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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할망 <1>
옥황상제가 행차를 할 때는 왼쪽에 「생불할망」, 오른편에 「화덕진군」을 거느리고 다녔다고 한다.
생불할망은 옥황상제의 막내딸이라고도 하는데 아이를 잉태시키고 사람과 만물의 어린애를 태어나게 하는 생명의 신이었다.
화덕진군은 불의 신이었다.
불을 이용해 갖가지 도구를 만듦으로써 인간들을 편리하게 했는데 그러다가도 인간들이 죄를 지을 때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벼락을 쳐서 징벌을 하기도 했다.
이들이 제주(濟州)에 내려오게 된 것은 둘다 아차 실수를 하는 통에 하늘나라에서 쫓겨나 이곳으로 유배됐기 때문이었다.
옥황상제의 막내딸은 하늘에서 편히 지내고 있었다.
만사가 편하여 심심하기 그지 없어 소일을 하던 중 하루는 인간세상의 할로영산[한라산(漢拏山)]에 구경거리가 좋다는 소문을 듣고 사흘치 양식을 싸 들고 구경왔다.
혼자 내려 온 이 아가씨는 구경에 정신이 팔려 먹을 것이 떨어지는 줄도 몰랐다.
사흘이 지나 양식이 떨어지니 눈은 흘깃흘깃 거려지고 목은 홍시리처럼 늘어나고 배는 등가죽에 달라붙었다.
허기져 앉아 있을 때 까마귀 하나가 나타나 이리 퍼떡 저리 퍼떡 날아다녔다.
막내딸은 염치 불구하고 말했다.
『까막아 너 이제 내 말 좀 부탁 들어다오』
『뭣 말입니까』
『배가 고프니 저 해변으로 내려가서 나록밭의 나록 한 고고리(꼭지)만 따다 다오』
그 까마귀는 허위벌떡 날아가 벼 한꼭지를 따다가 옥황상제 막내딸아기 손바닥위에 떨어뜨렸다.
손바닥으로 그것을 부벼 까서 입에 물고서야 겨우 허기를 면한 막내딸은 옥황으로 올라가서 아버님전에 문안드렸다.
딸에게서 인간 냄새를 맡은 옥황상제는 화가 났다.
『이년 괘씸한 년 인간의 공한(공짜) 쌀을 먹었더냐』
하고 죽일듯이 야단을 치고 쫓아내 버렸다.
막내딸은 세살 때부터 입던 옷까지 다 꾸리고 쫓겨나 다시 한라산(漢拏山)으로 내려왔다.
꽃 피는 삼월 열사흘 백록색 저고리에 연반 물치마를 입고 외코 접은 백록버선 나막창신 신고 새(鳥) 그려 새 참빗, 용(龍) 그려 용얼레기로 쉬흔 다섯자 머리를 허울허울 빗어놓고 꽃 댕기 드리우고 인간땅을 찾아 다니던 막내딸은 조천(朝天)읍 와산(臥山)리로 내려왔다.
「당오름」중허리로 내려 온 막내딸은
『어느 자손에 가서 상단골[신앙민]을 청해 보랴』하고 고민했다.
신들은 섬겨주는 사람들이 없으면 인간세상에서 살 수 없는 법이었다.
인근 마을 「내생이 묵은 가름」의 김(金)상잔집 따님아기가 시집간지 이십둘, 삼십 서른 넘고 사십 마흔해가 다 되어도 임신이 안 됐다.
남답 북답 넓은 밭도 좋고 마소도 풍성하였는데 대를 이을 아기가 없어 연일 탄식이었다.
어느 날 꿈속에 막내딸이 현신하여 『너 김상잔집 따님아기 아니냐』하고 물었다.
『예』
『부모 몸에 탄생한 후 열 다섯에 시집가 남답북답 밭도 좋고 마소도 풍족한데 애기가 없어 걱정이 아니냐』
『예』
『내일 아침 저 당오름 중허리에 올라 보라. 난데 없는 석상 미륵이 있을 터이니 산메(쌀밥)에 돌래떡, 백시리떡에 계란, 미나리채, 청감주나 준비해서 정성을 들여보면 석달 열흘 백일이 채 못돼 알아 볼 도리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따님아기는 당오름 위로 가서 둘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난데 없는 큰 석상이 거기 있었다.
그곳에서 따님아기는 기원을 해 드디어 임신을 했다.
그런데 임신이 되고 아홉달 열달이 되어가니 배가 불러서 올라갈 수가 없었다.
기어 올라간 따님아기는
『아이고 할마님아 저 아래 고장남밭(꽃나무밭)에 좌정하였더면 오가기가 좋을 걸, 앞동산은 높아지고 뒷동산은 낮아져서(배가 불러서) 네 발 손으로 기어왔다 갑니다』하고 말했다.
그 날 밤 하늘에 울리고 지하가 요동하며 벼락 천둥이 치더니 다음 날은 어느 틈에 그 미륵돌이 고장남밭에 굴러와 있었다.
어느 해 인가 미륵돌이 두 덩어리로 쩍 벌어져 마을사람들에게 흉사를 예고해 준 적이 있다.
마파람이 부는 어느 날 큰 불이 나서 마을 가운데로 타들어 가 30여호를 태우고 마을을 두쪽으로 갈라놓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미륵돌이 미리 예고해 주는 통에 미리 대비를 하여 1명밖에 죽지 않았다고 한다.
또 그 후에 가보니 돌은 저절로 달라붙어 갈라졌던 것 같지 않게 돼 있었다.
이 돌이 있는 곳을 「불도당」이라 하여 매해 제를 지내고 있다.

미니해설
송(宋)씨할망(신)神에 대한 신앙은 애월(涯月)읍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애월(涯月)읍 지역에서 전래되는 신화에 따르면 『옥황상제의 열두번째 신하 「송(宋)씨대왕」이 한라산(漢拏山) 「안스못밭」에서 낳은 딸』이라고 한다.
이 「송(宋)씨대왕」은 아들 다섯 형제, 딸 두 자매를 낳았는데 그중 둘째아들이 대정(大靜)읍「새당」의 「화덕진군」, 둘째 딸이 「송(宋)씨할망」이다.
그러나 서귀포(西歸浦)지역에서 채록된 신화에 의하면 『대정(大靜) 「새당」의 「화덕진군」은 옥황상제가 한라산(漢拏山) 「안스못밭」에 내려와 낳은 아들 7형제 중 둘째』라는 것이다.
결국 두 지역의 신화는 같은 신화이면서 변이종임을 알 수 있다.
두 신화에서 각각 등장하는 「옥황상제」와 「옥황상제의 신하 송씨대왕」은 사실은 같은 신격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귀포(西歸浦)지역에서 채록된 신화는 또 옥황상제의 첫째 아들이 「눈미」라고 한다.
「눈미」는 조천(朝天)읍 와산(臥山)리의 옛 이름이다.
즉 「누운 산」이라는 뜻의 마을명이다.
와산(臥山)리에서는 현재 「생불할망」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와산(臥山)리에서 전하기를 이 「할망」은 「옥황상제의 말젯딸」이라고 한다.
세 지역의 신화를 종합해 보면 한라산(漢拏山)을 신성시하는 의식과, 뒤늦게 주민들의 의식속에 자리잡은 「옥황상제」라는 신격에 대한 신앙이 마구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신화를 정리하기 위하여 옥황상제와 송씨대왕은 「옥황상제」로 통일했다.
옥황상제의 막내딸이 『쌀을 먹었다』는 것은 신의 세계의 계율을 깨뜨린 것을 뜻한다.
인간세계의 음식을 먹은 신은 다시 신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한다.
제주(濟州)의 신화에도 서구의 신화에서 볼 수 있는 「성(聖)」과 「속(俗)」의 개념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기독교신화중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을 쫓겨났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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