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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신(軍雄神)
천지가 개벽하여 해도 둘 달도 둘이던 시절 지상에서는 대별왕·소별왕이 태어나 해 하나 달 하나를 떨어뜨려 질서를 잡고 서로 경쟁을 하여 소별왕이 이승을 차지하고 대별왕이 저승을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바다에는 아직 주인이 없었다.
동해바다에는 동해용왕, 서해바다에는 서해용왕이 살고 있었는데 서로 바다를 차지하기 위해 늘상 싸움을 하는 통에 바다가 평온한 날이 없었다.
두 용왕중에는 서해용왕이 힘이 세어 동해용왕은 번번히 눌려서 바닷속으로 도망치곤 했다.
동해용왕은 서해용왕을 이길 방법을 찾느라 날마다 고민을 했다.
이 때 땅 위에는 천황제석과 지황제석 사이에 태어난 거인 왕장군이 홀아비로 살고 있었다.
왕장군은 거대한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숲속으로 들어가 나무를 베어내다가 팔아서 살아가고 있었다.
어찌나 큰 나무를 베는지 나무 쓰러지는 소리로 용궁이 흔들릴 정도였다.
용궁물이 육지까지 흘러오는 데는 바다 밑에서 3년, 바다 위에서 3년, 물가에서 3년을 와야 할 정도로 먼 거리 였으므로 용궁이 울릴 정도면 왕장군이 얼마나 큰 나무를 쓰러뜨리는지는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게 왠 소리냐』
『땅 위에 왕장군이 나무를 베는 소립니다』
『그러면 어서 가서 왕장군을 모셔 오도록 해라』
동해용왕은 왕장군을 불러다가 서해용왕과 대적을 시킬 속셈이었다.
왕장군이 숲속에서 나무를 하는데 초립동이(草笠童)가 나타났다.
『너는 누구냐』
『나는 동해용왕의 아들이요. 동해용왕과 서해용왕이 싸움을 하는데 매양 우리가 밀리기만 하니 왕장군의 도움을 받으러 왔소』
『나는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없다. 그러나 바닷물 만은 무서우니 어떻게 너를 따라 가겠느냐』
『저하고 같이 가면 되겠습니다』
초립동이 왕장군을 업고 바닷속으로 들어가니 물길이 저절로 훤하게 열렸다.
용궁으로 들어가니 동해용왕이 기뻐하여 말했다.
『잘 왔소. 내일은 내가 서해용왕과 싸움을 하겠는데 내가 짐짓 져서 물속으로 들어가면 서해 용왕이 의기양양하게 물 위에 떠 있을 것이니 그 때 화살로 쏘아 죽여주시요』
다음날 동해 용왕은 서해용왕에게 싸움을 걸었다.
힘이 비슷했으나 이 날도 서해용왕이 우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동해용왕은 싸우다가 힘이 다 한 듯 물 속으로 숨어들어 갔다.
물 위에 혼자 남은 서해 용왕은 우렁찬 포효를 지르며 힘껏 위세를 뽐내다가 왕장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때부터 바다는 동해용왕이 다스리게 됐다.
기뻐한 동해용왕은 왕장군을 위해 큰 잔치를 벌였다.
초립동이로 변장했던 용왕의 아들은 왕장군에게 말했다.
『이제 용왕이 불러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 볼 터인데 그 때는 모든 것을 마다하고 연갑(硯箱)을 달라고 하시오. 그 속에는 우리 누이가 있는데 그러면 만사가 편할 것이오』
동해용왕은 아니나 다를까 왕장군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다 주겠다고 약속했다.
왕장군은 초립동이가 말해 준대로 연갑을 달라고 했다.
동해용왕은 난색을 표했으나 약속을 했으므로 할 수 없이 연갑을 내주었다.
왕장군이 인간세상으로 돌아와서 사는데 그 연갑 속에서는 밤마다 월궁의 선녀와 같은 여인이 나와서 같이 배필이 됐다.
또 왕장군이 원하는 것이면 옷이든 음식이든 무엇이든 갖고 와서 큰 부자가 됐다.
두 부부가 3년을 사는 사이에 아들 셋을 낳았다.
큰 아들의 이름은 왕근(王建)이라고 지었으며 샛아들은 왕빈(王賓), 막내 아들은 왕사랑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집안에 걱정이 없어지자 용왕의 딸이 왕장군에게 말했다.
『나는 인간이 아니니 이제 용왕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서방님은 아이들과 함께 군웅(軍雄)이 되어 사십시오』
그래서 이들은 병사(兵士)의 신·벼슬의 신이 되었다.
강남(江南)천자(天子)국에서는 천자군웅이 됐으며 일본(日本)주년국에서는 효자군웅, 조선(朝鮮)에서는 역신군웅이 됐다.
금조좌랑 병조좌랑 호조좌랑 어영대장 삼정승 육판서 팔도도감(道監) 십대신(十大臣) 각읍 수령을 차지했으며 문과·무과급제를 좌우했다.
양반집에서는 사당에 위패를 모시게 됐으며 무당집에서는 당주에 위패를 모셨다.
배 짓는 집에서는 선왕(船王)군웅이 됐으며 사냥하는 집에서는 산신(山神)일월(日月, 조상이라는 뜻)이 됐다.

미니해설
군웅(軍雄)에 대한 신화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일제(日帝)강점기 일본인(日本人)들에 의해 수록된 「조선무속의 연구」에 비교적 자세히 기록돼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 본의 줄거리를 따랐다.
군웅은 주신(主神)이 아닌 잡신계열에 속한다.
신화의 내용을 보면 전투의 신이며 왕을 돕는 장군급 신임을 알 수 있다.
즉 신들의 서열로 봤을 때 어떤 직능을 차지하는 주신(主神)이 아닌 2차 신격(神格)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세계에서 적용되는 벼슬의 개념이 신들에게도 적용된 것 같다.
왕장군의 큰 아들인 왕근(王建)은 고려(高麗)의 태조와 일치하여 흥미롭다.
「금조」는 조선무속의 연구에는 금조(禁曹)로 기록됐으나 고려시대의 관직인 금조(金曹)의 이전인지도 모른다.
금조(金曹)는 고려(高麗) 관제인 6부의 하나로 상서호부(尙書戶部)이며 나중에 호조(戶曹)로 바뀐다.
「천자군웅」이라는 것은 천자의 신하들에 해당하는 신, 또는 그들의 수호신격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효자군웅」이라는 것은 「조선무속의 연구」에 효자(孝子)군웅이라고 나와 있으나 다른 본에서는 「소조군웅」으로도 전해져 천자(天子)와 대립되는 개념으로서의 소자(小子)를 쓴 것이 기록과정에서 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조선(朝鮮)의 「역신(逆臣)군웅」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왕조가 많이 바뀐 것을 빗댄 것이 아닌가 본다.
동해용왕의 딸이 왕장군의 아내가 되는 것은 일종의 정략결혼의 형태를 띠고 있다.
나라간의 전쟁이 치열했을 때 정략적으로 행해지던 관행이 신화적 형태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군웅」이라는 신격은 굿판에서는 조상신이라는 뜻의 「일월(日月)」과 혼용되고 있다.
민속학자들간에도 정확한 성격규명이 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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