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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신들 <2>
한라산신 아홉형제중 세째인 서귀포(西歸浦)시 호근동의 본향당신은 가죽옷을 입고 버선을 신고 장도칼을 둘러매고 사냥을 하면서 내려 왔다.
서귀포(西歸浦)위쪽 시오름 봉오리에 다다르니 각록이 달린 사슴무리들이 수만마리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앞에 가는 것들은 다 놓아두고 맨 뒤쪽에서 따라가는 사슴을 잡아 약돌기(도시락주머니)에 담아 들고 고근산 윗녘 빌레냇가까지 왔다.
냇가에서 머리를 감고 목욕한 후에 올라와 보니 세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왔습니까』
『땅 차지, 물 차지, 단골(신앙민) 차지 하러 내려왔습니다』
신선들에게 물어보니 이곳이 바로 호근리마을이었다.
지남석과 나침반을 놓아 앉을 만한 자리를 찾아보니 「마불림동산」으로 혈이 뻗어 있었다.
마불림동산은 물이 없어서 좌정할 만한 터가 아니었다.
큰당동산으로, 법환리 「붉은 밭」으로 돌아다니던 한라산신은 먹을 물도 좋고 말 먹일 물도 있는 호근리 「돌흙」지경에 자리를 잡았다.
딸 일곱형제를 낳았는데 막내딸이 말을 잘 안듣고 심술이 궂었다.
일곱 살이 나던 해에는 견디다 못한 부모들이 작은 대바구니에 넣어서 서천꽃밭으로 죽으라고 던져버렸다.
심술은 궂은 아이였지만 똑똑하기는 그지 없었다.
마침 대정(大靜)고을의 형방이 말을 잃어버렸다는 신고를 받고 말도둑을 잡으러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정(大靜)형방놈이 말 찾으러 동쪽으로 가는구나마는 말은 서문밖 탱자나무에 목이 걸려 죽어있구나』
동쪽으로 가다가 아이가 바구니 속에서 하는 말을 들은 형방이 서문밖으로 가보니 정말 거기에 말이 죽어있었다.
신통하게 생각한 형방은 아이를 말뒤에 태우고 관아로 들어갔으나 귀찮아서 말팡돌위에 버려두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 그 자리에서 죽은 아이는 옥(감옥)할망신이 됐다.
아홉형제중 네째인 중문(中文)동 하로백관[한라산신(漢拏山神)]은 처음에 천제연 물아래 자리잡았으나 사농쟁이(사냥꾼)들이 나들고 산짐승들이 목욕을 해대서 부정이 만만하였다.
그 때 목수질 잘하고 불미질[대장장이] 잘하는 임씨집 임도령이 있었는데 정시[지관(地官)]의 말을 듣고 「도람쥐궤」[박쥐가 사는굴]로 하로백관을 모셨다.
이 하로백관은 쾌자에 구실동이 겹저고리에 대홍단 겹치마, 가막창신 은비녀, 놋가락지 준비해서 「진궁부인」과 결혼을 했다.
진궁부인이 임신을 하니 일천가지 음식을 해봐도 밥에선 밥내[냄새]나고 물에선 물내가 나서 먹지를 못했다.
진궁부인은 산에 갔다오는 길에 사냥꾼들이 산짐승을 잡아 나눠먹고 있는 것을 보고 고기를 한점 얻어먹고 돌아왔다.
『네 몸에서 어찌 종경내[지린내]가 나느냐』
『신산만산 노용산에 갔다가 사농쟁이들이 분육(分肉)을 햄시니 산뜻하게 사시미 한 점 얻어먹었습니다』
『부정하다. 진궁으로 내려가라』
쫓겨난 진궁부인은 여자아이를 하나 낳았다.
진궁아기는 커 갈수록 행실이 나빠서 무쇠상자에 담아 요왕[용왕(龍王)]황제국으로 귀양정배를 보냈다. 바다로 떠내려가 산호가지에 걸리니 요왕황제국의 개들이 짖어댔다.
요왕국에 들어간 진궁아기는 남자로 오인되어 용왕의 막내사위가 되었다.
그런데 석달열흘을 기다려도 술도 안먹고 내외법[방사(房事)]도 지키지 않았다.
막내딸이 아버지에게 여쭈었다.
『아버님, 얼마나 높은 사위를 맞았길레 석달 열흘 한 방안에 앉아도 여자 남자 구별을 모릅니까』
요왕이 사위를 불러들여 호통을 쳤다.
『엎드려 뻗쳐라, 여자 남자 결혼을 했는데 내외법이 없으니 너는 여자냐 남자냐.
내 딸이 얼굴이 나쁘냐 행실이 나쁘냐. 무엇이 소원이냐』
『이곳이 대국은 대국이라도 우리 소국만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선 사위는 손님이라 동창고도 열고 남창고도 열고 낮도 이레 밤도 이레 잔치를 하되 소도 전(全)마리로 잡아 두일레 열나흘 게와시[거지]잔치까지 벌입니다』
『낸들 사위 손하나 대접 못하랴』
요왕국이 잔치준비로 법석인데 병란이 일어났다.
처부모가 선봉대장으로 나설처지가 되자 진궁아기가 대신 나서서 병란을 수습했다.
요왕이 치사를 하고 소원을 말하라고 했다.
진궁아기는 오곡씨를 타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천지가 떠들썩하게 돌아온 진궁아기는
『요왕황제국 아기씨한테 장가들고 병난을 잠재우고 천가지 부술(符術)을 받아왔습니다』
하고 아버지 앞에서 큰소리를 쳤다.
겁이난 하로백관은 『우리 외딸아기 똑똑하다』하고 「불목당」에 자리를 주어 좌정하라고 했다.
이때부터 불목당에 「진궁부인」「진궁아기」「요왕아기」등 세신위가 좌정하게 됐다.
이때에야 진궁아기가 여자라는걸 알아차린 요왕아기는 가슴에 한이 맺혔다.
그래서 이 신에 들리면 폐렴·복막염·간장염이 되고 여자는 하혈을 한다고 한다.
처음에 김씨할머니가 「못동산」에 모셨으나 화재를 당하여 천제연옆 「정동이궤」로 갔다가 부정한 게 많아 도람쥐궤로 같이 모시게 됐다.

미니해설
제주도 마을수호신들의 신화에는 대부분 신들이 좌정처를 옮기는 내용이 있다.
때로는 신의 내력담은 아예 없어지고 장소를 옮겨다닌 이야기만 남기도 한다.
이런 신화는 신의 이동보다 오히려 신전(神殿)의 이동, 즉 신앙민인 주민들의 이주를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신들은 인간의 마을형성에 따라 옮겨 다닌다.
마을 전체가 옮겨 다니기도 하지만 때로는 특정 신앙민 집단의 이주로 이루어진다.
신화를 보면 주민들의 이주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속에는 마을에 벌어진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반영돼 있다.
신당탄압의 경우 역사와 직결되는게 보통이다.
18세기초에 있었던 제주목사 이형상씨의 탄압과 이로 인한 당의 이동은 당시 있었던 강력한 중앙집권화와 유교화정책을 말해준다.
또 구한말의 신당탄압은 외래종교 천주교를 앞세운 외세의 도래, 이른바 「셍교란[성교란(聖敎亂)]」과 맥을 같이 한다.
마을에 따라서는 한두번 옮기는 정도에 그치는 곳도 있으나 어떤 곳은 20여곳이나 옮겨다닌다.
그만큼 애환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을의 당신화는 주민들의 살아 숨쉬는 역사의 장인 셈이다.
호근리의 신화에서도 그런 내용이 있다.
우선 사냥하는 이야기가 나오므로 주민들의 생업이 수렵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나중에는 「말 먹일 물」을 찾아야 했기 때문에 목축이 주민들의 생업이됐음을 알 수 있다.
중문(中文)의 신화에는 농경문화의 도래가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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