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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1)
가을에 잎진 나무는 봄이면 새 잎이 나고 썩은 나무등걸에도 새 순이 돋는데 김진국대감과 조정국부인은 열 다섯에 결혼을 하고도 40이 넘도록 아이가 없었다.
지나가던 동개남 은중절 대사중을 잡아 사주팔자를 물어보니 대사가 말했다.
『팔자에 아들 자손이 하나 있기는 있는데 절에 와서 정성을 잘 들이면 낳을 것이고 공을 안 들이면 머리깎고 절에나 들어갈 팔자입니다』
『재물은 얼마나 준비해야 겠습니까』
『소백미 일만석에 대백미 일만석, 명세(命稅)도 백근, 강명주 물명주를 마련하여 석달 열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자식도 그립지만 재물도 아깝다.
절에 갈 준비를 하던 김진국대감은 명주를 저울이다가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반근을 덜어냈다.
석달 열흘 정성을 들였지만 부처님의 저울대에 저울여 봤더니 반근이 모자랐다.
본디 아들을 낳을 팔자였지만 딸이 태어났다.
애가 잦아서 태어난 딸인데다 얼굴이 고우니 이름은 자청비라고 했다.
자청비가 일곱 살 나던 해에 뒷마당에 별채를 짓고 열다섯이 되도록 가둬 길렀다.
열다섯 나는 해 여름이었다.
창밖으로 보니 하인 정술댁이 빨래를 널고 있었다.
『정술댁이 손발은 어찌 저리 고우냐』
『주천강 연화(蓮花)못에 매일 빨래를 하러 다니니 자연히 고와집디다』
『나도 연화뭇에 가보저』
어머니 아버지 옷을 벗겨 연화못에 빨래를 하러 나갔는데 하늘나라 문왕성 문국성도령이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자청비를 보았다.
장난기가 동한 문도령이 말을 탄 채로 윗물로 가서 첨벙거리며 물을 구쳤으나 자청비는 꿈쩍도 않았다.
『낭자, 물이나 한 바가지 주시오』
참다 못한 문도령이 자청비에게 수작을 걸자 자청비는 바가지에 물을 떠 버드나무잎을 훑어 띄우고 문도령에게 건네줬다.
『허 얼굴은 곱다마는 마음은 얼굴과 같지 않구나. 왠 버들잎을 띄웠소』
『도련님 먼 길에 말을 타고 달려왔는데 급히 물을 먹어 채하면 약도 없습니다. 천천히 마시라고 버들잎을 띄웠습니다. 어데 가는 도령입니까』
『저 아랫녁 거문선생에게 글공부하러 가는 길이오』
『우리집에도 꼭 나같은 남동생이 있는데 글벗이 없어 서당에 못갔는데 같이 가기 어떻습니까』
『그러시오』
빨래를 거둔 자청비는 집으로 뛰여와 부모님에게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 여자는 글공부하면 안됩니까』
『여자자식이 무슨 글공부냐』
『그러면 부모님 돌아가시면 누가 축을 읽으며 지방은 누굴 빌어 쓰오리까』
그말에는 할말이 없어 허락하고 말았다.
남자옷으로 차려 입은 자청비가 문도령과 같이 서당으로 내려갔다.
한 방을 같이 쓰게 되자 자청비는 물을 한동이 떠다가 붓대를 그 위에 걸쳐 놓았다.
『잠을 자더라도 이 물동이 건드려 붓대가 떨어지게 하는 정신이면 과거에 낙방하게 되니 정신 바짝 차리시오』
문도령은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움츠리고 잠을 자다 보니 공부를 못하고 자청비는 네 활개를 펴고 잠을 잘 자서 성적이 좋았다.
글씨도 여자 글씨, 행동도 여자행동, 걸음걸이도 여자 걸음걸이, 자청비에게서는 여자티가 완연했다.
이상하게 여긴 거문선생이 말했다.
『김도령아 너는 가슴이 왜 그렇게 튀어 나왔느냐』
『우리 부모님 가슴은 무릎까지 늘어졌습디다』
『이리 오너라 만져보자. 남자 가슴은 딴딴하고 여자 가슴은 물씬물씬 하는 법이다』
자청비가 사족을 불끈 쓰면서 가니 가슴이 딴딴해 남자 같았다.
거문선생이 이번에는 옷벗고 달려보라고 했다.
『어머니 몸에서 태어날 때 알몸으로 나와 배우고 자랄수록 옷을 더 입는데 옷벗고 달리라는 서당은 처음입니다』
『그러면 속옷만 입고 달리기 경주를 해 봐라』
서당 옆 왕대밭으로 들어간 자청비는 왕대 한 마디를 잘라내고 솔방울 두개를 줏어 가랑이에 달아매었다.
속옷만 입고 달리기를 하니 대나무가 꺼떡꺼떡 하여 남자의 모습이 역력했다.
그래도 미심쩍은 거문선생은 오줌눕기 경주를 시켰다.
문도령은 오줌줄기가 여덟척반밖에 나가지 않았다.
하문에 대통을 끼운 자청비가 선채로 힘을 주어 오줌을 갈기니 열두척 반을 나갔다.
공부에도 자청비가 낫고 씨름을 해도 자청비가 이기고 달리기를 해도 자청비가 이기자 문도령은 공부에 싫증이 났다.
삼년째 되는 어느날 문도령에게는 하늘나라에서 공부를 그만 두고 서수왕 서수아기에게 장가를 들라는 전갈이 왔다.
문도령이 고향으로 돌아 가려고 하자 자청비도 같이 따라 나섰다.
주천강 연화못으로 돌아왔을 때 자청비가 말했다.
『문도령아 오라. 삼년동안 공부를 하고 왔으니 글때인들 아니 쌓였으랴. 목욕이나 하고 갑시다』
『그것도 좋지』
『문도령은 글을 써도 나한테 뒤지고 씨름을 해도 나에게 지니 아랫쪽에서 목욕하시오. 나는 윗물에서 목욕하겠소』
물위로 올라간 자청비는 버드나무잎을 뜯어 손가락을 물어뜯어 피를 내어 글을 썼다.
『무심한 문도령아, 멍청한 문도령아, 삼년간 한 방에서 살아도 남자 여자 구별을 못하는구나』
버들잎을 줏어본 문도령이 그때야 자청비가 여자인 것을 알고 부리낳게 좇아 갔다.
자청비는 문도령에게 여자옷을 입히고 부모님 몰래 집안으로 맞아들였다.

미니해설
자청비는 제주도(濟州島)의 농경신이다.
지구상의 어떤 신화 못지 않게 풍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신화는 이미 도내 몇몇 시인·소설가들에 의해 작품화되기도 했다.
제주(濟州)의 농신인 「세경할머니」에 대한 이 내력담은 어떻게 해서 긍정적·능동적인 여성성이 남성의 부정적 폭력적 요소를 극복하고 결합함으로써 풍요롭고 새로운 삶에 이르는가하는 과정을 서사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들의 탄생에는 어느 정도 공통점이 발견된다.
신이 될 주인공들은 모두 양반집 귀한 자손으로 느지막히 태어난다.
또 절에 정성을 들여 잉태를 한다는 점도 같다.
이 부분의 줄거리는 여러 신화에서 거의 같은 줄거리로 구술되고 있다.
또 이 신화에서는 삼시왕의 신화와 마찬가지로 15세까지 갇힌 상태에서 길러진다는 점도 같다.
15세에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성년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화속에서 옛사람들은 15세에 결혼을 한다.
성년이 된 후 여자들은 빨래터등지에서 사회생활을 익히게 된다.
이 신화에서도 자청비는 열다섯이 나는 해에 빨래터로 나가며 이곳에서 남편이 될 문도령을 만난다.
자청비가 남장을 하는 것은 이 신이 남성을 뛰어넘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신화적 장치로 보인다.
실제로 이야기 속에서 「남장을 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예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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