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19<

3형제 급제(及第)잔칫날 「상놈」들통

삼시왕(3)
“심방 된 유(柳)씨부인 죽은 어린아이 살려내”

가난한 세 형제는 서당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훈장에게 사정을 하여 본명이는 삼천 선비들 벼룻물 갈아주기, 신명이는 재떨이 비우고 심부름하는 일, 삼명이는 방에 불을 때는 일을 하기로 하고 서당에 다녔다.
종이도 없어 불때고 남은 재를 깔아 손으로 고르고 그 위에 글을 쓰며 공부를 했다.
이때문에 사람들이 세 형제를 「잿부기 삼형제」라고 불렀다.
세 형제는 돈은 없었지만 글도 잘 쓰고 활도 잘 쏘았다.
과거볼 때가 됐다.
삼천 선비들이 모두 과거를 보러 떠나자 잿부기삼형제도 짐을 들어다주는 조건으로 길을 따라 나섰다.
한양땅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삼형제들이 과거를 가로챌 것을 두려워한 선비들은 계책을 꾸몄다.
선비들은 세 형제에게 배좌수댁의 배나무에 가서 배 삼천개를 따와 하나씩 나눠주면 노자를 보태주기로 했다.
삼형제가 배나무 위에 올라 배를 따서 바지 양쪽 구멍에 가득 넣고 내려오려는데 선비들은 나무 아래에 가시덤불을 잔뜩 모아놓고 도망가 버렸다.
삼형제는 배나무위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날이 샐 때까지 발발 떨며 울었다.
뒷날 새벽에 배좌수가 꿈에 보니 배나무위에 청용 백용 황용 용이 세마리가 얽어진 것을 보았다.
수장남(하인)을 시켜 뒷문을 열어보게 하니 세 도령이 배나무위에서 울고 있었다.
세 형제를 부른 배좌수가 사정얘기를 듣고 글을 써 보도록 하니 세형제가 모두 천하일품이어서 그냥 풀어줬다.
삼형제가 서울로 올라가보니 이미 과거는 끝나고 삼천선비들은 모두 낙방하여 울고 있었다.
이날 과거에는 급제감이 없어서 상시관들이 할일 없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상을 받아 앉았을때 상앞으로 종이로 싼 돌이 날아왔다.
상시관들이 그 돌을 풀어봤더니 천하제일 문장이 적혀 있었다.
『어떤 선비요 나서시요』하고 부르니 성밖에서 『접니다』하는 소리가 들렸다.
성문을 열고 삼형제를 불러들인 상시관은 큰 아들에게 문과급제, 샛아들은 동반급제, 작은 아들은 장원 급제를 줬다.
도임상을 차리고 비비둥당 우둥당 잔치를 벌이는데 삼천선비들은 질투하여 고자질했다.
『상시관님아 상놈의 자식은 과거를 주고 양반의 자식은 과거를 못줍니까』
『상놈이란 게 누구 말이요』
『상시관님아 상밑을 보면 알게 아닙니까』
상밑을 보니 제육안주 자소주가 상밑에 있었다.
삼형제가 고기와 술을 먹는 체 하며 모두 상밑에 놓은 것이었다.
과연 중의 아들들이 분명했다.
상시관은 임명장을 거두었다.
화가 난 삼형제가 활을 쏘아 연주문(筵奏門)을 부숴 버리고 도망쳤다.
도망을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가보니 형제들 대신 어머니가 처벌을 받아 숨져 있었다.
슬퍼하던 세 형제가 아버지를 찾아 황금산 도단땅 주지대사에게로 갔다.
『어머니를 되살려 올 방법은 없습니까』
『아이들아 어머니를 살리려면 전승(前生)팔자를 그르쳐야 하는 법이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러면 좋다. 설운 아이들아 나를 찾아 올 때 무엇을 보았느냐』
『 하늘을 보았습니다』
『땅을 보았습니다』
『문을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증표로는 천문(天門)을 마련했다.
어머니의 징표로는 상잔[천문과 함께 무점구(巫占具)]을 마련했다.
백모래를 일궈 쇠를 만들고 정대장(대장간의 신)을 불러 신칼도 만들었다.
양반을 잡던 칼은 일흔 닷자 칼이요. 중인(中人)을 잡던 칼은 서른 닷자 칼이고 하인(下人)을 잡던 칼은 닷자 칼이었다.
세 형제는 일흔 닷자 칼로 시왕대반지(신칼)를 만들어 삼천선비 양반들을 죽여 원수를 갚았다.
도망다닐 때 불도땅에서 만난 너사메 너도령(악기의 신)을 불러 북과 장고, 대양(징)·설쇠(꽹과리)도 만들었다.
두 이레 열나흘 동안을 낮에도 밤에도 쉬지않고 왈랑왈랑 굿을 했다.
시끄럽게 판을 벌이는 통에 옥황상제가 삼차사를 보내 무슨 연유인지 알아보라고 했다.
『우리 어머니 삼천전제석궁 깊은 곳에 앉았으니 살려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세 형제의 효심을 갸륵히 여긴 옥황상제는 어머니를 살려주고 대신 세 형제를 하늘로 불러올려 삼시왕의 자리에 앉혔다.
세 형제는 법당을 만들어 어머니를 모시고 무점구와 악기는 절대로 팔지도 빌려주지도 말고 물려주기만 하라고 당부하고는 하늘로 올라가 삼시왕이 됐다.
남천문밖에는 유(柳)씨부인이 살고 있었다.
일곱 세에 눈이 어두워 일흔일곱 세에 눈을 뜨니 인간으로 탄생하여 보람된 일을 하나도 못했다.
이대로 죽어 저승으로 갔다가 누가 물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리요.
고민을 하던 유(柳)씨부인이 발 돌아 가는대로 걷다보니 심복장재의 외동딸아기가 죽어 가족들이 통곡하고 있었다.
황금산 절로 올라간 유씨부인은 여승 자지명왕의 양녀가 되고 무구와 악기들을 물려받았다.
마을로 돌아왔을때 심복장재집에서는 금줄을 매고 여전히 울고 있었다.
어린 아이가 죽은지 삼일째되는 날이었다.
금줄을 풀어 걷고 들어간 유씨부인은 자지명왕에게 물려받은 북과 징과 꽹과리를 치며 굿을 하여 어린 아이를 살려냈다.
이때부터 심방이 생겼는데 유씨부인은 첫 심방이었다.
유씨부인이 이 때 굿이 끝나면 서로 인사를 하지 말도록 해서 이때부터 굿이 끝나면 인사를 하는 법이 없이 그냥 헤어지고 7일간은 동네 사람과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풍습이 생겼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양반사회 모순 고발…저항의식 일깨워

굿을 할 때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무점구인 천문과 상잔, 요령, 신칼등이며 이들을 「삼명두」라고 부른다.
삼명두는 사거나 빌려 쓸 수 없고 반드시 대대로 물려줘야 한다.
친자식이 없는 경우는 양자를 삼아 물려준다.
그래서 이 명두를 물려 받는 사람은 「신의 아이」가 된다.
제주(濟州)에서 전통이 깊은 심방의 가문[흔히 양자나 양녀로 이어지지만]에는30~40대를 물려쓰는「명두」가 있으며 이것이 권위있는 심방의 상징이 된다.
이 신화속의 잿부기 삼형제는 바로 이 「삼명두」의 신이다.
여기에 무악기의 신인 「너사메너도령」을 덧붙여 4명을 무구의 신으로 섬기고 있다.
굿을 할 때는 반드시 이들 무구의 신에게 먼저 제를 올리고 시작한다.
잿부기 삼형제의 신화는 양반사회의 모순과 서민들의 애환을 잘 묘사하고 있다.
실력은 없이 교활하기만 한 양반들이 벼슬을 하고 백성들을 지배한다.
반면 서민들은 항상 고통에 시달리며 지배당한다.
실제로 제주도(濟州道)의 심방들은 법전만큼이나 두꺼운 책으로 정리되는 각종 신화(본풀이)를 어느 장소에서나 읊조릴 수 있도록 다 외어야 한다.
그만큼 똑똑해야 할 뿐 아니라 또 그 이야기를 가지고 노래하고 춤추며 사람들을 울리고 웃겨야 하는 것이다.
이 신화처럼 심방들은 굿을 함으로써 서민들을 대변, 부조리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고 백성들의 저항의식·공동체의식을 일깨우고 키우는 구심점이 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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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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