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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할망 <2>
화덕진군이 지상으로 추방된 것은 실수로 벼락을 쳐서 죄없는 여자아이를 죽게 했기 때문이다.
옛날 옛적 조천(朝天)읍 와산(臥山)리경의 「검은 땅 밭」에서 송(宋)씨 할머니가 큰 딸과 함께 김을 매고 있었다.
일을 하다가 몸이 나른해져서 큰 딸아기의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워 쉬고 있었다.
『큰 딸년아, 나 뒤 귀썰매를 걷어보아라. 어쩐 일인지 귓등에 고랑니(이)가 끓는 듯 가렵구나』
큰 딸이 어머니의 귓등 머리칼을 젖히고 봤더니 귀밥이 가득했다.
『어머님아 귓등을 걷어보니 고랑니는 없고 귀밥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면 귀밥을 내어 다오』
큰 딸이 나무가지를 꺾어 귀밥을 내려고 하다가 귀청을 쏘악 건드려버리고 말았다.
화가난 어머니가 딸에게 욕했다.
『이 년 난 것. 저 년 난 것. 도둑년 난 것. 지 애미 죽으라고 귀청을 쑤시는 년 어디 있겠느냐. 벼락맞을 년』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 때 마침 그 곳을 지나가던 벼락장군 화덕진군이 그 소리를 듣고 벼락을 쳐버렸다.
무심코 한 말에 벼락이 떨어져 딸이 죽어버리자 송(宋)씨할머니는 두이레 열나흘을 통곡하며 울었다.
『멩천같은(맑은) 하늘님아 그만씩 저만씩 말한 것에 죄없는 백성을 벼락 쳐 죽입니까』
땅을 치며 통곡을 하는 소리가 하늘까지 올라가니 옥황상제가 인간땅을 굽어 봤다.
아닌게 아니라 죄없는 백성이 벼락을 맞아 죽어 있었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벼락몽둥이를 거두고 벼락도 거두고 벼락틀도 거두어갔다.
전부 거두어 버리니 벼락장군 벼락사자는 옥황으로 올라가질 못하고 땅에서 살게 됐다.
벼락은 없어졌지만 화덕진군이 가는데는 불길이 따라다녔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줄불이 났다.
마을에 불이 잇따르자 필시 무슨 곡절이 있다고 생각한 마을 사람들이 불도당 곁에 제단을 마련하여 벼락장군에게 제를 지냈다.
그때부터 불길은 사그러 들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려니 이번에는 면장이며 이장이며 마을어른들이 연이어 죽었다.
그러던 중 어느 자손 꿈에 불도할마님이 현몽하기를
『인간에도 남녀간 구별이 있는데 비록 귀신인들 곁에 같은 좌석을 놓을 수가 있느냐. 그을음내가 가득해 않을 수가 없구나. 좌석 좀 갈아달라』했다.
마을사람들이 의논하여 벼락장군의 제단은 마을 동쪽 만년 팽나무 아래로 옮겼다.
그러고 나서야 마을이 평안해 졌다.
벼락장군 화덕진군의 소문이 알려지자 대정(大靜)읍 새당[신당(新堂)·현재의 덕수(德修)리]의 주민들은 화덕진군에 제의를 지내고 불을 다룰 수 있는 지혜를 빌어다가 「불미[풀무]마당」을 만들었다.
보섭·솥·볏등을 만드는 불미마당은 덕수(德修)리에 15-16곳이나 생겼으나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솥을 만들때는 특별히 돼지를 통째로 잡아 불미마당에서 제의를 지냈는데 이 제의가 전래돼 조선(朝鮮)시대에는「참봉제」를 유교식으로 지냈다.
「참봉」은 도깨비신을 일컫는 말로써 도깨비도 역시 불의 신이라는데서 따왔다.
옥황상제[또는 송(宋)씨대왕]의 자녀들은 모두 7형제였다.
이들은 조천(朝天)읍 와산(臥山)리와 대정(大靜)읍 덕수(德修)리외에 구좌(舊左)읍 세화(細花)리, 한경(翰京)면 「당머를」, 원당봉(元堂峰), 정의(旌義) 토산(兎山)「드렁소굴」의 수호신이 됐다.
원당봉(元堂峰)의 당신은 막내 아들로 너무 어려서 작은 딸을 같이 살게 했다.
원당봉(元堂峰)의 작은 딸은 그 후에 애월(涯月)읍 일대에 흩어져 이 일대 주민들의 수호신이 됐다.
애월(涯月)읍 상귀(上貴)리의 송(宋)씨할망은 지신(地神)이 용이 되어 승천하는데 희생이 되었다.
이 마을 「항다리궤」의 송(宋)씨할망은 강씨하르방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지신(地神)이 나타나 말했다.
『내가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야 하는데 지금 당장 배가 고파서 날아갈 수 없으니 당신 내외중 아무라도 좋으니 두 분이 의논하여 나에게 제물이 돼 준다면 그 보답으로 이 마을에 자손의 번영과 모든 재난을 막아주마』하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강씨하르방과 송(宋)씨할망이 고민을 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할망이 죽으면 하르방 혼자 살 수 없는 일이요, 하르방이 죽어도 할망 혼자 살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천지신명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정원 초7일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지가 요란하게 진동하여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용이 하늘로 날아갔다.
그 자리에는 용암이 생겨 송(宋)씨할망이 절규하며 쓰러졌고 강씨하르방도 애석하게 숨진 할망곁으로 가다가 바위틈에 끼어 죽었다고 한다.

미니해설
옥황상제가 양쪽에 거느리고 다녔다는 「생불할망」과 「화덕진군」은 두 신하이면서 동시에 자녀로 인식되고 있다.
또 딸이라고 전래되기도 하고 아들이라고 전래되기도 한다.
대정(大靜)읍 「새당」이라는 지명은 현재의 안덕(安德)면 덕수(德修)리를 가리키며 덕수(德修)리에서는 실제로 마을의 생업이 「불미」[대장장이]인데다 대장장이의 신[불의 신]을 섬기는 관습이 있어 이 신화와 일치하고 있다.
「송(宋)씨할망」이 주민들의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인 것으로 보인다.
제주(濟州)시 도두(道頭)동의 신화에 따르면 「송(宋)씨할망」은 구좌(舊左)읍 송당(松堂)리계열의 당신(堂神)인 김(金)씨하르방보다 먼저 이 마을에 있었고 애월(涯月)읍 하가(下加)리의 송(宋)씨할망은 고려(高麗)말 김통정이 내도했을 때보다 먼저 와 있었기 때문이다.
조천(朝天)읍 와산(臥山)리의 신화에는 실제 인간인 송(宋)씨할망이 등장한다.
또 대정(大靜)읍 덕수(德修)리에 대장장이 기술을 전래하는 것도 실제 인물인 송세만(宋世萬)인 것으로 전래되고 있어 이 신화들은 송(宋)씨의 입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송(宋)씨들이 입도하여 제주인(濟州人)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불과 4백여년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신화의 성립시기[조선(朝鮮)시대이전]와 일치하지 않아 송(宋)씨할망에 대한 신앙은 송(宋)씨의 조상으로 인해 생긴 신앙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신화상 연대는 고려(高麗)대이다.
또 이 신앙의 주요 발상지인 원당봉(元堂峰)에는 원(元)나라 말기 순제(順帝)의 제2황비인 기황후가 1300년께 원당사(元堂寺)를 세웠었다고 하며 지금도 이곳에는 당시 세웠다는 5층석탑이 남아 있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로 보아 송(宋)씨할망에 대한 이 신앙은 중국(中國)의 원(元)대 이전인 송(宋)나라때 형성된 신앙으로서 당대나 그후에 제주(濟州)로 전래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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