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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차사(5)
염라대왕에게 약속을 받은 강림이 지상으로 돌아오려고 하니 길을 알 수가 없었다.
『이틀후에 오는 것은 좋지만 나는 길을 모르니 어떻게 가면 좋겠습니까』
염라대왕은 앞발이 없는 흰 강아지 한 마리를 내주고 사자에게 서천강까지 강림이를 데려다 주고 오라고 시켰다.
오는 길에는 인간세상에서 잡혀오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등 뒤에 북을 지고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뒤에서 한 사자가 북을 떵떵 두드리며 발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저것은 어떤 사람이요』
『산 때 시아버지·며느리가 상피붙어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요』
가시밭길로 돌을 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저 사람은 웬 사람이요』
『도둑질 하다 잡혀온 사람이요』
이번에는 말 위에 좋은 안장을 놓고 말고삐를 잡히고 편안히 오는 사람이 있었다.
『문과과거 급제하여 현감이 되고 불쌍한 자를 도와주고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 공짜를 탐내지 않은 현감이요』
서천강가에 이르자 사자는 돌아가고 강림은 흰 강아지를 따라왔다.
앞서 걷던 강아지가 훌쩍 물속으로 뛰어들려하자 강림이 그 꼬리를 붙잡았는데 어느새 인간세상에 돌아와 있었다.
강림의 집에서는 삼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부모·형제와 가족이 모두 모여 첫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저승에서는 사흘을 살았으나 이승에서는 3년이 지난 것이다.
그래서 저승의 하루는 이승의 1년이라는 얘기가 전해진다.
오랜만에 한 가족이 모이니 지나간 얘기의 꽃을 피웠다.
강림이 저승에서 염라대왕을 만나고 온 이야기를 한 후 가족들에게 물었다.
『아버님 나 죽으니 무슨 생각이 납디가』
『살았을 때 생각이 마디마디[節節히 라는 뜻] 나더구나』
『그러면 아버님 돌아가시면 마디마디 왕대나무 잘라서 상주(喪主) 방장대(지팡이)로 쓰는 법을 만들겠습니다』
『어머님은 나 죽으니 어떤 생각이 납디가』
『애간장이 타서 가슴속에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었다』
『어머님 죽은 때는 속이 빈 머귀나무로 방장대를 만들겠습니다』
『동생들아 나죽으니 어떻드냐』
『한 열두달은 생각이 나더니마는 그후로는 차차 잊어집디다』
『그러면 형제간이 죽으면 1년만 상복을 입는 법을 만들겠다』
『아들아 나 죽은 후 어떻게 살았느냐』
『문이 열렸다 닫혔다하니 달아지고, 좀이 먹고 삭아서 연장을 준비하여 저 손으로 고치면서 살아왔습니다』
『너는 기일제사 유래전득과 부모 살던 집을 물려서 일생을 살아가라』
『당신은 나 죽으니 무슨 생각했소』
『연 사년 낮에는 일하다가도 밤만 되면 잠이 안 와 당신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4년간 기일, 제사법을 마련하겠소』
요즘 민간에서 행해지는 기일제사법도 김치원님이 있던 이 시절에 만들어 졌다고 한다.
가족들이 흥겹게 얘기하는 동안에 뒷집의 김(金)서방이 창밖에서 엿듣고 있었다.
김(金)서방은 강림의 큰 부인이 삼년상 지나고 첫 제사가 지날 때를 기다려 흑심을 품고 찾아왔다가 강림의 얘기를 듣고 만 것.
깜짝 놀란 김서방은 김치원님에게 가서 고해 바쳤다.
『강림이 저승에는 안 가고 낮에는 병풍뒤에 숨어 있다가 밤에 마누라와 놀고 있습니다』
『당장 잡아오너라』
다음날 아침 육방하인들이 출두하여 강림이를 잡아다가 꿇어 앉혔다.
『염라왕을 잡아오라고 시켰더니 집에서 잠만 자고 있었더냐』
『그게 아니옵고…』
강림이 내일이면 염라대왕이 대령할 것이라고 보고를 했으나 믿지를 않았다.
『그러면 내일 사오시까지 기다려보고 염라왕이 오지 않으면 네 목을 베겠다』
강림에게 칼을 씌워 하옥시켰다.
다음날 사오시가 돼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김치원님이 강림이를 끌어내라고 호통을 치는 순간 천지가 요동을 하며 깜깜해져 버렸다.
바람이 크게 불어 잠긴 문들이 저절로 열렸다.
염라대왕이 마당에 와서 소리쳤다.
『누가 나를 불렀느냐』
겁이 난 김치원은 기둥뒤로 숨어 벌벌 떨며 나오지 못했다.
『저런 졸부가 나를 불렀느냐. 강림이는 어디 갔느냐』
강림이 불려나와 사정얘기를 했다.
염라왕은 과양생이를 불러오도록 했다.
『애기 낳으면서 공이 들었느냐』
『이를 말씀입니까』
『애기 죽으니 어떻더냐』
『애가 아픕디다』
『아이들은 어데 묻었느냐』
『큰 놈은 앞밭에 묻고 샛 놈은 뒷밭, 작은 놈은 옆 밭에 묻었습니다』
세 밭의 묘를 다 팠는데 시체가 없어져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면 연화못의 물을 퍼 봐라』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바가지로 못 물을 바닥까지 퍼냈다.
연못밑에는 언제 죽은 사람인지 뼈만 살그랑이 남아 있었다.
『이게 웬 시체냐』
겁이 난 과양생이가 그때야 죄상을 낱낱이 고했다.
『네 아들 죽는 것은 애가 아프고 남의 아들 죽이는 것은 즐겁더냐』
김치원은 아홉마리의 소와 일곱명의 장정을 불러서 과양생이 부처의 몸을 묶고 아홉가닥으로 찢어 죽이도록 했다.
염라대왕은 똑똑한 강림이를 데려다가 차사로 임명을 하고자 했는데 김치원이 반대했다.
『그러면 자네가 몸을 차지하게. 나는 혼을 차지할테니』
그거야 어떠랴.
김치원이 응락을 하니 염라대왕이 강림의 혼을 불러 저승으로 데려가 버렸다.
이때부터 강림이는 이승차사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혼이 빠져 나간 강림이는 이번에는 진짜로 죽어버렸다.
강림이 큰 부인은 섭섭하여 대·소상 삼년에 이르는 상을 치러 이때부터 기일 제사법이 마련됐다.

미니해설
강림의 일화를 통해 현재까지 전해지는 장례법의 유래가 설명되고 있다.
실제로는 장례풍습이 형성된 후에 신화가 생기거나 추가된 것으로 보이지만 신화속에서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해석을 하는 것은 흥미롭다.
제주(濟州)에 실제로 장례풍습이 전래된 것은 조선(朝鮮)시대로 알려져 있다.
제주(濟州)에는 부모가 죽어도 장례를 지내는 풍습이 없었다고 한다.
1443년 제주(濟州)목사로 파견된 기건(奇虔)은 산야에 가마니에 싸인 시체가 널려있는 것을 보고 장례법을 세웠는데 이로 인해 죽은 고혼들이 고마와 했다고 한다.
신화에서는 장례법이 생긴 것은 김치(金緻)판관때의 일이라고 하고 있다.
김치(金緻)가 부임한 것은 기건(奇虔)의 재임 1백70년후.
신화에서 『김치(金緻)시대에 장례법이 생겼다』고 하는 것은 김(金)판관이 평소 사회제도의 다방면을 정비했기 때문에 착각한 구전자에 의해 잘못 전래되는가 아닌가 추정된다.
과양생이의 살인행각이 발각되는 과정은 현실감이 뛰어나게 묘사되고 있다.
김(金)판관당시 실제로 있었던 살인사건이 명석한 판관의 기지로 해결되면서 염라대왕을 등장시켜 신화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사건은 염라대왕이 아니면 못 풀 것』이라는 항간의 평가를 일축하고 김(金)판관이 이를 해결하자 신화화했을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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