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52<

배고파 소 잡아먹고 배로 밭갈이

금백조 <1>
“남의 소까지 훔치다니…살림 가릅시다”

소천국은 한라산에서 솟아나고 금백조는 서울 남산 송악산에서 태어났다.
금백조가 인간에 탄생하여 일곱살 나던 해에 중의 아이를 배고 말았다.
아버지 백정승과 김씨부인은 금백조를 무쇠설캅[상자]에 넣어 바다로 띄워버렸다.
물결에 휩쓸려 떠돌던 이 상자는 성산(城山)읍 온평(溫平)리 바닷가로 떠내려왔다.
소천국은 가죽옷을 입고 감테모자를 쓰고 한라산에서 사슴·노루·산돼지를 잡아먹으며 살고 있었다.
이날도 한라산에 올라간 소천국은 온평(溫平)리 바닷가로 상자가 밀려오는 것을 보고 바닷가로 내려갔다.
내려갔더니 아리따운 아가씨가 상자 안에 앉아 있었다.
『네가 귀신이냐. 생인(生人)이냐』
『귀신이 어찌 여기 오겠습니까』
소천국은 손목을 잡고 같이 살자고 꼬드겼다.
막막한 타향에 온 금백조는 할 수 없이 소천국과 함께 살게 됐다.
부부는 구좌(舊左)읍 송당(松堂)리경에서 아들 5형제 낳고 산짐승을 잡아먹으며 살았다.
아이가 점점 많아지니 사냥으로 살아가기가 힘들었다.
여섯째 아이를 뱄을 때 금백조가 말했다.
『소천국님아, 아기는 이렇게 많아가는데 놀면서 살 수 있습니까. 농사를 짓는게 어떻습니까』
부인의 말에 소천국이 「오붕이 굴왓」을 돌아 보니 피 아홉섬지기나 되는 넓은 땅이 있었다.
소를 몰고 쟁기를 지워서 밭을 갈러 갔다.
금백조가 점심으로 국도 아홉동이, 밥도 아홉동이, 열 여덟동이를 차려서 밭으로 지고 가 소길마옆에 갖다놨다.
소천국이 계속 밭을 갈고 있는데 태산절의 중이 넘어가다가
『배가 고프니 밥좀 달라』고 청했다.
「제가 먹으면 얼마나 먹으랴」 소천국은 소길마앞에 밥이 있으니 먹고 가라고 말했다.
배가 고팠던 중은 국 아홉동이, 밥 아홉동이, 열여덟동이를 모조리 쓸어 먹고는 도망가 버렸다.
소천국이 배가 고파 점심을 먹으려고 보니 밥이 한 술도 없었다.
배가 고픈 소천국은 밭 갈던 소를 때려 죽여 찔레 나무에 구워 손톱으로 잡아먹었다.
익었는가 한 점, 설었는가 한 점 먹다보니 소 한마리가 다 없어졌다.
그래도 배가 고프자소천국은 주위를 둘러봤다.
옆밭에 검은 암소가 한 마리 풀을 뜯고 있었다.
이 소까지 잡아 먹자 비로소 다소 요기가 된 듯 했다.
쇠머리도 두개, 쇠가죽도 두 개를 담장에 걸쳐 두고 소천국은 잠대(쟁기대)를 쇠가죽으로 묶어 배에 대고 밭을 갈기 시작했다.
금백조가 점심 그릇을 가지러 왔다가 말했다.
『소천국님아, 어째서 배때기로 밭을 갑니까?』
『그런 게 아니라, 태산절 중이 지나다가 국 아홉동이, 밥 아홉동이를 다 들러먹고 도망가 버리니, 할 수 없이 밭갈던 소를 잡아 먹고 남의 소까지 잡아 먹어 이렇게 되었노라』
『당신 소 잡아 먹은 건 그럴 수 있지만 남의 소까지 잡아 먹었으니, 소 도둑놈, 말 도둑놈이 아니냐, 살림을 가릅시다』
금백조는 화를 내며 바람 위로 올라 가서 웃송당(松堂) 당오름에서 살았다.
소천국은 바람 아래로 내려서, 알송당(松堂)「고부니마를」에서 살았다.
소천국이 배운 것은 본래 사냥질이었다.
금백조와 갈라 선 소천국은 총열이 바른 마사총에 귀약통·남날래를 둘러매고 산야를 휘돌며 노루, 사슴, 산돼지를 잡아 먹었다.
사냥을 다니다가 「해낭곳 굴왓」에서 오백장군의 딸을 만나 첩으로 삼고 고기를 삶아 먹으며 새 살림을 꾸렸다.
소천국과 헤어진 금백조는 여섯째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세살이 되자 제 애비를 찾아 주려고 아이를 업고 소천국을 찾아왔다.
해낭곳 굴왓 움막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것을 보고 찾아가 보니 소천국이 있었다.
철없는 아이는 아버지를 만나 어리광을 부린다는 것이 아버지 무릎에 앉아 삼각수[수염]를 뽑고 가슴팍을 치는가하면 아버지 담배 피우던 곰방대를 흔들어 귀찮게 했다.
아버지 소천국은 화를 냈다.
『이 놈은 밴 때도 일이 글러서 살림이 분산되더니, 나서도 이런 불효한 행동을 하는구나 죽여야 마땅할 것이로되 그럴 수는 없고 동해바다로 띄워 버려라』
세살난 아들을 무쇠설캅에 담아 자물쇠로 잠그고 동해바다로 띄워버렸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금백조」자손들 제주전역 흩어져 마을수호

구좌(舊左)읍 송당(松堂)리 수호신인 「금백조」의 자손들은 크게 번져 제주도(濟州道)내에서 가장 많은 마을의 수호신들이 됐다.
세칭「김(金)씨하르방」이라는 마을의 수호신들은 대부분 금백조의 자손들인데 구좌(舊左)읍을 중심으로 전도에 걸쳐 분포돼 있다.
그래서 송당(松堂)의 금백조는「제주도(濟州道)당신의 원조」라고도 불리워 왔다.
그러나 이 신앙이 형성된 것은 다른 신앙보다 후대인 것으로 보인다.
금백조의 출생지는 채록본에 따라 강남천자국이라고도 하고 서울 남산이라고도 하고 송악산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섬밖의 외지에서 유입된 개념의 신인 것은 확실하다.
소천국은「소로소천국」이라고 하는데 출생지는 송당(松堂)의 「고부니 마를」이라고도 하고 강남천자국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금백조가 내도했을 때 소천국은 이미 한라산에서 생활하고 있었으므로 비교적 토박이 신인 것으로 보인다.
또 산짐승을 잡아먹는등 생활양상을 봤을 때 산신계열의 신임을 알 수 있다.
금백조가 도착한 것은 제주(濟州)시 화북(禾北)동 또는 삼양(三陽)동[가물개]이라고도 하고 구좌(舊左)읍 세화(細花)리라고도 하며 성산(城山)읍 온평(溫平)리 바닷가라고도 한다.
온평(溫平)리로 상륙한 것으로 보면 고·양·부(高·梁·夫)의 신화와 맥락이 통한다.
또 『천기를 보아 제주도(濟州道)에 천생배필이 있기 때문에 내려왔다』고도 하고 추방을 당했기 때문에 왔다고도 한다.
어쨌거나 금백조가 소천국과의 결합을 탐탁치 않게 생각한 점, 즉 금백조와 소천국의 신분상의 차이는 이 계열의 신화에 모두 나타나는 것이다.
신화속의 일화를 보면 이 신화가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이전되는 단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재배되는 농작물은 피·콩·팥등 화전에 의한 농작물들로서 농경시대초기의 산물이다.
금백조라는 여신이 농경의 동기가 된다는 내용은 역시 삼성(三姓)신화의 모티브와 일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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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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