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49<

귀양온 천자국 딸 셋 흩어져 수호신(神)

세 여신(女神)
남성신(神) 물리치고 신통력발휘 마을 차지

먼 옛날 천자국의 딸 셋이 제주도(濟州島)로 귀양을 왔다.
해안을 떠돌던 세 처녀는 저마다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제주도(濟州島) 각지에 흩어져 마을의 수호신들이 됐다.
큰 딸 정중부인은 조천(朝天)읍 조천(朝天)리의 수호신이 됐고 둘째딸 관세전부인은 구좌(舊左)읍 김녕(金寧)리의 신, 막내딸 명오부인은 성산(城山)읍 신산·온평(新山·溫平)리등지의 마을수호신이 됐다.
정중부인은 풍운조화를 잘 부렸다.
그에게는 흑부채와 청부채가 있는데 흑부채를 부치면 바람이 불고 풍랑이 심해져 배를 띄울 수가 없었다.
이미 떠 버린 배가 있어도 정중부인이 심통을 부려 흑부채를 부치면 폭풍이 몰아쳐 배가 반드시 파손돼 버리곤 했다.
조천(朝天)은 제주(濟州)와 육지의 해로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중심지였다.
옛부터 육지를 왕래하는 사신이나 조공선들이 이곳을 많이 이용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나 이곳 포구에서 배를 띄우는 사신, 또는 선주·선원들은 반드시 배를 띄우기 전에 정중부인에게 제물을 울리고 기원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
그러면 정중부인은 청부채로 순풍을 보내주어 무난히 바다를 건너갈 수 있게 해 주곤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연유에서인지 주민들은 정중부인에게 제를 지내지 않게 됐는데, 그 후로 마을에는 큰 사건이 많이 생기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정중부인은 처녀로 죽었다.
한 번은 아버지가 강원도(江原道)고 어머니가 철산인 「중의대사」라는 스님이 정중부인과 같이 살려고 조천(朝天)으로 왔다.
『혼자 살면 외로우니 같이 사는 것이 어떻겠소』
모양을 보아하니 중은 중인데 술냄새도 나고 돼지고기 먹은 냄새도 나는 영락없는 땡중이었다.
천자의 딸로서 고귀한 신분이었던 정중부인이 아무런들 이런 중과 같이 살 수 있으랴.
정중부인은 역정을 내어 중의대사를 내쫓고 말았다.
『땅도 내 땅이요 물도 내 물이니 당신이 같이 좌정할 곳은 없소』
능청없이 거절을 당한 중의대사는 남향하여 북촌(北村)마을로 갔다.
마침 이 마을 김(金)첨지집에서는 회갑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중의대사가 이 집으로 들어가니 돼지가 몸을 감은 국물에 국수만 말아주었다.
국수 한 그릇을 먹은 중의대사는 생트집을 잡았다.
『이 국수 국물은 돼지고기국물이 아니냐. 제주(濟州)에서는 중도 돼지고기를 먹느냐』
『중인줄 미처 몰랐소』
뜨악해진 김(金)첨지집 사람은 음식을 더 줄 생각은 않고 귀찮기만 한 눈치다.
이왕 심기가 사나와졌으니 이 마을에서 밥을 얻어먹기는 그른 일이었다.
중의대사는 옆동네 행원(杏源)마을 「청천이 동산」으로 갔다.
얻어먹으려다가는 흉한 꼴만 당할 것 같은 생각이 든 중의대사는 마을에 흉험을 불러 흉년이 들게 했다.
동네 사람들이 문점을 해보니 중의대사가 내려온 것을 알았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중의대사를 위한 제물을 차려주게 됐다.
이 마을에는 바다의 신인 남당하르방과 남당할망이 있었는데 중의대사는 그 곁에 앉아 대접을 받게 됐다.
돼지고기를 먹는 부정한 신이었기 때문에 한쪽 구석으로 상을 받았다.
셋째 딸인 명오부인은 바닷가가 아름다운 신산·온평(新山·溫平)리의 해안으로 상륙하여 두 마을의 수호신이 됐다.
명오부인에게는 「문(文)씨 영감」이라는 충직한 하인이 있었다.
원래 문(文)씨 영감은 태어나서 일곱해가 지나도록 기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해 구덕속에 누워서 밤낮 울기만 하며 지내던 아이였다.
하루는 그 어머니가 혼인지(婚姻池)로 물을 길러 갔다 왔다.
당시 마을에는 우물이 없어 봉천수를 떠 먹던 시절이었다.
돌아와보니 울기만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던 아기가 감쪽같이 없어져 흔적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소리를 지르며 사흘 밤낮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명오부인이 신통력을 발휘해 어린 아이를 일으켜 세운 것이었다.
처음 황루알 해변에서 바다로 들어간 이 아이는 물 위에도 이레, 물 아래도 이레, 두 이레 열나흘을 바다에서 살고 10월 초7일 달이 질 무렵 신산(新山)리 「개옆 용머리」 바닷가로 걸어나왔다.
청색도포를 입고 무쇠갓을 쓰고 한쪽 손에는 유리잔, 한쪽 손에는 유리대를 들고 있었다.
그때부터 문(文)씨 영감은 명오부인의 신하가 됐다.
명오부인을 흠모한 이 아이는 영감이 되도록 결혼도 않고 살다가 죽어 묻혔다.
명오부인은 처녀로 죽고 문(文)씨영감은 총각으로 죽어 신이 됐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세처녀 제주(濟州)상륙」구도 삼성(三性)신화와 유사

성산(城山)읍 온평(溫平)리 해안은 탐라(耽羅)를 개국한 고양부(高梁夫) 세 신인이 벽랑국에서 온 세 처녀를 맞아 결혼했다는 장소이다.
이곳 바닷가로 세 여신중 하나가 상륙했다는 것은 이 신화와 삼성(三姓)신화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이들 세 여신이 제주(濟州)에 온 것도 먼 옛날인 것으로 추정된다.
구좌(舊左)읍 행원(杏源)리의 신인 중의대사가 제주(濟州)에 왔을 때 정중부인은 이미 조천(朝天)에 있었다.
또 표선(表善)면 토산(兎山)리의 「여드레당신」이 제주(濟州)에 왔을 때 신산·온평(新山·溫平)리에는 이미 명오부인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한라산신(漢拏山神)중 맏이로 알려진 성산(城山)읍 수산(水山)리의 신인「울뤠마루하로산도」는 호종단과 명오부인사이의 아들이라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정중부인과 관세전부인, 명오부인은 천자국의 세 딸이라고 하지만, 일설에는 경기(京畿)지방에서 유배 온 실제 인물이라고도 한다.
온평(溫平)리의 주민들은 이 마을 명오부인이 명나라 명천자 따님아기라고도 부른다.
어느 시절, 어느 곳에서 제주(濟州)에 들어 온 신들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들이 들어옴으로 인해서 바다 건너 외지로부터의 문물의 전래를 가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조천(朝天)의 정중부인에 대한 신화는 신앙민들이 끊겨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 신이 비바람을 부를 수 있는 부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삼성(三姓)신화처럼 농경과 관련이 있는 신이었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온평(溫平)리에는 「문(文)씨영감」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이 영감은 명오부인에게 제의를 지냈던 사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의 신당에는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이때 문(文)씨영감이 바다에서 입고 나온 청색도포, 쓰고 나온 무쇠갓, 들고 나온 유리잔·유리대등이 보관돼 있었다고 한다.
또 명오부인이 썼던 것으로 보이는 머리댕기·겹저고리·치마·장옷·노리개등이 남아있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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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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