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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차사(4)
조왕할망이 사라져 버리자 강림은 가시덤불 속에 갇혀 길을 잃었다.
『인간에서 첩을 많이 하여 큰 부인을 울렸으니 그 죄가 어디 가랴. 가시밭길을 헤치려면 고생깨나 하겠구나』
강림은 후회를 했다.
그러자 홀연히 청의(靑衣)동자가 나타나 길을 헤쳐가기 시작했다.
『옳지 저 소년을 따라 가면 되겠구나』
강림은 부지런히 좇아 갔으나 어린아이의 걸음을 따라 잡을 수 없었다.
가시밭길이 다 끝나 한 길로 나와서 청의동자가 앉아 쉬는 사이에 강림은 소년앞에 가서 넙죽이 엎드렸다.
『덕분에 길을 잘 찾았소. 보답으로 점심이나 먹고 가시요』
『나도 있소』
소년의 점심을 보니 또 강림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나는 큰 부인집의 일문전(門前神)이요. 부인의 정성이 갸륵하여 도와주는 것이니 그리 아시요. 이 길을 곧장 가면 길토래비[길라잡이]가 졸고 있을 터이니 그 앞에 떡을 놓고 기다려보면 알 도리가 있을 것이요』
강림이 길을 따라가 아흔아홉 갈림길에 다다르니 아니나다를까 한 총각이 길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강림은 그 앞에 먹음직한 시루떡을 갖다놓고 숨어서 기다렸다.
길을 닦다가 지치고 배가 고파서 졸고 있던 총각은 구수한 떡냄새에 잠이 깨어 허겁지겁 떡을 떼어 먹었다.
『누가 갖다놓았는고. 신세를 갚아야 할 터인데』
총각이 두리번거리자 강림이 그 앞에 나타났다.
『내가 놓았소』
『댁은 뉘시오』
『김치고을에서 원님의 명을 받아 염라대왕을 잡으러 온 강림사자 강파동이요』
『나는 저승 길안내를 맡고 있는 이원사자요. 떡대접을 잘 받았으니 내가 도와줄 일이 없소?』
『염라대왕이 다니는 길을 가르쳐 주시오』
저승의 비밀을 가르쳐 달라니 이원사자는 당황했다.
그러나 저승법은 맑아서 대접을 받으면 반드시 보답을 해야하는 법이었다.
나중에 벌을 받더라도 길을 가르쳐 줄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그냥 저승길로 갑니까. 내가 혼을 불러드리겠소』
강림의 적삼을 벗긴 이원사자는 적삼을 손에 잡고 강림의 이름을 세 번 크게 불렀다.
그러자 강림의 혼이 몸에서 벗어났다.
이원사자는 아흔 아홉 갈림길을 모두 설명해 주었다.
저승길은 신들이 다니는 길이 모두 달랐다.
천지왕 다니는 길.
지부(地府)왕 다니는 길.
박우왕 다니는 길.
총명부인 다니는 길.
대·소별왕 다니는 길.
산신대왕 다니는 길.
열두 시왕이 다니는 길.
사자들이 다니는 길이 모두 달랐다.
염라대왕이 다니는 길을 알아 낸 강림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초군문앞으로 가서 대문에 적배지를 붙인 후 망건을 벗어 머리에 베고 누운 채 배짱좋게 염라대왕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꼬박 이틀을 기다리니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염라대왕이 가마를 타고 열두 사자를 앞세우고 행차를 하는 소리였다.
가마 앞으로 뛰어 든 강림이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염라대왕은 포승을 받으시오』
염라대왕이 화가 나서 천둥·번개를 부르자 세상이 캄캄해지고 천지가 요동했다.
강림이 겁이 덜컥 났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였다.
열두 사자를 한 손으로 메어 꽂은 강림이 가마 안으로 뛰어들었다.
『저승에 관장(官長)이 있으면 이승에도 관장이 있는 법. 아무리 저승 관장이라도 이승관장 명령도 들어야 합니다』
강림은 순식간에 염라대왕을 홍사(紅紗)줄로 절박했다.
이때부터 강림이 사람을 잡아가려면 포박하는 법이 생겼는데 이에 따라 세상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관에 들어가기 전에 배로 열두마디로 묶는 관습이 생겼다고 한다.
『내 놈이 누구냐』
『강림사자 강파도요』
『용맹이 있어서 좋다마는 지금은 심복장자네 집에 아기씨가 큰 병이 들어 시왕맞이굿을 하며 나를 청하는 중이니 가서 술이나 한 잔 하고 가자』
『그것도 좋습니다』
굿판으로 들어서니 시왕맞이를 하던 심방이 염라대왕을 청해 들여 음식을 대접하면서 강림에게는 아무 대접도 없었다.
굿판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된 강림은 굿을 하는 큰심방을 홍사줄로 옭아매 버렸다.
큰심방이 갑자기 몸을 움직이지 못해 죽어갔다.
굿을 돕던 작은 심방이 눈치를 채고 말했다.
『대왕이 있으면 그 밑에 심부름하는 차사도 있을 법인데 대접을 안 할 수 없습니다』
새로 상을 차리게 한 작은 심방이 사자를 청해들이자 비로소 강림이 상을 받고 굿판에 들어섰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시왕맞이 굿을 할 때 상을 차리면 반드시 강림차사의 상도 따로 차려 대접을 하게 됐다.
강림이 늦게 들어가보니 염라대왕이 없어져 보이지 않았다.
기둥으로 변신해 숨어버린 것이다.
강림이 물었다.
『이 집은 누가 지었느냐』
『강태공 서목수가 지었습니다』
『불러오시오』
목수를 부른 강림은 기둥을 몇 개 세웠느냐고 물었다.
『여든 여덟개를 세웠습니다. 이 기둥, 이 기둥은 내가 세웠습니다마는 저 기둥은 내가 세우지 않은 것입니다』
『그 기둥은 필요없는 것이구나』
톱을 가져오도록 한 강림이 기둥을 잘라버리려고 갖다대니 혼비백산한 염라대왕이 부엉이로 변신하여 큰 대 위롤 날아올라갔다.
매로 변신한 강림이 날아올라 날개로 덮치니 이번에는 쉬파리가 되어 집구석으로 피했다.
거미로 변신한 강림이 거미줄을 쳐서 다시 파리다리를 옭아매었다.
꼼짝없이 붙들린 염라대왕이 할 수 없이 수락했다.
『먼저 가 있으면 모래 사오시에 내가 원으로 찾아가마』
『그러면 표주[징표]라도 써 주시오』
강림을 돌려 앉힌 염라대왕이 등에 임금 왕(王)자를 새겨주었다.

미니해설
수록본에 따라 강림을 도와주는 집안신의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다른 신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큰 부인의 정성으로 도움을 받게 된다는데는 일치하고 있다.
또 저승에 이르는 아흔아홉 갈림길을 가리켜주는 신도 본에 따라 다르다.
어떤 본에서는 단순히 길을 고치는 한 총각이 가리켜주는 것으로 기록한 것도 있으며
그후 다시 문지기에게 뇌물을 써서 대문안으로 들어간다는 본도 있다.
그러나 저승차사로 알려진 「이원사자」가 등장하는 본이 많아 여기에서는 혼돈을 피하기 위해 이원사자 한 명이 길을 가르쳐 준 것으로 했다.
이 신화들을 통해 우리는 옛사람들이 상상했던 저승을 알아볼 수 있다.
이승과 저승사이에는 서천강이 있고 서천강을 건너는 것은 살아있는 몸으로는 불가능하다.
강림이 염라대왕을 찾기 위해 부르는 「강태공 서목수」는 집을 짓는 신이다.
사람들이 새 집을 지어 입주한 후에는 반드시 성주풀이를 하여 집의 신을 위로하여야 한다.
「성주풀이」에서 심방들은 강태공 서목수가 집을 짓는 과정을 굿판에서 재현하고 집의 기둥과 벽을 강태공 서목수의 도끼로 찍어 아직 나무속에 남아있는 나무의 신들을 쫓아내어 완전히 집으로서의 구실을 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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