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42<

“온세상 불쌍한자(者) 모두 구제하리”

세민황제 <2>
「팔만대장경」구해 활인(活人)·적선(積善)의 도(道) 마련

어느 영이라 거역하랴.
세민황제의 명을 받은 호인대사는 팔만대장경을 구하기 위해 극락세계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극락이 어느 땅 어느 구석에 붙었는지 알 수 없었던 호인대사는 무작정 걷고 있었다.
험한 절벽길로 들어섰는데 가운데쯤 갔을 때 길을 잃어 오도가도 못하게 돼 버렸다.
『호인대사』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어데선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요. 나 좀 살려주시오』
『나도 죽어가는 사람이어서 어찌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겠소마는 이쪽으로 뛰어내려 보시오』
절벽밑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 쪽으로 떨어지면 죽지 않소』
『죽지 않으니 뛰어내리시오』
망설이던 호인대사는 어차피 죽을 목숨 말이라도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절벽아래로 뛰어내렸다.
그 밑에는 작은 평지가 있고 한 사람이 산같은 바위 틈에 끼어 간신히 머리만 내밀고 있었다.
『당신 이름은 뭐요』
『빠른개비요』
『왜 이 곳에 와서 이런 곤경을 당하고 있소』
『세상에 다니면서 포학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아 천년간을 이런 벌을 받고 있소. 그리하여 천년이 지나면 죄가 사하여 호인대사가 이곳을 지나가거든 이 돌을 열게 한 후 나와서 호인대사를 도와주라고 하였는데 지금이 꼭 천년이 되었소』
『그러면 내가 이 돌을 어찌하여 열 수 있겠소』
『당신 손으로 밀면 얼마든지 열릴 것이요』
호인대사가 연약한 손으로 한 번 밀치니 산 같은 바위가 훤하게 열리고 빠른개비는 펄쩍 뛰어나와 무한히 사례했다.
『내 어깨에만 매달려 떨어지지만 마시요』
빠른개비가 호인대사를 업고 한번 용을 쓰니 절벽위로 번개같이 뛰어 올랐다.
절벽끝에서 다시 바다로 풍덩 떨어지자 거기로 넓은 길이 열려 한없이 걸어갔다.
가다가 보니 끝없는 망망대해가 나왔다.
작은 배를 얻어타고 뱃길을 수만리 갔는데 청수(靑水)바다 황수(黃水)바다 백수바다 흑수바다 적수바다를 지나 극락세계로 올라갔다.
극락에 도착한 호인대사는 옥황상제에게 내막을 일일이 아뢰고는 팔만대장경을 받아들고 희색이 만면하여 고향으로 돌아왔다.
호인대사는 세민황제 앞으로 돌아와서 팔만대장경을 올렸다.
밤낮으로 축원하며 호인대사가 팔만대장경을 구하여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세민황제는 기쁨을 못이겨 호인대사를 칭찬하고 즉시 높은 벼슬을 시켜주었다.
만조백관을 모아 조회를 열고 매일 장상을 불렀다.
매일 장상이 앞에 오자 자신이 저승에 갔을 때 당한 일을 상세히 이야기하고 이승에 온 후에 변장하여 매일 장상의 집에 찾아가던 일까지 모두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많이 적선을 한 것은 나에게 큰 교훈이 돼서 나도 이 다음부터는 활인의 덕을 베풀게 되었다』하며 매일 장상을 칭찬하고 고마와했다.
또 『너희는 나에게 칭찬 받는 것보다도 죽어 저승에 가면 그 칭찬이 몇 곱절은 될 것이다. 너의 저승 궤는 내가 본 때보다도 지금에는 더욱 불어나고 있을 것이며 네가 죽어가서 차지할 때는 다시 몇 곱절이나 더 불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매일 장상은 오히려 비웃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소인은 칭찬받기를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그 뿐만아니오라 오히려 부끄러워합니다』
세민황제가 이상스럽게 생각했다.
『그것은 웬 일인고. 네가 일 삼던 만인 적선, 활인의 도가 장하지 아니한가. 네 덕분으로 나까지도 이제는 선한 맘을 먹어서 선한 일을 해 저승에서 칭찬을 받게 되지 아니하였는가』
매일장상이 머리를 가로 흔들면서 말했다.
『소인은 원래부터 남에게 칭찬을 듣기를 싫어합니다. 소인이 생각한 만인적선 활인의 도는 수만분의 일도 닦지 못하였습니다. 아직도 밥 없이 굶는 사람, 옷없이 떠는 사람, 온갖 불쌍한 사람이 세상에 가득하니 어찌 만인적선을 하고 활인의 덕을 닦았다고 하겠습니까. 소인은 세상에 모든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지 못한 오늘 저승을 간다고 할지라도 낯이 없어서 저승왕을 대할 수가 없겠습니다』
세민황제는 크게 감동하여 지금까지 자기가 얼마나 잘했는지 매일 장상에게 떠들던 것을 부끄러워 하고는 온 세상의 불쌍한 사람들을 모조리 구제하여야 하리라는 것을 새삼스러이 통감했다.
그리하여 세민황제는 모든 것을 매일장상에게 의논하며 팔만대장경을 기준으로 불도·법당·기도, 모든 활인·적선의 도(道)를 마련했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중국(中國)통일 당(唐)태종 이세민(李世民) 얘기 전래된 듯

호인대사가 만난 빠른개비는 명(明)나라때 오승은(吳承恩)에 의해 쓰여진 장편소설 「서유기(西遊記)」속의 손오공을 연상시킨다.
그를 만나 많은 역경을 헤치고 팔만대장경을 구해 온다는 큰 줄거리까지 같다.
「서유기」는 대당(大唐)황제의 칙명을 받은 삼장법사 현장(玄奬)이 인도로 불전을 구하러 가는 길에 겪게 되는 기행을 쓴 소설.
이 소설은 현실세계의 추악함과 통치계급의 타락상을 요괴적 성격으로 구체화함으로써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회비판적 소설이다.
이 신화에서는 단순히 『먼 길을 걷고 갖가지 험난한 바다를 건너 갔다 왔다』는 정도로 역경을 단순화하고 있다.
이 신화의 목적은 사회비판과 풍자와 해학을 통한 카타르시스보다는 『왜 사람들은 이승에서 한없이 선을 쌓아야만 하는가』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세민(世民)황제」도 어데선가 낯익은 이름이다. 수(隋)나라이후 당(唐)나라를 세우고 중국(中國)대륙을 통일한 자가 바로 이 세민(李 世民)이었다.
수(隋)의 양제(煬帝)가 고구려(高句麗)를 침공한 후 전쟁에 따른 막대한 국력의 손실등으로 나라가 피폐해지자 이를 틈 타 반란을 일으키고 혼란에 빠진 중국(中國)을 통일한 것.
그는 무인 귀족집안의 자제로서 중국(中國)을 통일한 후 형인 황태자를 제거하고 자신이 황제의 직을 이어받은 무술과 병법이 뛰어 난 황제로 알려졌다.
중국(中國)을 통일한 후 충신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법제를 정비하고 선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때의 이야기가 제주(濟州)에 넘어 온 후 「적선(積善)」을 강조하려는 일부 불교계통 심방들의 입에서 구송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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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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