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15<

“내 배꼽밑 선그믓 덕에 잘삽니다”

가믄장아기(1)
영특한 막내딸 대답에 “괘씸하다” 내쫓아

옛날에 웃마을에 강이영성, 아랫마을에 너설부인이 살았다.
웃마을 강이영성이 아랫마을로 빌어먹으러 가고 아랫마을 너설부인이 웃마을로 빌어먹으러 올라오다가 중간에서 만났다.
길가의 돌도 연분이 있다고 두 남녀는 『얻어먹는 일도 같이하면 좋겠다』고 하여 부부가 됐다.
첫 아이를 배어 딸을 낳았으나 먹을 것이 없어 허기져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불쌍히 여긴 마을 사람들이 은그릇에 가루를 타다가 애엄마를 먹여 살리니 아이 이름은 「은장아기」라고 했다.[제주(濟州)에서는 해산후 아기 엄마에게 메밀가루를 물에 타 먹였다고 한다]
둘째 아이를 배어 또 딸을 낳으니 이번에는 사람들이 놋그릇에 가루를 타서 먹여서 아이 이름을 「놋장아기」라고 지었다.
세번째도 또 딸을 낳았는데 사람들이 「이번에는 모른 척할까」하다가 검은 나무 바가지에 가루를 타서 먹였다.
셋째 딸 아이는 그래서 「가믄(검은)장아기」라고 불렀다.
가믄장아기가 태어 난 후부터 집안 살림이 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낳으면서 시작한 품팔이 일도 시세가 나더니 일어서도 돈, 앉아도 돈, 누워도 돈, 엎드려도 돈이 들어왔다.
한 뙈기 두 뙈기씩 늘어 난 논·밭은 천섬지기 만섬지기가 됐다.
소도 아홉,말도 아홉, 종도 아홉이 되고 궁궐 같은 집을 지어 처마 네 귀에 풍경소리깨나 울리며 살게 되었다.
비오는 어느 날이었다.
마음이 느긋해진 강이영성은 열 다섯이 넘은 딸들을 불러다가 문답 놀이를 했다.
『큰딸 아이야, 너는 누구 덕에 잘 먹고 잘 사느냐』
『어머님 아버님 덕입니다』
『그래 착하구나』
『샛딸 아이야, 너는 누구 덕에 잘 입고 잘 사느냐』
『부모님 덕입니다』
『작은 딸 아이야, 너는 누구 덕에 호강하느냐』
『부모님 덕도 있지만 하늘님·땅님 덕이요, 내 배꼽 아래 선그믓 덕으로 사옵니다』
『이런 괘씸한 년이 있나. 당장 나가거라』
가믄장아기는 검은 암소 한 마리에 입던 옷과 먹을 것을 싣고 느진덕 정하님(여자 하인)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
야단을 쳐 막내딸을 보내 놓은 부부는 아무래도 섭섭하여 큰 딸에게 말했다.
『큰 딸아이야, 가믄장아기가 정말 떠나가는지 보고 와라』
큰 딸아기는 대문 앞 말팡돌(말 탈 때 디디는 돌) 위로 올라서서 얘기했다.
『설운 동생아, 어머니 아버지 때리러 나오니 빨리 도망가라』
『설운 형님, 청(靑)지네 몸으로나 환생[(還生,변신)]합서』 말팡돌 아래로 내려선 은장아기는 푸른 지네가 돼 버렸다.
부부가 또 샛딸아기를 보내니 집어귀 거름더미 위에 올라선 샛딸아기가 말했다.
『설운 동생아 부모님이 죽이러 온다 빨리 도망가라』
『설운 샛 형님, 용달버섯 몸으로나 환생합서』
가믄장아기의 저주를 받은 샛딸아기는 용달버섯(독버섯)이 돼 버렸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막내를 질시하던 두 자매는 벌레와 버섯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딸들이 아무도 돌아오지 않자 당황한 강이영성과 너설부인은 딸들을 찾으러 내닫다가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모두 소경이 돼 버렸다.
눈이 멀어 집안에 앉으니 그 많던 재산도 모두 없어지고 두 소경이 한 막대를 짚고 나서서 다시 얻어먹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던 가믄장아기는 눈물이 앞을 가려 길을 잃고 말았다.
이 산 넘고 저 산 넘어 벌판을 지나 헤매노라니 해는 떨어지고 달은 솟지 않았다.
인적을 찾아 헤매던 중 다 쓰러져 가는 비슬이 초막이 보여 하룻밤 신세를 지고 가기로 했다.
산중에서 마(칡)을 캐어먹고 사는 마퉁이 집안이었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운명의 신(神) 「가믄장아기」 인과응보의 법칙 대변

이 신화는 전상신, 즉 운명의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제주(濟州)에서 「전상」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이 말은 제주도(濟州島)고유의 개념인 것으로 보이며 불교적 의미의 「전생(前生)」과 음과 뜻이 비슷하다.
이 말속에는 운명·팔자·업(業)등의 의미가 모두 녹아 있다.
불교의 인과응보(因果應報)사상의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업에 따라 직업도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가믄장아기는 직업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가믄장아기가 태어나면서 잘 살게 된 이유가 왜 「배꼽 밑에 선그믓」이 있기 때문인지는 분명치 않다.
덧없이 오만해진 부모를 비꼬는 뜻도 포함돼 있겠지만 아마 『배꼽 밑에 세로 금이 뚜렷이 난 여자는 잘 산다』는 속설에서도 비롯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제주(濟州)의 운명의 신도 서양 신화의 운명의 신과 마찬가지로 여성이다.
그리스·로마의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운명의 여신들은 크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등 세명으로서 실을 짜는 여신들이다.
이들은 큰 가위를 가지고 있으며 변덕이 심해서 아무데서나 실을 덜컥 잘라 버려 사람들을 운명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거지였던 두 부부는 돈이 될 만한 이렇다 할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가믄장아기가 태어나면서 갑자기 부자가 된다.
그러나 가믄장아기가 떠나면서 불운이 겹치며 다시 가난해져 버린다.
잘 살게 됐다고 해서 목에 힘이 들어가고 오만해지는 것은 쉽사리 재앙을 부를 수 있다.
하늘의 도움으로 잘 살게 된 것을 자신의 힘으로만 이룬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즉 오만이다.
오만이 하늘로부터의 재앙을 부르는 것은 동·서양의 신화를 막론하고 흔히 볼 수 있는 주제이며 신화가 가르치고자 하는 교훈중 하나이다.
마찬가지로 은장아기나 놋장아기처럼 나쁜 마음을 먹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도 화를 부른다.
제주(濟州)의 신화 속에서는 세번째 딸이나 아들이 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가믄장아기도 셋째 딸이고 이와 결혼하는 작은 마퉁이도 셋째이다.
다른 신화에서도 이런 구도가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 신화에서는 특히 두드러진다.
제주(濟州)의 고대사회에서는 말자(末子)상속의 관습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추론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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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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