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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청비(6)
용얼레기(龍빗) 반쪽과 토시 한 쪽을 징표로 남겨 둔 자청비는 서천꽃밭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문국성이 죽은 자리에는 가시나무만 잔뜩 우거져 있었다.
가시덩굴을 걷고 뼈를 주어 모아 그 위에 살오를 꽃, 뼈 오를 꽃, 환생꽃을 놓고 종나무 회초리로 한번을 때리니 문국성이 부시시 일어났다.
자청비는 서천꽃밭에 갔다가 암장가를 들고 온 내력을 말했다.
『사라대왕 셋째 딸이 죄 없이 생과부가 되게 됐으니 서방님이 거기 가서 삼년 살면 여기서는 일년도 좋고, 거기서 석달 살면 여기서 한달 살아도 좋으니 왔다갔다 하면서 사옵소서』
문국성이 서천꽃밭으로 가자 개가 쿵쿵 짖었다.
셋째 딸이 낭군이 온 줄 알고 나와봤더니 말은 낭군의 말인데 사람은 아니었다.
『댁은 뉘시오』
『문왕성 문국성입니다』
사라대왕의 물음에 대답했으나 믿지 않았다.
『우리 사위는 그렇게 못 생기지 않았소』
『서울 가서 과거를 치르고, 부모 죽어 삼년상을 당하고, 병들어 석달 열흘을 앓았으니 살인들 안 빠지겠습니까. 정 못 믿겠으면 본매(징표)나 내주면 찾아가겠습니다』
문국성은 자청비가 일러준 대로 말했다.
문국성이 내놓은 용얼레기와 토시를 맞춰보니 꼭 맞았다.
내키진 않았지만 사위가 분명하니 맞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서천꽃밭에서 살게 된 문국성은 세월 가는 줄 몰랐다.
연삼년을 기다려도 문국성이 돌아오지 않자 참다못한 자청비가 편지를 써서 참새 날개죽지에 매달아 날려보냈다.
아침에 세수를 하러 나갔던 문국성은 참새가 발 밑에 편지를 떨어뜨리자 그때야 정신이 났다.
『아뿔싸, 생명의 은인, 조강지처 자청비를 잊었구나』
세수도 하지 않은 채 겁결에 망건을 쓰다보니 귀도 빼지 않고 줄도 매지 못했다.
두루마기도 한 쪽 어깨에 걸치는 둥 마는 둥 말을 탔는데 안장을 거꾸로 매우는 통에 말을 뒤로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청비는 머리를 빗으려다가 남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흐트러진 머리를 짚으로 얼추 묶는 모양만 하고 먼 올래까지 마중을 나갔다.
이때부터 인간세상에 급한 일이 생기면 의관정제를 하지 않아도 됐다.
가장 급한 일은 부모 죽어 초상을 당하는 때다.
이때 생긴 법으로 성복(成服)을 하기 전에는 통두건을 쓰고 두루마기는 한 쪽 어깨에만 걸치며 여(女)상제는 머리를 풀어 짚 끈으로 묶는 관습이 생겨났다고 한다.
남편이 돌아오는 것을 보니 말을 거꾸로 타고 등진 채 오고 있었다.
마음은 서천꽃밭에 있고 몸만 오는 모양새였다.
자청비는 문선왕에게 가서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문선왕은 문국성에게 한달 중 선(先)보름은 서천꽃밭에서 보내고 후보름은 인간세상에서 자청비와 함께 지내도록 명령했다.
또 문국성과 자청비에게 오곡 씨를 주고 세경(농경)신으로 임명하여 지상으로 내려보냈다.
자청비가 오곡 씨를 타서 내려오다 보니 메밀 씨를 잊고 안 가져와 뒤늦게 받아왔다.
그래서 메밀은 다른 곡식보다 늦게 파종하게 됐다.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정수남이 죽은 곳에 다다랐다.
자청비는 문도령을 살리다 남은 환생꽃을 놓고 종나무 회초리로 세 번을 후려쳤다.
『아이고, 상전님. 봄잠이라 오래도 잤습니다』하고 정수남이 살아났다.
자청비는 되살아난 정수남을 같이 데리고 갔다.
세경땅으로 가던 중 장정 아홉이 밭을 갈고 있는 게 보였다.
배가 고픈 자청비가 정수남을 시켜 밥을 얻어오라고 했다.
『세경신님이 밥 좀 달라고 하오』
『남 줄 밥이랑 마랑 우리 먹을 밥도 없다』
장정들이 거절하자 화가 난 자청비가 장정들의 배를 아프게 하고 소들은 미쳐 날뛰게 했다.
밭에는 잡풀들의 씨를 잔뜩 뿌려 이 밭에서는 농사가 안됐다.
또 가다 보니 늙은 노인 부부가 남의 밭을 빌어 농사를 짓고 있었다.
노인들은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은 밥을 안 먹어도 된다』며 새 밥으로 먹으라고 가져왔다.
보리 볶아 벌겋게 된 범벅이었는데 문국성·자청비·정수남 셋이 먹어도 밥이 줄어들지 않았다.
자청비가 씨를 뿌리고 정수남이 밭을 갈았다.
『노인네 곡식은 얼마나 나면 좋겠소』
『더도 말고 검은 암소에 등이 오그라지도록 싣고 두 늙은이 잔뜩 지고 갈 만큼이면 됩니다』
이 밭에는 풍년이 들었다.
이때 노인네가 적당히 많이 나게 해 달라고 해서 곡식줄기도 성글고 심심풀이하라는 뜻에서 잡풀도 조금씩 나게 됐다.
자청비때문에 시집도 못 가고 죽은 서수왕 따님아기는 새가 되어 매해 곡식이 여물 때가 되면 이를 시기해 논·밭으로 날아들어 곡식을 쪼아먹게 됐다.
문국성은 상(上)세경, 자청비는 중세경이 됐다.
정수남은 하세경으로 말테우리[목축신. 나중에는 「목자」라는 뜻이 됐다]가 되고 사람들은 매해 음력 7월 백중날이면 백중제를 지내 곡식과 소·말들의 풍요를 빌게 됐다.

미니해설
자청비가 죽었던 문국성과 정수남을 살려내는 것은 농경신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다.
「부활」의 이미지는 식물, 여기서는 곡식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 알의 밀이 썩어야 열매를 맺는다』는 성서적 비유와도 비슷한 의미이다.
즉, 곡식들은 추운 겨울에 죽었다가도 따뜻한 봄이 되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문국성이 선(先)보름은 서천꽃밭에서 살고 후보름이면 지상에서 산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서 곡식들의 생명의 주기성을 가리키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신화적 패러디는 서양의 신화에서도 보인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꽃의 여신 페르세포네는 명부(冥府)의 왕 하데스에게 납치 당한다.
어머니인 곡물의 신 데메테르는 형제인 제우스에게 하소연하여 페르세포네를 구해오지만 완전히 구해오지는 못한다.
그래서 꽃들은 가을까지는 지상에서 폈다가도 겨울에는 하계(下界)로 들어가야 된다고 한다.
자청비가 부활의 도구로 쓰는 것도 다름 아닌 꽃이다.
자청비를 시기한 서수왕딸이 논밭으로 날아드는 새떼가 됐다는 해석은 재미있다.
이 새는 사(邪)와도 동일시된다.
굿 중에 구사(驅邪)의식이 필요할 때는 새(鳥)를 쫓는 시늉을 한다.
마지막 부분에 장정들과 노인네의 일화가 포함된 것은 세경신의 영험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밥은 먹어도 줄어들지 않았다』는 것은 역시 신약성서를 연상시키는 구절로서 신에게 바치는 제사에 많은 재물이 필요치 않으며 재물을 바치면 결국 이익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문국성과 자청비의 서열에 대해 대부분의 본들이 문국성을 「상」세경이라고 하고 있으나 굿판의 구전자들은 자청비가 상세경이고 문국성은 중세경이라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또 문국성에 대해서는 『농경신이 됐다』는 언급이 없는 본도 있다.
구전과정에서 유교등의 영향으로 변질된 게 아닌가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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