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29<

삭발 염주두른 세왕자(王子) 못알아봐

강림차사(2)
저승 삼차사 “가는길에 아무놈이나 잡아갑시다”

인간 강림이 죽은 자의 혼을 데려가는 이승차사가 된 것은 우연한 일이었다.
동경국에 범무왕이 있었다.
범무왕에게는 왕비가 셋이 있었는데 아내 하나에 3형제씩 아들 9형제가 있었다.
그러나 위로 3형제가 죽더니 아래로 3형제도 죽고 가운데 셋만 남았다.
세 아들은 일곱살 나던 해부터 서당에 공부하러 다녔다.
어느 날 세 형제가 거리에서 바둑·장기 구경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대사중이 중얼거렸다.
『귀한 집 아이들이구나마는 명이 짧아 안됐구나』
그 소리에 놀라 집으로 달려온 아이들이 범무왕에게 울며 말했다.
범무왕은 대사중을 잡아오도록 시켰다.
『중놈이 웬 허황된 소리냐』
이미 여섯 형제를 잃은 범무왕은 속으로 마음이 철렁 내려 앉았으나 짐짓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왕은 무후(無後) 팔자요. 세 왕자는 왕의 아들이 아니라 부처님의 아들이요. 이제 출가시키지 않으면 열두번 환생하여 인간으로 나서야 제 명과 복을 누릴 것이요』
겁이 난 범무왕은 부처님에게 공양드릴 제물로 은기그릇 놋기그릇 비단 등속을 잔뜩 마련하여 세 형제를 동개남 상주절로 올려 보냈다.
세 형제는 머리를 삭발하고 백팔 염주를 목에 걸어 중이 됐다.
세 형제가 절에 간 사이에 저승 삼차사가 데려가려고 동경국에 왔는데 아무데서도 왕자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집안 가속들을 하나씩 족쳐서 알아봤더니 절로 보냈다는 것이다.
삼차사는 세 형제를 잡으려고 상주절로 올라갔으나 머리깎고 염주 두른 중들이 3백명이나 돼서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죽을 날이 지나가서 삼차사는 그냥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가다가 아무 놈이나 잡아 갑시다』
강림이가 차사가 되기 전이라 차사들이 하는 일이 명확치 않았다.
그래서 명이 다 되기도 전에 죽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 이런 연유였다.
그 해 9월 보름날이었다.
세 형제가 두고 온 부모를 보고 싶어 울다가 고향에 가보는 게 어떠냐고 의논을 모았다. 이를 눈치 챈 대사중이 탄식을 했다.
『3년만 꼬박 채웠으면 명과 복을 찾을 수 있을텐데 어쩔 수 없구나. 굳이 가고 싶어하니 할 수 없다. 다만 가는 길에 김치고을에 들어가지 말고 연화못물도 마시지 말거라』 하고 당부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절에 올 때 가지고 온 은기그릇·놋기그릇·비단꾸러미들을 모두 내 주며 노자 삼아서 가도록 했다.
큰 아들은 은기그릇을 지고 샛아들은 놋기그릇, 작은 아들은 비단꾸러미를 등에 지고 길을 떠났다.
빨리 고향에 가려는 성급한 마음에 물도 안 마시고 밥도 안 먹은 채 가다보니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다.
눈 앞에 연못이 나타나자 오랜 만에 보는 물이라 반가운 마음에 앞 뒤 가릴 겨를 없이 달려들어 실컷 마셨다.
연못가에서 어여쁜 여인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김치고을 사는 과양생이였다.
『이 곳이 어데입니까』
『김치고을입니다』
『이 물은 무슨 물입니까』
『주천강 연화못입니다』
대사 스님이 먹지 말라고 간곡하게 당부한 물을 세 형제는 깜빡 잊고 마셔버린 것이다.
『이 부근에 묵어갈 곳이나 있소』
『없습니다』
『그럼 주막이나 있소』
『주막도 없지마는 우리집이라도 가시지요』
세 형제의 봇짐꾸러미를 유심히 본 과양생이는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아리따운 옷으로 갈아입고 술과 진수성찬을 차려 대접하니 세 형제가 아무 생각없이 받 아 먹었다.
술을 마신 세 형제가 깊이 잠이 든 사이에 과양생이는 세 형제를 죽이고 재물을 모두 차지하고 말았다.
세 형제의 시체는 주천강 연화못 속에 던져 버렸다.
다음날 연화못에 갔더니 오색 꽃 세 송이가 떠 있었다.
꽃이 너무 고와서 과양생이는 건져다가 앞대문에 하나 방문에도 하나 고간문에도 하나를 꽂아두었다.
그런데 그 꽃을 꽂은 후부터는 과양생이가 문을 드나들적마다 머리가 문설주에 부딪치기가 일쑤였다.
『고약한 꽃이로구나』
과양생이는 꽃을 북북 뽑아다가 청동화로불에 넣어 태워버렸다.
불씨를 얻으러 왔던 뒷집 청태산 마귀할망이 화로 속을 보니 웬 구슬이 세 방울 묻혀있었다.
『불은 없고 웬 구슬이 세 방울 있구나』
할망의 말을 듣고 화로속에 있는 구슬을 본 과양생이는 욕심내어 얼른 차지했다.
오색이 영롱한 예쁜 구슬이라 과양생이가 노리개로 가지고 놀며 입안에도 놓았다가 손안에도 놓았다가 하다가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 때부터 과양생이는 배가 불러오르기 시작하더니 임신하여 세쌍동이를 낳았다.
한꺼번에 세 아들을 얻은 과양생이는 크게 기뻐서 금이야 옥이야 하며 고이 길렀다.
일곱살 나던 해에 산천서당에 보내니 선생이『하늘 천(天)』하면 『따 지(地)』를 알고 『검을 현(玄)』하면 『누르 황(黃)』을 외웠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과양생이」등 등장 제주(濟州)역사와 관련있는 듯

고향으로 돌아오는 세 형제는 대사가 당부한 금기를 지키지 않는다.
이러한 구도는 그리스·로마의 신화중 영웅들의 이야기에도 흔히 나오는 것으로서 반드시 재앙을 초래하게 돼 있다.
영웅들의 이같은 「운명적인 실수」는 그리이스의 비극작품들을 다룬 어느 작품들보다 위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스 신화와 다른 점은 재앙을 당하는 당사자들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신화는 이승차사 강림이 탄생하게 된 내력을 읊은 것으로서 세 형제는 단지 조연급 인물들이며 강림이 출현하는 동기가 될 뿐이다.
사악한 여인 「과양생이」는 본에 따라 「괴양생이」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 심방이 직접 구술, 기록토록 한 「풍속무음」에는 「괴양생이」로 표기하면서 무슨 까닭인지 「고양생이(高良生伊)」라고 한자로 병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삼성혈이 있는 제주시 「광양(光壤)」의 지명유래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광양은 흔히 「과양」이라고도 불린다.
「고양」과 「괴양」 「과양」 「광양」이 구전과정에서 혼용돼 왔다고 본다면 「광양」이라는 지명은 「고씨·양씨의 조상신이 용출한 삼성혈이 있는 곳」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과양생이」라는 이름은 「과양땅 출신 사람」이라거나 또는 「高·梁씨가문의 사람」이라는 뜻도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 신화는 제주의 실제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또 이 신화에도 다른 신화에서 일반적으로 연못을 가리키는 「주천강 연화못」이 등장한다.
또 노파를 일컫는 「청태산 마귀할망」이 나오기도 한다.
제주의 신화에 대한 어원학적·역사적 분석작업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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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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