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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믄장아기(2)
잠시후 우르릉하는 소리를 내며 마를 캐러 갔던 큰아들 마퉁이가 집으로 돌아왔다.
가믄장아기를 보더니 『집도 좁고 먹을 것도 없는데 재수없는 여자를 왜 청해 들였느냐』고 부모들에게 욕을 했다.
샛마퉁이도 『애쓰게 마파다가 잘 먹여주니 길 가는 여자아이 데려다가 놀고 있느냐』고 야단이었다.
그러나 작은 마퉁이는 『난데없는 암소며 사람이 들어왔으니 하늘이 도울 징조가 아니냐』하며 기뻐했다.
큰 마퉁이와 샛마퉁이는 마를 삶아 『어머니 아버지는 먼저 나서 많이 먹었으니 조금만 먹어도 된다』고 꼬리를 잘라 부모에게 주고 가운데 토막은 자기들만 먹었다.
작은 마퉁이는 꼬리와 머리는 잘라 자기가 먹고 굵은 토막으로 부모님과 손님에게 대접했다.
보아하니 쓸만한 것은 작은 마퉁이 밖에 없었다.
가믄장아기는 솥을 빌어 하얀 쌀밥을 번지르르하게 짓고는 주인집으로 들여보냈다.
생전 처음보는 쌀밥인지라 이상하여 『벌레같이 생긴 밥』이라고 서로 먹지 않았다.
작은 마퉁이만 냉큼 받아 맛있게 먹었다.
밤이 되니 가믄장아기가 할머니에게 『발이 시려워 안되겠으니 아들 하나만 보내주면 따뜻이 자겠다』고 청했다.
모두 『길가던 년』이라고 싫어하자 작은 마퉁이가 들어가 잠을 자고 부부가 됐다.
이튿날은 부부가 같이 마를 파러 갔는데 큰 마퉁이가 파던 구멍에는 똥이 가득했다.
샛마퉁이가 판 구멍에는 지네와 뱀이 모여들어 득시글거렸다.
그러나 작은 마퉁이가 마를 판 구멍에서는 금덩어리·은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
검은 암소에 실어다가 논·밭을 사고 농사를 지어 큰 부자가 됐다.
소·말도 많아지고 종들도 많이 생겨 떵떵거리며 살았다.
가난한 마퉁이집안이 큰 부자가 되어 살게 됐는데도 가믄장아기 얼굴에는 웃음기가 돌지를 않았다.
작은 마퉁이가 부인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수심에 차 있소』
『우린 이렇게 잘 살고 있지만 날 낳은 설운 어머니·아버지는 틀림없이 거지가 되어 이 집 저 집을 기웃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행여 우리 부모가 올지 모르니 거지잔치나 해볼까합니다』
『좋을 대로 하시오』
두 이레 열나흘 동안 거지잔치를 베풀었더니 세상의 거지들이 모두 모여 들었다.
돈없는 거지에게는 돈을 주고 배고픈 거지에게는 밥을 주고 목마른 거지에게는 물을 줬다.
마지막날 저물녘에 막대기 하나를 의지해 손을 잡고 들어오는 맹인 거지 한쌍이 있었다.
가믄장아기가 하인들에게 말을 했다.
『저 거지들이 위쪽에 앉으면 아래쪽으로부터 밥을 주고 아래쪽에 앉으면 위쪽부터 밥을 주어 떨궈버리고 가운데 앉으면 양쪽으로 밥을 주다가 떨궈버려라』
강이영성과 너설부인은 이리저리 옮겨가며 밥을 얻어먹으려고 했으나 그릇 소리만 달그락 달그락 나고 번번이 먹을 차례는 오지 않았다.
다른 거지들은 배불리 밥을 먹고 다들 떠나 잔치가 끝날 때가 됐다.
밥을 못 먹은 두 맹인부부는 『열나흘 동안 걸어서 찾아왔는데 밥 한 숟가락 얻어먹지 못하는게 우리 팔자구나』하고 울며 돌아섰다.
그제야 가믄장아기는 두 부부를 안방으로 청해 들이도록 했다.
자개 상에 귀한 약주, 진수성찬을 차려 놓고 대접을 하니 두 부부가 배불리 먹었다.
『두 노친네 들은 말이나 해 보십서』
『들은 말 없습니다』
『본 말이라도 해 보십서』
『본 말도 없습니다』
『살아 온 말이라도 해 보십서』
『살아온 말은 있습니다』
세 딸을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던 지난 날의 일을 말하노라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두부부가 번갈아 가며 막내를 내쫓던 얘기를 하며 후회하니 가믄장아기가 다시 술을 가득 따라 올렸다.
『설운 어머니 아버지 제가 가믄장아깁니다. 술이나 한 잔 받으소서』
『이게 무슨 말이냐. 눈이 밝았으면 얼굴이라도 볼 것을』
부부가 눈물을 흘리며 부지불식간에 양 손으로 눈을 훔치자 불현듯이 눈이 밝아왔다.
가믄장아기가 말을 했다.
『은장아기 놋장아기 두 형님은 마음이 나빠서 죄를 받았습니다. 은장아기는 지네로 환생하고 놋장아기는 용달버섯이 됐습니다. 저는 전상차지로 인간으로 나왔습니다. 부모님이 부자로 살게 됐던 것도 제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상이란 게 무엇이냐』
『인간세상에서 장사하는 것도 전상입니다. 목수일 하는 것도 전상이고 농사 짓는 것도 전상입니다. 술 마시는 것도 전상, 담배피우는 것도 전상입니다. 노름판에 빠진 것도 전상이고 돈을 버는 것도 전상, 글공부하는 것도 전상, 밥을 먹는 것도 전상입니다. 인간세상의 모든 일이 다 전상으로 오는 것입니다』
가믄장아기는 두 부모를 따로 모셔 새로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았다.

미니해설
이 신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거지잔치의 대목은 심청이야기[소설 「심청전」이나 판소리 「심청가」]의 걸인잔치를 연상케 한다.
신화의 마지막 부분은 두 이야기가 거의 같은 구도를 갖고 있는 것.
심청전의 경우 주제는 효도로서 효심이 하늘을 감동시켜 현실적으로 심청이가 출세하고 심봉사도 눈을 뜨게 된다.
그러나 전상신(神) 가믄장아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이 신화에서 작품의 흐름은 철저히 인과응보적이다.
심청전이 효도라는 유교의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다면 이 신화는 불교적이다.
또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심청전보다 못할지 몰라도 좀 더 앞선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상황의 전개가 보다 명쾌하고 인간적이다.
심청전이 단순한 하늘의 은혜를 다룬 것이라면 이 신화는 모든 사건이 인과응보적이며 이에 따라 이야기도 진행된다.
두 부부가 눈이 멀게 된 것은 『우리가 스스로 부를 일궜다』는 오만함 때문이다.
오만함에 빠진다는 것은 즉 눈이 멈, 사실상의 실명을 초래한다.
이들은 갖은 고생끝에 거지잔치에서 밥 한 숟가락 얻어먹지 못하는 수모를 당하고야 그게 자신들의 팔자라고 자탄하게 된다.
즉 「운명은 어쩔 수가 없다」는 각성에 이르는 것이다.
오만함으로 무지(無知)·무명(無名)에 빠져있던 영혼은 이 각성으로 인하여 눈이 밝아지고 새 삶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여자인 가믄장아기가 남자를 당당히 청해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내용은 여성들이 수완이 있고 독립심이 강한 전통을 갖고 있는 제주(濟州)의 신화에서가 아니면 보기 힘든 대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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