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37<

밤엔 이승서 살고 낮엔 저승살림

허웅아기
곳간 숨은 허웅아기 저승사자가 혼(魂) 빼어가

허웅아기는 나이 열 다섯의 어린 어머니였다.
열 세 살된 남편과 사이에는 세 살된 아들과 한 살짜리 젖먹이 딸이 있었다.
나이는 어렸지만 어린 낭군을 극진히 받들고 얌전하고 착실히 살림살이를 했다.
시부모를 모시고 살면서 열 두 마루를 닦고 열 두 부엌을 치우고 열 두 개의 방에 불을 때고 열 두 마당을 쓸어둔 후 앞 산 뒷 산을 누비며 여린 고사리를 꺾어다가 맛 있게 요리를 하여 상에 올리곤 했다.
어찌나 살림 솜씨가 좋았던지 저승의 염라대왕에게까지 소문이 들렸다.
그 때가 세상 천지가 생긴 때라 저승은 살림살이가 엉망이었다.
그래서 염라대왕은 허웅아기를 데려다가 저승살림을 시키기로 했다.
추상같은 차사들이 데리러 온다니 허웅아기는 눈 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철 모르는 어린 낭군은 어떻게 하고 엄마찾는 어린 것들을 두고 어떻게 저승길을 간단 말인가.
『어머님, 이 밥 드시고 차사들 대접이나 하여 내 목숨을 구해주세요』
정성껏 상을 차려 들고 어머니에게 간 허웅아기가 빌었다.
『무엇으로 빈 단 말이냐』
『첫째에 얹은 큰 솥으로요』
『계집자식 하나 없어도 살 수는 있지만 솥 없이는 못 산다』
어머니는 매정하게 거절했다.
허웅아기는 다시 아버지에게 가서 빌었다.
『아버님, 아버님 이 밥 잡숫고 타는 말이라도 걸어 내 명이나 빌어주세요』
『대신 내 줄 말은 없다. 네 명대로 살다가 가려무나』
다시 할머니·할아버지에게 가서 말했다.
『할아버지·할머니 마소라도 걸어 내 목숨을 구해주세요』
『너 없어도 살지만 마소없으면 못산다』
평소에 그렇게 위했던 부모·조상들이 모두 외면했다.
허웅아기는 할 수 없이 언니방으로 찾아갔다.
『언니 언니, 날 잡으러 오는 차사는 벙것 벗어 등에 지고 붉은 밧줄을 둘러 매고 옷깃을 펄럭이며 달려 오고 있습니다. 저 차사에게 인정(재물)이나 걸게 해 주세요』
『설운 동생아, 열두폭 치마 한 벌 뿐이로구나. 이거라도 걸어서 사정을 해 보아라』
허웅아기는 언니의 치마를 받아다가 마당에 걸어놓고 정화수를 떠다놓고 향을 피워 눈물을 흘리며 기원했다.
그러나 매정한 차사는 허웅아기의 어깨를 치면서 저승으로 데려가고 말았다.
저승에서 비단을 짜는 일을 맡아 짜면서도 눈물이 흘러서 멈추지를 않았다.
염라대왕이 물었다.
『웬 일로 눈물을 흘리느냐』
『밥 달라고 우는 아이, 물 달라고 우는 아기, 철 모르는 어린 낭군 집에 두고 오니 눈에 삼삼, 귀에 쟁쟁하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밤에는 이승에서 살고 새벽이 오면 저승에서 일을 하거라』
이때부터 허웅아기는 이승닭이 울면 저승으로 가고 저승닭이 울면 이승와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아 이승과 저승살림을 동시에 하면서 살게 됐다.
동네사람들은 허웅아기가 죽은 줄 알고 있는데 그 집 아이들이 여전히 전처럼 깨끗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이상하여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너희들은 엄마도 없는데 누가 옷을 빨아 주고 머리를 빗질해 주느냐』
『우리 엄마가 왜 없어요. 밤마다 와서 돌보아 주는데요』
『그러면 너희 엄마가 오면 나에게 가르쳐 다오』
큰 아이는 어머니로부터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라는 당부를 받았지만 『엄마를 저승으로 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달콤한 소리에 속아 그러마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 날 밤 날이 저물어 어머니가 오자 큰 아이는 아무도 몰래 살짝 빠져나가서 이웃 할머니에게 엄마가 왔다는 말을 하고 말았다.
이웃집 할머니는 허웅아기에게 야단을 쳤다.
『어린 낭군 어린 자식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고 낮마다 어디를 그렇게 쏘다닌단 말이냐』하고 곳간에 가둬버리고 말았다.
『저승살림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어느 명이라 어깁니까. 저승차사가 찾아와서 잡아갈 터입니다』
『그러면 숨어있으면 될 게 아니냐』
할 수 없이 허웅아기는 곳간에 숨어있었다.
올 때가 되어도 저승에 오지를 않자 저승의 사자들이 허웅아기를 잡으러 왔다.
문이 꽁꽁 닫혀 있자 지붕 상마루를 헐어 그 곳으로 들어와 허웅아기 상(上)가마의 머리털 세 개를 뽑아가 버렸다.
『허웅아기의 혼은 내가 빼어 가니 몸은 너희가 차지해라』
옛날에는 사람들이 산 몸으로 이승과 저승을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는 차사들이 혼만을 뽑아가는 통에 영혼은 저승으로 가고 육신은 땅에 묻게 됐다고 한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주민들 삶과 직접 연관없어 신화(神話) 도태

이승과 저승의 살림을 도맡아 했다는 살림꾼 허웅아기의 이야기는 구전되는 곳마다 달리 전하고 있다.
제주(濟州)가 삼읍(三邑)이던 당시 옛 대정읍(大靜邑) 지역인 남군 대정읍과 북군 한경면 지역에서는 아직도 이 이야기가 전해 지지만 제주목(濟州牧)과 정의읍(旌義邑)지역에서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대정읍(大靜邑)지역에서도 굿판에서는 천지개벽신화가 구송될 때 같이 읊어지기도 하지만 강림차사의 이야기가 말해질 때 덧붙여지기도 하는등 일관성이 없다.
저승살림을 맡아 하게 된 이 신의 이야기는 이승의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기 때문에 점차 도태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
이 신화가 수록된 본으로는 「남국의 무가」와 「제주무가집」이 있으며 민간에 전해지는 설화로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남국의 무가」에 채록된 「허웅아기본」은 「콩대기(德)」「팥대기(德)」가 주인공으로 등장 육지의 「콩쥐팥쥐설화」와 흡사하다.
콩쥐가 「밑빠진 독에까지 물을 가득 채울 수 있었다」는데서 착안, 허웅아기가 얼마나 살림을 잘 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차용된 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이승에 아침이 올 때 저승은 저녁이 된다」는 개념이 흥미롭다.
이승에서 저물 때면 저승은 새벽이 되는데 저승에서도 새벽을 알리는 닭이 운다는 원주민들의 생각이 신화속에 담겨 있다.
저승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 그러므로 땅속에 있으며, 지표를 중심으로 하여 이승의 반대편 나라라는 개념으로서 쓰인 듯 하다.
이승이 저승의 반대라는 생각은 제사를 지낼 때 국과 밥의 위치, 수저의 위치가 뒤바뀌는데서도 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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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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