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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왕(1)
옛날에 나용안동(洞) 금백산에 천하문장 임정국과 지하문장 김정국부인이 살고 있었다.
부부는 문장이 좋아 임정국은 하늘나라의 문신이었으며 김정국부인은 지부(地府)대왕의 신하로 문명을 떨쳤다.
이들은 원래 명문가의 귀한 자손들이었으나 명이 짧아 집에 그냥 머물면 나이 열다섯이 넘도록 살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열다섯이 되는 해에 금백산으로 보내져 이곳에서 만나 부부가 됐다.
문장도 좋고 재산도 많아 걱정할 것이 없었지만 나이 오십이 다 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어 흠이라면 흠이었다.
하루는 임정국이 팽나무아래서 바둑을 두고 있는데 까마귀울음소리가 까악까악 들렸다.
나무 위를 올려다 보니 까마귀들이 막 알을 까서 새끼를 보며 즐거워 하고 있었다.
『말 모르는 짐승들도 새끼를 치는구나』
의기가 소침해진 임정국은 바둑판을 물리고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초막집에서 앙천대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담구멍으로 슬며시 들여다 보니 거지들이 앉아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천하의 상거지들도 자식을 두면 저렇게 즐겁구나』임정국이 팔자타령을 했다.
인기척을 눈치 챈 거지가 『자식도 없는 임대감이 담구멍으로 엿보고 있구나』하고 놀려댔다.
『전생(前生) 궂은 내 팔자 살아서 무엇하리』 임정국은 앓아 누워버렸다.
김정국부인이 남편을 웃겨보려고 병에 마개를 막고 실을 묶어 노리개 삼아 마룻바닥에 이리 저리 굴려 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별 짓을 다 해도 즐거울 길이 없어 부부가 부둥켜 안고 대성통곡을 했다.
지나가던 중이 울음소리를 듣고 대문을 두드렸다.
『왠 일로 그렇게 슬퍼하십니까』
『열다섯 십오세에 결혼을 했는데 오십이 다 되도록 자식이 없소. 우리 부부 사주팔자나 봐 주시오』
『절에 와서 불공이나 드려보시지요』
부부는 송낙지(송낙 만드는 종이) 구만장에 가사지(가사 만드는 옷감) 세 동, 대백미 1천석, 소백미 1천석을 준비하여 황금산 도단땅의 상좌절로 가서 백일 정성을 들였다.
애가 타도록 기다려 나이 오십에 겨우 딸을 낳아 「애가 잦다가 생긴 딸」이라는 뜻으로 「자지명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자지명 아기씨가 십오세 나던 해에 임정국과 김정국은 천상·천하에 임무를 맡아 3년동안 집을 떠나게 됐다.
귀한 딸을 두고 먼 길을 떠나려니 부부는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집안에 금법당(禁法堂)을 지어 마흔 여덟 「비꿀 장」, 서른 여덟 풍지개(바람막이), 일흔 여덟 고무나무 살장으로 단단히 문과 창을 막고 그 안에 자지명아기씨를 가뒀다.
느진덕 정하님(여자 하인)에게 구멍으로 밥과 옷을 주면서 3년 공사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아기씨를 잘 지키면 종살이를 면해 주겠다고 약속하고 길을 떠났다.
그 사이에 황금산 도단땅 상좌절에서는 중들이 모여 달구경을 하며 놀고 있었다.
『저 달은 곱기도 곱다』
『달이 곱긴 곱다마는 구름이 끼었구나. 우리 절에 수륙(水陸齋)을 들여 낳은 자지명 아기씨보다 고우랴』
이 말을 들은 상주절의 주지스님은 자지명아기씨를 상대하고 오는 중에게 절을 물려주겠노라고 말했다.
절에는 황금땅 황한림의 아들이 중이 되어 살고 있었다.
황한림의 아들은 대사중의 금바랑과 철죽대를 얻어 들고 나용안동 금백산으로 내려왔다.
자지명의 집에 와서 대문을 두드리자 정하님이 시주 쌀 한 동이를 들고 나왔다.
『이 쌀은 못 받겠소』
『무슨 연유요』
『이 집에는 명이 짧은 아가씨가 한 분 있을 듯 한데 직접 시주해야 복과 명이 길어질 듯 하오』
처음보는 젊은 중이 남의 집에 금지옥엽 처녀가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을까.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깜짝 놀란 정하님이 아가씨는 방에 갇혀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방문앞으로 간 중이 금바랑을 세번 흔들어 소리를 내니 굳게 잠겼던 문이 스르르 열렸다.
청너울에 청장삼을 두른 아가씨가 바가지에 쌀을 들고 나와 시주를 했다.
한쪽 손을 장삼속에 감춘 중은 한쪽 손으로 자루 한끝을 잡고 한 끝은 입으로 문 채 그 안에 쌀을 비우라고 했다.
『해괴한 중이로구나. 한쪽 손은 어데 갔느냐』
『한 손은 옥황에 단수육갑 오행팔괘 짚으러 갔습니다』
『불쌍한 중이로구나』
아기씨가 두 손으로 쌀을 비우는데 중이 한 손을 슬쩍 비켜 버리니 쌀이 땅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한 방울이라도 모두 줏어놓아요. 명이 짧아지니까』
아기씨는 화가 났지만 명이 짧아진다는 말에는 할 수 없이 쌀을 한 알 한 알 모두 주워담았다.
그 사이에 중은 감췄던 한 쪽 손을 꺼내 아기씨 가마머리를 거꾸로 세 번을 어루만졌다.
『이런 괘씸한 중이 있을까. 어서 나가시오』
아기씨가 야단을 치고는 안으로 황급히 들어갔다.
늦인득이 정하님이 좇아 가 중을 잡으니 송낙 한쪽과 장삼 한 자락이 찢어졌다.
『지금은 나를 쫓아내지만 언젠가 나를 찾을 날이 있을 것이오』
젊은 중은 웃으면서 철죽대 한쪽을 징표로 꺾어 주고는 절로 돌아갔다.

미니해설
삼시왕은 무조(巫祖)신이라고 할 수 있다.
옥황의 「삼하늘」에 산다고 하며 옥황상제를 보필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 이야기는 「초공본풀이」라고 하며 굿을 할 때 이공(꽃감관)본과 삼공(전상신)본 이야기보다 먼저 구술된다.
주인공이 깊은 방속에 갇히는 이야기는 서구의 민담에 많이 등장하며 우리나라의 신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다.
서구의 민담에서 높은 탑이나 성·동굴속에 가둬지는 것, 또는 가시덤불이 얼크러진 숲속에서 잠이 들어 난장이의 보호를 받는다는 구도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민담속에서 「갇힌다」는 상황설정은 문이 열리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
보통 신비로운 힘에 의해 열리는데 독수리에 의해 탑을 탈출하거나, 달빛에 의해 임신을 하고, 또는 바람의 힘으로 갇혀 있는 상태를 벗어나게 된다.
이 신화속에서는 고무나무 살장으로 창문을 막았다고 한다.
나무 중에서도 왜 하필 「고무」나무로 가뒀을까.
「고무」의 성질상 처음부터 열려질 문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처럼 깊은 방에 갇힌다는 것은 그만큼 고귀한 신분임을 가리키는 것이며 이 존재와 신비로운 힘이 결합하여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자지명의 탄생을 둘러싸고 일부 본에는 「부부가 절에 가다가 다른 절의 중을 만나 유혹을 받아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에 부정을 타서 딸을 낳게 됐다」거나, 또 「꿈에 청감주(酒)에 호박안주를 먹었기 때문에 딸을 낳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는 아들을 중시하는 사회적 성향에 따라 전승자가 임의로 추가한 내용으로 보아 여기서는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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