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44<

탄압불구 수백곳 살아남아

마을의 수호신들
사회 변동따라 신(神)·신앙 변화
여성신(神)서 남성신(神)으로 변천과정 역력

 당(堂)수 5백여곳 그 곳에 좌정한 수천명에 달하는 제주(濟州)의 신들은 모두 어데서 왔을까.
조선(朝鮮)시대이래 역사상 수차례의 탄압으로 수백개의 신당이 없어지고 무격이 귀속했던 사실에도 불구, 여전히 이곳에는 수백개의 신당들과 그 신화가 남아 숨쉬고 있다.
생명을 관장하는 권위적인 신이 있는가하면 할머니같이 포근한 신, 생업을 도와주는 신등 제주(濟州)의 주민들은 누구나 수호신의 그늘밑에서 살아왔다.
수많은 신들중 가장 원초적인 신으로 보이는 것은 마을마다 산재해있는「할망당」이다. 할망당신의 원조는 제주(濟州)를 창조한 것으로 알려진 설문대할망으로 보는 것으로 합당한 것으로 생각된다.
설문대할망의 신화는 마을의 사제인 심방들에 의해 좀체 구전되지 않고 있으며 단지 전설적인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으나 일부 마을에서는 그 희미한 신앙의 흔적을 찾아볼 수도 있다.
근세들어 가장 창궐한 「김씨(金氏)하르방」신들의 어머니격인 구좌(舊左)읍 송당(松堂)리의 「금백조」여신이 좌정한 송당(松堂)본향당에는 금백조보다 먼저 「세명주」여신이 있었으나 바람아래로 쫓겨났다는 신화가 전래되고 있다.
또 표선(表善)면 표선(表善)리에는 죽솥에 빠져 죽은 세명주가 일곱 아들 형제를 한라산(漢拏山) 오백장군과 우도(牛島)등 도내 각처로 보내 신이 되도록 했다는 신화가 전해지고 있다.
「세명주」는 「설문대」의 이명인 것으로 추측되며 이 신은 현재까지 제주(濟州)에 가장 많이 남아있는 「할망당」들의 기원이 아닌가 보인다.
「할망」이라는 신격을 가진 이 신들은 어린 아이를 돌보고 질병을 물리쳐주는 관대하고 여성적인 신이다.
할망신에 대한 신앙이 퇴조하는 것은 설문대의 아들들이 지칭하는 한라산신(漢拏山神) 즉 「하로산도」 또는 「하로백관」이 등장하면서부터이다.
이후 제주도(濟州道)신앙의 변천사는 시기적으로 봤을 때 대내·외적인 조건에 따라 한라산신(漢拏山神)에서 「송(宋)씨할망」으로,「송(宋)씨할망」에서 「금백조」의 아들들인 「김(金)씨하르방」에 대한 신앙으로 발전해 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신들의 분포는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기때문에 한 지역에서 신앙이 여러차례 바뀐 것으로 보는데는 무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여성신에서 남성신으로 주도권이 바뀌어 온 흔적은 역력하다.
이같은 현상은 원래 모계적 성격을 띠고 있던 제주(濟州)사회가 부계적 사회로 이전돼 온 사실과 무관치 않은 것 같다.
한라산신(漢拏山神)신앙이 상당히 앞선 시기에 형성된 것은 제주(濟州)의 물혈·지맥을 끊은 호종단의 신화와 여러가지 다른 신화·기록에서 알 수 있다.
고려(高麗)중엽[12세기]에 제주(濟州)에 파견된 호종단은 한라산신(漢拏山神)에 의해 응징을 받으며 이 신은 고(高)·양(梁)·부(夫)씨의 신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래서 한라산신(漢拏山神)은 개국신인 삼성신(三姓神)과 동급이며 그 신화는 개벽시대 직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양부(高梁夫)삼성사사고」에는 신라(新羅)시대초[196년]부터 삼신에 대한 제의를 치렀다는 기록도 있다.
한라산신(漢拏山神)의 당인 광양당은 이같은 공로로 국당으로 지명되며 이 신에 대한 신앙이 전도의 각 마을에 퍼져 있었으리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애월(涯月)읍 고내(高內)리의 신화에는 고려말(高麗末)[13세기] 삼별초의 수장인 김통정이 황서·국서·병서등 세 신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세 신은 활을 쏘아 인근에 자리잡았다고 하는데 이같은 신화의 유형이나 명칭은 모두 한라산신(漢拏山神)의 변형인 것을 알 수 있다.
원(元)이 목마장(牧馬場)으로 제주(濟州)를 점령하면서 들어 온 신앙형태가 「송(宋)씨할망」에 대한 신앙인 것으로 보인다.
애월(涯月)읍 광령(光令)리의 신화에 따르면 송(宋)씨할망은 옥황상제의 신하 송제대왕의 다섯 아들과 두 딸 중 큰 딸이다.
이 여신은 원(元)이 1300년대 불탑사를 세운 원당봉의 당신으로 좌정했다가 여몽(麗蒙)연합군이 상륙했던 애월(涯月)읍일대로 퍼진다.
이 신앙은 한라산신(漢拏山神) 신앙과 비슷한 시기에 공존했다.
30여곳에 이르는 애월(涯月)읍일대의 송(宋)씨할망당에는 구좌(舊左)읍 송당(松堂)리 「금백조」여신의 아들이나 손자인 「김(金)씨하르방」과 같이 좌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제주(濟州)시 도두(道頭)동, 애월(涯月)읍 하가(下加)·광령(光令)리의 신화는 김(金)씨하르방이 송(宋)씨보다 나중에 각 마을에 도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로 보아 송당(松堂)계열의 신화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사실은 이형상(李珩祥)목사등 조선(朝鮮)시대의 관리들이 신당을 탄압했을 때도 주요한 당으로 취급을 받지 않았던 데서도 알 수 있다.
신들의 분포를 보면 한라산신(漢拏山神)은 정의(旌義)지역을 중심으로 남군(南郡)일대에 주로 퍼져 있다.
서귀포(西歸浦)시 중문(中文)동의 신화에 의하면 한라산신(漢拏山神)들은 한라산(漢拏山)에서 솟아난 9형제에서 비롯되는데 이들은 을축 3월 대보름날 솟아났다.
「을축년」은 「갑자년」 천지가 개벽한 후 고양부(高梁夫)씨의 신이 도읍한 해로 신화상 삼신(三神)과 같은 급임을 알 수 있다.
한라산신(漢拏山神)에는 여신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져 흥미를 끌고 있는데 이들은 안덕(安德)면 일대에 흩어져 있다.
한림(翰林)읍 금악(今岳)리의 신인 「황서·국서」는 애월(涯月)읍 고내(高內)리의 신들과 명칭이 같은 한라산신(漢拏山神)계열로서 신화의 내용상 생업신의 성격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송(宋)씨할망들은 애월(涯月)일대를 중심으로 제주(濟州)시 서부지역에서 한림(翰林)읍 동부까지 집중적으로 퍼져 30여개 마을의 수호신이 됐다.
송당(松堂) 금백조의 후손인 김(金)씨하르방신들은 구좌·조천(舊左·朝天)읍, 제주(濟州)시 동부지역에 많이 분포됐으며 비교적 늦은 시기에 전도로 영향력을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한라산신(漢拏山神)과 송당(松堂)계열 신들의 분포는 현(玄)용준제주대(濟州大)교수의 「제주도무속자료사전」과 진성기제주민속박물관장의 「남국의 무가」에 비교적 상세히 채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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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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