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35<

뱀으로 변신…일곱쌍둥이 낳아

칠성신(七星神)(2)
벌받은 「칠성아기」무쇠상자 타고 제주(濟州)에

장설룡내외는 칠성제를 지내 얻은 아이라는 뜻에서 아이의 이름을 「칠성아기」로 지었다.
칠성아기가 일곱 살 나는 해에 장설룡 내외는 벼슬살이를 떠나야 했다.
딸이 걱정된 내외는 늦인득 정하님(하인)에게 아기를 잘 지키면 갖다 온 후 종문서를 없애준다는 약속을 하고 떠났다.
칠성아기는 부모의 가마를 몰래 따라가다가 산중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인적이 드문 산중이라 중들밖에 지나가지 않았다.
울며 『부모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소연을 했으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절에 사는 사람이라 여자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오던 중은 칠성아기가 우는 것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짐짝에 넣어 데리고 갔는데 부모를 찾아주지는 않고 밤마다 데리고 자면서 노리개로 삼았다.
아이가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장설룡 내외는 급히 돌아왔으나 3년이 지나도록 찾을 수 없었다.
3년째 되는 날 칠성아기가 꿈속에 현몽하여 말했다.
『내일은 중들이 시주를 받으러 올텐데 맨 마지막에 오는 중에게 물어보면 알 도리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날이 되니 아닌 게 아니라 중들이 찾아왔다.
세번째 중이 왔을 때 장설룡이 물었다.
『우리 기집아이를 3년전에 잃어버렸는데 혹 알 도리나 있겠소』
『저는 모르겠습니다』
말로는 모르겠다고 하면서 중은 얼굴빛이 변했다.
『이 놈이 수상하구나. 잡아서 족쳐라』
중은 부리나케 도망쳐 버리고 장설룡은 마을 어귀에서 칠성아기를 찾게 됐다.
칠성아기는 배가 한 자는 나와 있었다.
『설운 아가, 어째 이리 됐느냐』
『중이 밥을 얻으면 나도 많이 주고, 못 얻으면 밥 한 술 주나마나 하다보니 배가 이렇게 됐습니다』
『머리는 왜 매방석같이 헝클어졌느냐』
『중놈이란 빗이 없다보니 머리를 빗겨주지 않아 이리 됐습니다』
칠성아기가 이리저리 둘러댔으나 아무래도 수상쩍게 생각한 장설룡내외가 가슴을 헤쳐보니 젖머리가 검게 변해 아기를 밴 것이 분명했다.
『이런 자식 찾아봐도 양반집에서는 쓸 데가 없구나』
장설룡이 죽이려고 길길이 날뛰니 송설룡이 말렸다.
두 내외는 야쟁이(대장장이)를 불러 무쇠상자를 만들고 칠성아기를 담아 바닷물에 띄워버렸다.
바다를 떠다니던 상자는 조천읍 함덕리 바닷가로 떠밀려 왔다.
마침 이곳에서 물질을 하던 옛개(현재의 신흥리라고 한다)의 잠수 일곱명이 상자를 발견하고 서로 먼저 차지하기 위해 머리 끄덩이를 매며 싸웠다.
고기 낚으러 가던 송동지 영감이 잠수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뜯어 말렸다.
『상자를 열어 보고 금이 나오든 옥이 나오든 안에 있는 것은 너희가 다 나눠가지고 상자는 나를 주면 담배갑으로나 쓰겠다』
송영감이 주먹으로 상자를 세 번 치자 문이 열렸다.
상자속에는 여덟마리의 뱀이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상자에 갇혀 한이 쌓인 칠성아기가 뱀으로 변신하여 일곱 쌍동이를 낳은 것이다.
잠수들은 저마다 침을 뱉고 돌아섰다.
『에구 징그러워. 뱀인줄 알았으면 싸우지나 말 걸』
그런데 그 날부터 잠수들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백가지 약을 써 봐도 낳을 길이 없었다.
하다 못해 문점을 해봤다.
『손으로 주은 죄, 눈으로 본 죄, 입으로 말한 죄에 걸어졌소』
잠수들은 그제서야 뱀들을 박대한 것이 생각났다.
다시 바닷가로 간 잠수들은 뱀들을 위로하기 위해 큰 굿을 했다.
굿에 쓸 해산물을 구하려고 바다에 들어가니 얼마전까지도 안 보이던 전복·소라가 부지기수로 잡혔다.
굿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온 사람들은 그 때부터 이 뱀신을 모시게 됐는데 날이 갈수록 재산이 불어나고 자손이 번창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을 주민들도 모두 같은 신을 모시기 시작했다.
칠성아기는 일곱 딸들과 의논했다.
『우리가 모두 같이 다니면 인간들이 싫어할 것이니 따로 갈라서는 게 좋겠다. 큰 딸아기야, 너는 어데로 가겠느냐』
『동헌(東軒)할망으로 가겠습니다. 도임상 받고 일만 제조(提調) 일만 관속 다 나 차집니다』
『둘째 딸 아기야, 너는 어데로 가겠느냐』
『환곡창고로 가겠습니다. 일만 백성 환곡 바치면 서창고도 일천 석, 동창고도 일천 석 쌀을 되다 남으면 다 나 차지 아닙니까』
『세째 딸 아기야 너는 어데로 가느냐』
『물에 물색 좋아 칠성골에 염색할망으로 가겠습니다』
『네째 딸 아기야 너는 어데로 갈래』
『사령(使令)방으로 가겠습니다. 죄에 걸어진 사람 풀릴 때면 돈이며 돗다리며 온갖 것 가져오지 않겠습니까』
『상놈은 되겠구나마는 잘 먹을 곳으로 가는구나』
『다섯 째야 너는 어데로 가겠느냐』
『일만 과실 열려서 나라에 바치고 남은 건 다 차지하게 과원(果園)할망으로 가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딸들이 다 갈라 서고 작은 딸 아기는 집안 뒤곁의 「밧(밖)칠성」으로 들어서고 어머니 칠성아기는 고방(庫房)안의 「안칠성」신이 되어 사람들의 섬김을 받게 됐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주민들 사회·역사적 지위따라 신(神)위상 변화

꼭같은 옛날 사람들인데 왜 대국(大國)인 중국(中國)사람들은 용을 숭배하고 작은 섬 제주(濟州)의 사람들은 뱀을 숭배했었는가.
황금의 양피를 지키는 서양의 용과, 여의주를 물고 있는 중국(中國)의 용, 쌀을 지키고 있는 제주(濟州)의 뱀은 모두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으며 비슷한 신적인 기능을 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서양과 중국(中國)의 용은 환상적인 신화속의 동물로 변하고 숱한 예술작품의 소재로 등장했으며 반면 제주(濟州)의 뱀은 징그럽고 추악하며 퇴치해야 할 동물로 변해버렸다.
이는 신화의 「주인」, 즉 전승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역사적 지위와 관련된 변화가 아닌가하는 느낌이 든다.
일부 옛 문헌이나 구전에 의하면 제주(濟州)주민들의 수호신중 뱀이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러나 「뱀신앙」과 이의 폐해를 언급하는 이런 문헌은 모두 유교사상에 물들어 현지민들을 「미개인」으로 봤던 관료출신들에 의해 기록된 것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뱀신을 퇴치한 것으로 전해지는 서연(徐憐)판관이나 이위상(李衡祥)목사는 조선(朝鮮)시대중에서도 중앙집권화가 완성되어 민간신앙에 대한 탄압이 한창 진행되던 당시의 인물로서 신화의 성립자체가 중앙집권화와 유교화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데서 신화해석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육지에서도 같은 명칭과 기능의 「칠성신」을 섬기지만 그것은 북두칠성의 신이며 뱀이라고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
제주대(濟州大)의 이(李)기욱교수는 뱀의 생태학적 기능에서 착안, 『제주(濟州)의 뱀신앙은 곡식을 축내는 쥐의 천적인 뱀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신앙화한 것』으로 해석해 주목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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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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