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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차사(6)
강림이를 이승차사로 임명한 염라대왕은 적배지를 주고 여자는 70, 남자는 80까지 살도록 하고 차례로 저승으로 데려오라고 명령했다.
강림이 이승으로 오는 도중에 까마귀를 만났다.
할 일 없이 빈들거리던 까마귀는 강림에게 같이 일을 하자고 말했다.
『당신도 강가 나도 강가니 같이 일을 하면 어떻겠소』
『좋다. 그러면 이 적배지를 여자는 70, 남자는 80된 사람의 집에 붙여놓고 오너라』
적배지를 물고 이승으로 온 까마귀는 말을 죽여 가죽을 벗기는 밭을 지나게 됐다.
까마귀는 말피나 한 점 얻어먹을수 없을까하여 돌담위에 내려 앉았다.
이를 본 소로기(솔개)도 따라 내려앉았다.
『피 좀 다오. 까옥』
『나도 다오. 호로록』
그러는 새에 입에 물고 있던 적배지가 밑으로 떨어졌다.
적배지가 밑으로 떨어지자 담밑에 있던 흰 구렁이가 낼름 받아먹었다.
적배지를 먹은 뱀은 그 후부터 죽는 법이 없어 아홉번 죽으면 열 번을 환생한다고 한다.
적배지를 잃어버린 까마귀는 누구를 데려가야 할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제주에서는 무엇이든 새까맣게 잊어버리면 『말 죽은 밭에 들었다』하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누구를 데려가야 할지 모른 까마귀는 눈에 보이는대로 아무나 데려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른 가야하는데 아이가 가고 부모가 죽기 전에 자식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손자가 죽는 일들이 생겨났다.
까마귀가 죽음의 차사 강림의 심부름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까마귀가 죽음을 알리는 전령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침에 까마귀가 울면 아이가 죽었다.
낮에 까마귀가 울면 젊은이가 죽었다.
저녁에 울면 노인이 죽었다.
양반이 죽으려면 나무 윗가지에 앉아우는 까마귀를 볼 수 있었다.
중인이 죽으려면 나무 가운데 가지에서 울었다.
하인이 죽기전에는 낮은 가지에서 우는 까마귀를 볼 수 있었다.
담위에 앉아 울면 쌍놈이 죽을 징조였고 밭고랑에 앉아 울면 마소가 죽는 신호였다.
까마귀가 이처럼 사람들을 마구 잡아가니 얼마 안돼 저승이 남녀노소로 가득 찼다.
염라대왕은 강림이에게 이게 웬 일이냐고 야단을 쳤다.
강림이 까마귀를 잡아 족치니 까마귀는 『말죽은 밭에 들었었다』고 자백을 했다.
화가 난 강림이 밀 도리깨로 까마귀를 후려쳤는데 이때문에 까마귀는 매독이 올라 몸이 새까맣게 변하고 걸음도 어그적 어그적거리게 됐다.
똑똑한 강림이가 이승차사를 맡게 되니 누구든 사람으로 나서 죽지 않는 자가 없어졌다.
한 번은 소사만이라는 자가 염라대왕을 속여 4만년을 살다가 강림이가 이승차사를 맡은 후에 잡혀온 적이 있었다.
소사만이라는 자는 주년국사람이었다.
의지할 데가 없는 천애고아였는데 마굿간에 잠자러 갔다가 다섯살이 된 소녀를 만나 같이 빌어먹으러 다니다가 부부가 되어 같이 살았다.
총을 들고 산에 사냥을 다니며 들짐승을 잡아 먹고 살던 사만이는 어느날 산에서 버려져 굴러다니던 백년 묵은 해골을 주어다가 조상으로 집에 모셔두면서 위하였다.
이때부터 그 은혜를 입어 하는 일마다 잘되었다.
사만이가 서른 셋이 나던 해에 천황차사·인황차사·지황차사 삼차사가 사만이를 잡으러 왔다.
이를 안 사만이의 신이 사만이에게 계책을 일러줬다.
사만이는 삼차사가 다니는 길목에 큰 상을 차려놓고 밑에 자기이름을 써서 놔뒀다.
또 집에서는 큰 굿을 하여 염라대왕을 청해 대접하도록 했다.
사만이를 잡으러 오던 삼차사가 길가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 무심결에 잘 먹었다.
손을 닦으려고 상밑에 있는 수건을 집어들었는데 거기에 「소사만」이라고 쓰여 있는게 아닌가.
사만이의 대접을 받은 차사들은 차마 사만이를 잡아갈 수가 없었다.
염라대왕과 동자판관이 사만이집의 굿판에 놀러간 사이에 저승으로 간 삼차사는 삼십삼(三十三)이라고 쓰인 저승명부의 사만이 이름밑의 십(十)자에 한 획을 슬쩍 그어 천(千)자를 만들었다.
사만이의 수명은 삼천삼(三千三)세가 돼 버린 것이다.
돌아온 염라대왕은 삼차사를 불러 야단을 쳤다.
『사만이를 왜 안 잡아왔느냐』
『사만이는 아직 데려올 때가 아닙니다』
명부를 걷어보니 아닌게 아니라 앞으로 2천9백여년을 더 살아야 죽게 돼 있었다.
이때부터 사만이는 번번이 꾀를 부려 4만년을 살았다.
강림이 차사로 임명된 후에 염라대왕은 다시 사만이를 잡아오라고 했다.
검은 숯을 들고 지상으로 간 강림이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광청못가에서 열심히 숯을 씻었다.
지나가던 사만이가 이를 보고 괴이쩍게 여겼다.
『그 숯을 씻어서 뭐에 쓰려는 겁니까』
『숯을 씻어 흰 숯을 만들어 부모님에게 드리면 늙어도 죽지 않는다고 하오』
『허 참 내가 사만년을 살았지만 그런 소리는 생전 처음 듣소』
『네 놈이 사만이구나』
이래서 결국 사만이는 저승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미니해설
동물은 물론 사람의 시체를 먹는 까마귀는 불길한 존재이다.
까마귀가 몰려다니는 모습이 보이면 어디서 어떤 사람이 죽은 모습으로 발견될 지 모른다.
주민들의 애꿎은 죽음의 역사, 수난으로 점철된 우리나라 특히 제주도의 사람들에 있어서 까마귀는 죽음의 이미지와 곧잘 연결된다.
까마귀가 저승차사의 심부름꾼이라는 추론은 그러므로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제주의 속담에 『말 죽은 밭에 들었다』『까마귀 고기를 먹었다』얘기가 있다.
「새까맣게 잊었다」는 뜻이다.
이 신화는 『말죽은 밭에 들었다』는 속담의 기원을 그럴 듯하게 설명하고 있다.
까마귀가 「망각」의 상징으로 쓰이게 된 것은 이 새의 습성이 아니라 색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새까맣게 잊었다』고 표현할 때 「까맣다」는 것은 곧 이 새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음운의 동일성에서 유추한 일종의 비유적 표현으로 상징화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죽음의 이미지와 망각의 이미지는 까마귀라는 한 날짐승의 상징속에서 교묘하게 결합되고 있다.
사만이의 일화는 육지부의 「동방삭설화」와 유사하다.
동방삭은 사만이와 비슷한 수법으로 삼천갑자, 즉 1만8천년을 살다가 잡혀갔다고 한다.
차사에게 잘 대접했다던가, 십(十)이 천(千)으로 바뀌었다든가, 차사가 검은 숯을 씻고 있다가 잡았다든가 하는 화소(話素)가 모두 일치하고 있다.
어느 설화가 먼저인지는 모르지만 제주의 사만이는 동방삭보다 2만2천년을 더 살았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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