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시왕(2)
석달 열흘 백일이 지나가니 자지명이는 헛구역질이 나고 장에서는 장냄새, 물에서는 물냄새가 나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머리는 흩어져 방석머리가 되고 눈은 흘깃거리고 코는 뾰족 높아지고 입은 벌어지고 배는 붕붕 불어오르는 게 임신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일을 어쩌면 좋으랴.
걱정하는 사이에 부모님은 공사(公事)살이 삼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문안을 드리러 가자 아버지가 물어봤다.
『머리는 왜 매방석이 됐느냐』
『방안에만 갇혀 살며 햇빛을 쏘이지 못해 그렇게 됐습니다』
『눈은 어찌 흘깃거리느냐』
『부모님 돌아올 때만 기다려 살장밖으로 온종일 내다봤더니 그렇습니다』
『배는 왜 동산배가 됐느냐』
『정하님이 밥을 너무 많이 줘서 불렀습니다』
자지명이는 정하님이 시킨대로 말을 하여 위기를 모면했다.
그러나 어머니 김정국부인은 딸이 뒤뚱거리며 걷는 것을 보고 단숨에 알아봤다.
앞가슴을 들춰보니 젖줄이 파랗게 서 있었다.
은대야에 물을 떠다놓고 은젓가락 두개를 걸쳐 그 위에 앉게 하고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배속에 중의 아이 세명이 소랑소랑 들어앉아 있는 게 아닌가.
김정국은 임정국에게 달려갔다.
『아이고 이거 큰 일이 났습니다』
『무슨 일이요』
『아기 궁안에 바람이 들었습니다』
『무슨 바람말이요』
『애를 뱄습니다』
『양반집에 이 무슨 변고인고』
화가 난 임정국이 작두를 꺼내 자지명을 죽이려 했다.
정하님이 대신 죽여달라고 달려들었다.
김정국부인도 목숨만은 살려두자고 하소연하니 차마 죽일 수가 없었다.
검은 암소 한마리에 먹을 것 입을 옷을 주어 내쫓아 버렸다.
김정국부인은 열두폭 치마와 금봉채(부채)를 내주며 어려울 때는 꺼내 쓰라고 말했다.
자지명과 정하님은 철죽대를 두고 간 젊은 중을 찾아가기로 했다.
집을 나서자 울창한 왕대나무 숲이 앞에 있었다.
망연히 앉았다가 정하님이 말을 했다.
『어머님이 줬던 금봉채는 뒀다 어데 씁니까. 한번 부쳐 보십시요』
금봉채를 부쳤더니 숲가운데로 철죽대 자국이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숲을 지나가자 험한 산이 앞을 가로 막았다.
가시덤불과 나뭇가지에 열두폭 치마가 걸려 다 찢어졌다.
자지명이 정하님에게 물었다.
『이 산은 어디길레 이렇게 험하냐』
『건지머리를 하여야 넘어갈 수 있는 산입니다』
치마를 묶고 건지머리를 하고 가는 산이니 이 산은 「건지산」이라고 이름지어졌다.
건지산을 넘어서자 아래서 위로 흐르는 「거슨 물」이 나왔다.
『정하님아 왠 물이 거꾸로 흐르느냐』
『나비가 꽃을 찾듯이 신랑이 각시를 찾아야 하는데 각시가 신랑을 찾아가니 거꾸로 돼서 물도 거꾸로 흐릅니다』
거슨 물을 지나가니 검푸른 바닷물이 앞을 가로 막았다.
건너갈 방법을 몰라 망연히 앉았다가 중이 떠나면서 준 철죽대로 바다를 세번 쳤다.
바다가운데로 검은 모래 길이 나왔다.
검은 바다를 지나 겨우 황금산 도단땅에 도착했으나 절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어느 절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곱번째 절을 지나가는데 찢어진 송낙과 장삼이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정하님과 자지명이가 중을 부르자 이제는 대사가 된 황한림의 아들이 나왔다.
『제가 부인을 모시고 왔습니다』
『절간의 중에게 부인이 있을 턱이 있습니까』
대사가 딴전을 피우자 정하님은 찢어진 송낙과 장삼자락을 내놨다.
그러고 보니 그것은 자신의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대사중은 기장 한동이에 기름을 섞어 내어 주며 모두 깨끗이 껍질을 벗겨오면 부인으로 인정을 해 주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작은 알맹이인데 기름까지 칠해 놓아 미끄러워서 벗길 수가 없었다.
『일생을 해도 다 못 벗기겠구나』
겨우 세 알을 벗긴 자지명이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일생 살아가는 것이 다 기장 껍질 벗기는 것과 매일반이 아닙니까』
정하님은 자지명이의 열두폭 치마를 벗겨 펼치고 기름에 절은 기장을 말리려고 널어두었다.
잠이 든 새에 하늘에서 새들이 내려와 기장 알을 주어 먹기 시작했다.
와자자 시끄러운 소리에 잠이 깬 자지명이 깜짝 놀아 새들을 쫓았다.
후드득 새들이 날아가는 서슬에 겨들이 모두 불려났다.
자세히 살펴보니 껍질이 모두 벗겨져 있는게 아닌가.
알이 벗겨진 기장 동이를 들고서 절간으로 들어갔더니 대사중이 거절을 하지 못했다.
『저 아래 백모래 가름(동네)에 가 보면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계시니 어서 찾아가시오.』
동네로 내려갔더니 조그만 초가집에서 노파가 베를 짜고 있었다.
며누리라고 해 보았지만 인정을 않았다.
아이가 태어날 때가 됐다고 호소하니 그제야 헛간에서 자도록 허락했다.
자지명을 여기까지 데려다 놓은 정하님은 사라져 버렸다.
좁고 어두운 헛간에 누운 자지명은 가슴이 답답했다.
9월 초여드레였다.
큰 아들 본명이가 아래로 나오려다가 아버지도 아니 본 그믓이라 차마 나올 수 없어 왼쪽 겨드랑이를 뚫고 솟아났다.
열여드레 날에는 오른쪽 겨드랑이로 신명이가 태어났다.
스무여드레 날에는 답답한 가슴을 헤치고 「살아살죽」 삼명이가 나왔다.

미니해설
비록 「겁탈」이기는 하지만 무조(巫祖)신의 어머니인 자지명이 중의 아이를 뱄다는 것, 또 머리를 올렸다는 것은 제주(濟州)의 민간신앙과 불교가 결혼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만큼 이 지역의 신앙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신화적 패러디일 것이다.
금백산에서 황금산 도단땅까지 가는 데는 숱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머리를 올려야 넘어갈 수 있는」 건지산은 혼인의 의식을 상징한다.
「거꾸로 흐르는 물」은 비일상성, 즉 속(俗)의 세계와 다른 성(聖)적인 세계로의 입문을 가리킨다.
「검은 물의 바다」를 건너는 것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자지명의 여행은 인간으로서의 생을 마감하고 신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일종의 통과의식임을 알 수 있다.
자지명이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신통력을 발휘하는데 쓰이는 「철죽대」와 「금봉채」는 중이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본에 따라 이 물건들은 중에게서 받거나 어머니로부터 받는 것으로 서로 다르게 전해지고 있다)
철죽대(지팡이)는 불교의 법장, 금봉채(부채)는 불자를 연상시킨다.
법장과 불자는 번뇌와 장애를 물리치는 불교의 권위의 상징으로 쓰이는 것이다.
조계종 종정의 진산식(종정추대식)에서 새 종정은 법장과 불자를 봉헌받는 것으로서 비로소 종정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