에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서천강」의 모습이 묘사된다.
이 강은 눈물과 피로 돼 있으며 강가에는 죽음의 차사인 까마귀들이 날아다니고 억울한 영혼들이 떠돌고 있다.
사람은 죽어서만 이 강을 건널 수 있다.
『목에까지 잠기는 물을 건너야 한다』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서천꽃밭에 물을 주는 어린이들은 살아 있을 때의 습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어린이들이라도 살았을 때의 업(業)은 죽은 후까지 이어진다.
어린이들을 너무 잘 대해 주어도, 또는 반대로 학대를 해도 죽어서까지 고생이 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천꽃밭은 육체와 함께 가는 곳이다.
어머니는 되살려서 데려갈 수 있었고 만년장자의 셋째 딸은 죽었기 때문에 가지 못한다.
『육신과 함께 천국으로 간다』는 기독교의 내세관과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신화를 전승하는 제주도(濟州島)의 심방들은 이 속에서 꽃들의 종류를 선보인다.
서천꽃밭에는 이처럼 영험한 꽃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굿을 할 때는 이 꽃밭에서 꽃을 훔쳐다가 죽어 가는 아이의 생명을 살리거나 운명에도 없는 아이를 잉태시킬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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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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