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38<

어부들 목숨 구해준 봄바람의 신(神)

영등대왕
매년 음력2월 내도 해산물·곡물 씨 뿌려

봄바람의 신인 영등대왕은 난파당한 어부들을 구해 준 고마운 신이었다.
제주(濟州)에 봄이 오게 된 것은 영등대왕이 사람들을 위해 죽은 후부터였다고 한다.
영등대왕은 원래 성은 황씨요 이름은 영등이었는데 무휴(無)에서 솟아났으며 민간 사람도 아니고 저승사람도 아니고 바다인 요왕(龍王)의 사람도 아니었다.
영등은 바다깊은 곳에서 동정국의 아기씨와 서정국부인의 서녀(庶女)와 놀기를 즐겨했다.
음력 2월이 가까운 어느 추운 날 큰 고동나팔을 불며 놀고 있었는데 바다 위에서 큰 바람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영등이 황급히 바다 위로 올라 와 보니 한림(翰林)읍 한수(翰洙)리의 어부들이 탄 배가 풍랑에 휩쓸려 사람을 잡아먹는 외눈박이 거인들의 땅으로 떠밀려 가고 있었다.
그것을 본 영등대왕은 『저 사람들을 구제해서 살려야 한다』고 소리쳤다.
큰 바위 위에 올라 앉은 영등은 배를 인도하여 동굴처럼 움푹 패인 바위 밑으로 숨겼다.
선원들이 배를 바위 밑에 대고 바람을 피하고 있으려니까 외눈박이들이 그 곳에 도착했다.
『금방 좋은 요깃거리가 이리로 불려 왔는데 어디로 갔느냐』
『무슨 소리냐. 나도 그런 걸 찾으려고 나와 앉았는데 아무 것도 못 봤다』
영등대왕이 시치미를 떼자 그들은 할 수 없이 자기들 나라로 돌아갔다.
외눈박이들이 돌아간 후 영등은 어부들에게 배를 내어 놓아 보내며 『이 배를 타고 가면서 「가남보살(觀音菩薩), 가남보살」을 외우며 가라』하였다.
배의 뒤로는 순풍을 보내어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외눈박이 땅을 떠나 한수(翰洙)리 가까이 온 어부들은 마을앞 「한곶」이 보이자 안도하였다.
『고향에 다 왔는데 「가남보살」을 안 외운들 이제야 무슨 관계가 있으랴』
돛을 내린 어부들은 한가히 배를 댈 준비를 했다. 그러나 「가남보살, 가남보살」 소리를 그만둔 직후부터 홀연히 광풍이 불어 와 그들을 다시 외눈박이 땅으로 불려보내고 말았다.
『아이고, 대왕님 한 번만 더 살려주십시오』
『그때 내가 뭐라고 하였더냐…』
영등은 한숨을 쉬며 말했지만 일은 이미 그르쳐 버린 걸 어쩌랴.
『이번에 가면 「한곶」이 보여도 「가남보살, 가남보살」을 잊지 마라. 그리고 이후에도 영등달 초하룻날은 나를 기억해라』
한수(翰洙)리 어부들은 무사히 고향에 도착했다.
어부들의 냄새를 맡은 외눈박이들은 이번에는 개를 데리고 나타났다.
영등이 딴전을 피웠으나 외눈박이들은 속지 않고 그를 세 도막으로 찢어 죽여 바다에 던져버렸다.
영등의 다리는 한수(翰洙)리 「빗꿀물」바다로 올라왔고 잔등은 지금의 성산(城山)인 「청산」으로, 머리는 우도(牛島)로 떠밀려왔다.
영등은 몸은 죽었지만 영혼은 살아 제주(濟州)에 봄바람을 불어 보내주는 신이 됐다.
제주(濟州)의 사람들은 이때부터 그를 「영등대왕」이라고 부르며 영등이 죽은 음력 2월1일부터 15일까지 보름동안은 매해 영등대왕의 은공을 기려 「영등굿」을 지내게 됐다.
음력 2월 1일은 바람이 된 영등신이 섬 북서쪽 마을인 한수(翰洙리)로 들어 와 보름동안 도 전역을 돌며 바다에는 해산물의 씨를 뿌리고 논·밭에는 곡식들의 씨를 뿌렸다.
이에 따라 음력 2월 1일에는 한수리에서 「영등환영제」를 치르고, 13·14일등 이 기간 중에는 제주(濟州)시 건입(健入)동·구좌(舊左)읍 송당(松堂)리·하도(下道)리, 성산(城山)읍 신양(新陽)리·온평(溫平)리·오조(吾照)리등지에서 환영제를 열고 마지막날인 15일에는 우도(牛島)에서 환송제를 치러 영등신을 떠나 보내게 됐다.
영등대왕이 씨를 뿌리기 전에는 사람들은 아무도 밭을 경작하거나 고기를 잡지 못했다.
2월1일부터 15일까지는 「영등달」이라고 하여 바다에 어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축제를 벌이고 놀았다.
빨래를 하지도 않았는데 이 기간에 빨래를 해서 밖에 널면 옷에 벌레가 생긴다고 하며 또 농사를 지으면 흉년이 들고 장을 담그면 구더기가 일었다.
해산물도 이 기간에는 잡지 않는데 보말(갯우렁이)·소라등을 잡아 보면 속이 텅텅 비어 영등대왕이 오면서 잡아먹기 때문이라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다.
영등이 나가는 15일 무렵에는 흔히 대왕의 죽음을 슬퍼하는 눈물이 비가 되어 내렸다.
그러나 이 비는 봄비가 되어 이 기간이 지나면 제주(濟州)는 확연한 봄이 된다.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영등은 해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제주(濟州)를 찾아오는데 주민들은 영등제를 지내는 날이 청명하면 마음씨는 좋지만 의복이 남루한 영등, 추우면 옷이 많은 영등, 비가 오면 우장 쓴 영등이 들어온 것을 알아보곤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영등과 친숙해진 사람들은 「영등하르방」「영등할망」「영등나장」「영등도령」등으로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부르게 됐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주민들 "외국하르방″… 외부서 온 신앙 추측

영등대왕을 주민들은 흔히 「외국하르방」이라고 부른다.
이는 외국의 신이라는 뜻으로 영등대왕에 대한 제의행위가 외부에서 전래된 신앙이 아닌가 추측을 낳고 있다.
영등이라는 이름은 신라(新羅)·고려(高麗)시대에 성행했던 국가행사인 「연등회」를 연상시킨다.
연등회는 불교행사로 알려지고 있으나 학자들은 원래 풍년기원 행사였으나 불교에 융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濟州)에서 지내는 영등굿이 당시 육지에서 전래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 전라도 남쪽의 해안마을에서도 영등신에 대한 제의를 치르고 있으나 이같은 신화가 전래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등대왕은 신화상 어부들을 도와줬기 때문에 신격화된 것으로 돼 있으나 농산물도 풍요롭게 하는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도내에서는 어촌마을뿐 아니라 중산간 마을에서조차 영등신에 대한 정기제의를 치러 왔다.
영등신에 대한 이 신화가 주로 구송되는 것은 한수(翰洙)리 지역으로서 다른 지역에서는 영등굿을 할 때도 이런 내용의 신화를 구체적으로 구술하고 있지는 않다.
제주(濟州)에서 가장 유명한 영등굿은 제주(濟州)시 건입(健入)동 주민들이 치르는 영등굿으로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는 평가를 받아 지난 86년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71호로 지정돼 매해 음력 2월 14일 건입(健入)동 「칠머리당」에서 시연되고 있다.
영등굿은 제주(濟州)주민들의 민간신앙에 흡수돼 주민들의 성소(聖所)인 당에서 치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칠머리당」에서 열리는 영등굿에는 옛 건입(健入)동 주민들이 주로 어민이어서 어선선주·잠수등이 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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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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