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39<

일곱 도깨비형제 명산(名山)·대천(大川) 차지

도깨비
막내 도깨비 한라산(漢拏山)좌정…걸핏하면 심술

도깨비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제주(濟州)사람들에게는 그 모양이 익히 알려져 있다.
「영감」「야채(夜叉)」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도깨비들은 차림새가 누추하여 헌 도포에 짚신을 신고 헌 갓을 쓰고 짧은 곰방대를 문 우스꽝스러운 몰골이라고 한다.
옛날에 서울 남산(南山) 먹자고을에 허정승이 살았다.
넓은 논·밭에 소·말들도 많고 땅이 기름져서 큰 부자였다.
번듯한 기와집에 지붕 네 귀에는 풍경깨나 달아 잘 살았으나 언제부턴가 가운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아들 일곱 형제가 태어났는데 집안이 기울어가니 모두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져 산과 들, 바다를 차지했다.
제일 큰 아들은 서울이라 삼각산(三角山)[북한산]을 기점으로 송악산·인왕산·남한산성은 물론 남산일대, 동대문·서대문·남대문·종로사거리로 을지로·원효로·충무로·충정로를 주름잡았다.
둘째 아들은 한만(韓滿)국경선으로 가서 함경도 백두산(咸境道 白頭山)·구월산을 차지했다.
두만강·압록강이 다 제 차지였다.
세째 아들은 강원도 금강산(江原道 金剛山) 일만이천봉에 앉아 놀았는데 대엄산·소엄산·백설산은 물론, 춘천(春川) 수력발전소, 포천·화천일대, 소양강다리까지 다 관장했다.
네째 아들은 충청도 계룡산을 차지하였으며 다섯째 아들은 경상도(慶尙道)로 내려 가 태백산(太白山)을 차지했다.
여섯째 아들은 전라도 지리산(全羅道 智異山)차지해 목포(木浦) 유달산·삼학도 인근에서 놀았다.
일곱째 아들이 제주도 한라산(濟州島 漢拏山)를 차지했는데 얼굴도 허여멀쑥하고 풍채도 좋았으나 천하의 「오소리 잡놈」(난봉장이)이었다.
제주도(濟州島)로 내려오니 구경꺼리가 좋았다.
노는 모양을 보니 망(양태)만 붙은 대나무 패랭이를 쓰고 한 뼘밖에 안되는 곰방대를 물고 담배를 푹썩푹썩 피워댔다.
배로 지은 도포는 다 뜯어져 깃만 성하고 줄줄이 누빈 무명바지 저고리를 입고 총만 붙은 미투리를 신은 꼴이 말은 양반이로되 거지행색이었다.
한 손엔 연불(煙火), 한 손엔 신불(神火)을 들고 다니는데 순식간에 천리·만리를 왕래하며 농탕을 치기도 하고 애꿎은 집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진도(珍島)인근 섬들을 거쳐 바다로 들어와 조천(朝天)읍 함덕(咸德)리 「큰개」로 상륙했다.
썰물 때면 동쪽 바다에서, 들 물에는 서쪽바다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놀고 육지로 올라오면 한라산(漢拏山) 오백장군 인근에서도 나타나고 대정(大靜)고을 남원(南原)마을 할 것없이 출몰했다.
산으로 가면 어승생악·단골머리·아흔아홉골·백록담 어디에서나 등장하고 내 골짜기·계곡마다 없는 곳이 없었다.
도깨비는 특히 비오는 날이나 안개가 낀 음습한 날을 좋아하여 이·삼·사월 새 풀이 날 때나 오뉴월 녹음방초 우거질 때, 칠팔월 여름철, 구시월 천고마비의 계절이 돼도 바람속·구름속을 연불·신불로 날아다녔다.
이 신은 돼지고기와 수수범벅을 좋아하고 소주를 즐겨 먹고, 술이 취한 채로 해변·산중 아무데나 돌아다니면서 흉험을 주기 일쑤였다.
성널오름(城板岳)이나 절물오름에는 물이 좋아 여름철이면 사람들이 물맞으러 많이 다녔는데 그중 몇몇에게 의탁하여 병을 부르기도 하고 여자를 좋아하여 같이 살자고 수작을 거는등 심술궂은 귀신이었다.
그러나 이 신을 잘 모시면 일시에 거부가 되게도 해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어부들이 잘 대접하면 배를 지켜주는가 하면 고기떼를 한꺼번에 몰아다가 만선을 이루게도 해 주고 대장간의 신이나 마을의 당신(堂神)이 되기도 했다.
반대로 대접을 소홀히 하면 집 네 귀에 불을 붙여 일시에 망하게 하기도 했다.
지금부터 2백년전쯤에 구좌(舊左)읍 한동(漢東)리에 살던 부(夫)훈장은 술법이 능해 도깨비를 하인 부리듯이 부렸다고 한다.
한학(漢學)에 능했던 부(夫)훈장은 덕천리까지 공부를 가르치러 다녔는데 어두운 밤에 산길을 내려오면서 도깨비불로 길을 밝혔다고 한다.
또 하루는 사람들이 도깨비를 보여달라고 부(夫)훈장에게 졸라대 불러낸 것을 보니 원숭이 모양이었다고도 한다.
구좌(舊左)읍 행원(杏源)리 「어등개」에 사는 한 어부는 깊은 밤에 도깨비가 잘 나타나는 언덕으로 가서 수수범벅을 하여 올리고 부자가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 이후로 고기가 많이 잡혀 큰 부자가 됐다.
이 어부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도깨비가 언제 다시 자기 집을 망하게 할 지 몰라 두려운 마음에 도깨비를 쫓아버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부는 다음날 도깨비 언덕으로 가서 버드나무 막대로 언덕을 때리며 『다음에 다시 나타나면 혼내주겠다』고 으름짱을 놓고 마을로 내려왔으나 오다보니 그 새에 집에 불이 붙어 폭싹 망했다고 한다.
한 해는 구좌(舊左)읍 김녕(金寧)마을에서도 도깨비에게 제를 올려 멸치잡이 풍어를 이루었으나 도깨비를 모시지 않는 사람을 그물계의 임원으로 뽑았다가 멸치배가 먼 바다로 불려나 그물을 잃어버리고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도깨비에는 산도깨비와 죽은 도깨비가 있다고 한다.
죽은 도깨비는 불빛으로 만 번쩍 번쩍 돌아다니지만 산도깨비는 사람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구좌(舊左)읍 서김녕(西金寧)리에는 함경도(咸境道) 원산에 나타났던 도깨비이야기도 전해진다.
원산에 김(金)원산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하루는 부부의 꿈에 도깨비가 나타나 부인이 하루밤 몸을 허락하면 큰 부자로 살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처음에는 헛 꿈으로 생각했으나 밤마다 꿈을 꾸니 부부가 의논하여 『사람도 아니고 허깨비니 어떠랴』 싶어 허락했다.
다음날 밤 내려 온 산도깨비는 부인과 꼭 사람이 하듯이 방사를 치르고 갔는데 그 이후 창고에 재물이 그득 쌓여 큰 부자가 됐다고 한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영감놀이」양반풍자·익살 일품

도깨비에 대한 신화가 제주(濟州)에서 전래되는 것은 특이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제주(濟州)에서는 행원(杏源)리를 중심으로 한 구좌(舊左)읍 일대에서 도깨비에 대한 신앙이 있었으며 도깨비에 대한 설화도 이 지역 주민들에 의해 많이 전래되고 있다.
또 애월(涯月)읍 애월(涯月)리의 포구에는 어부들의 안녕을 지켜주는 도깨비(도채비)신에게 제를 지내는 신당(神堂)까지 마련돼 있다.
이 도깨비신의 기능은 주로 배와 관계된 것이다.
사람이 정신이 이상해 도깨비에 들린 것으로 판정되면 굿을 하여 도깨비신을 몰아내기도 한다.
전국에 흩어진 다른 도깨비들을 불러 모아 막내인 제주(濟州)의 도깨비를 데려가도록 함으로써 병을 구완한다.
이 과정은 굿중에서 「영감놀이」로 치러지는데 도깨비신에 대한 제의로서의 희귀성이 인정돼 71년 제주도(濟州道) 무형문화재 2호로 지정(기능보유자 이중춘)됐다.
매해 「칠머리당굿」이 시연될 때나 각종 문화제행사때 재현되고 있다.
놀이굿으로 시연되는 이 굿은 굿중에 벌어지는 심방들간의 풍자와 익살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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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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