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54<

신(神)들간 다툼이 마을간 불화 원인

금백조 <3>
자녀손자 일흔 여덟명 대가족으로 번창

여섯째 아들 궤네깃도는 한라산의 짐승들을 잡아 부모에게 제를 지내고 강남천자국에서 데려 온 군사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한라산으로 올라가 구경을 하다가 구좌(舊左)읍 김녕(金寧)리로 내려 와 이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다.
소천국과 금백조는 모두 열 여덟 명의 아들과 스물 여덟 명의 딸을 낳았다.
그들이 다시 아이들을 낳아 손자들이 일흔 여덟으로 가지가 벌어졌다.
금백조의 자손들은 구좌(舊左)읍 덕천리, 안덕면 덕수리, 성산읍 신풍·신천·하천리, 제주시, 표선면 성읍리, 구좌읍 한동리, 조천읍 교래리, 조천읍 대흘리 고평동, 조천읍 와흘리·북촌리, 제주시 동회천동·도련동·삼양동·도두동·아라2동·화북동, 구좌읍 김녕·세화리, 표선면 토산리등지에 흩어져 각각 마을수호신이 됐다.
한편 금백조여신과 관련, 구좌(舊左)읍 세화(細花)리에는 김녕(金寧)리나 송당(松堂)리와는 또 다른 내용의 신화가 전래되고 있다.
서울 남산 송악산에서 태어 난 백조아기는 나이가 들면서 부모의 눈에 거스르는 짓을 많이 하여 요왕국으로 귀양을 갔다.
요왕국에 사는 열 두 명의 외삼촌은 백조아기씨가 불쌍하여 한 사람이 하나씩 열두가지 부술(符術)을 가르쳐주었다.
또 백조아기가 요왕국을 떠날 때는 파란 주머니에는 파란 가루, 하얀 주머니에는 하얀 요술가루를 담아 내주고 바람을 다스릴 수 있는 청부채·백부채를 선물로 주었다.
백조아기가 선창가로 나가보니 제주(濟州)로 가는 배가 있었다.
『저기 가는 선주, 사공님아. 나도 같이 데려가기가 어떻습니까』
『여자란 것은 꿈에만 실려도 사물(邪物)인데 우리 가는 길에 무엇때문에 훼방을 놓느냐』
매정하게 거절당한 백조애기는 바닷가에 앉아서 청부채를 들어 동쪽으로도 흔들고 서쪽으로도 흔들었다.
동으로 부치면 동풍이 일고 서로 부치면 서풍이 불어 가던 배도 돌아오고 오던 배도 돌아갔다.
제주(濟州)로 가다가 바람에 불려 돌아 온 사공들은 그제서야 애기씨 앞에 엎드렸다.
『아이고, 애기씨 상전님아, 이 배를 탑서』
『아니다. 너희들 좋은 기술로 가는 길에 내가 어떻게 훼방을 놓겠느냐』
『그래도 오르십서』
통사정을 하니 백조애기씨는 못이기는 척 배에 올라「별진 고달도」를 거쳐 제주도 별도[화북(禾北)동] 「수진포」로 들어왔다.
한라산에 올라가 보니 천자할아버지가 상서화리[웃細花(세화)리] 「손드락 밀르」에 사는 것을 알았다.
조천(朝天)읍 교래(橋來)리 뒷숲을 거쳐 내려와 돔배남마루[돔배오름]에 앉아 쉬고 있었더니 허상잔집 따님아기가 물길러 나타났다.
『애기씨 요기나 조금 해 달라』
『무슨 음식을 먹습니까』
『백돌래떡에 백시리, 청감주에 계알안주를 먹고 닭을 잡으면 안전지(날개 안쪽 살)나 먹습니다』
허상잔집 딸에게 잘 얻어 먹고 길까지 물어 본 백조아기는 허상잔따님아기에게 주머니 하나를 끌러 주고 자신의 신앙민으로 삼았다.
『죽을 지경이 당하면 이 주머니를 내놓고 날 생각하면 세번까지는 살려줄 것이다』
교래리 들판으로, 산굼부리로, 새미오름을 거쳐 웃밤동산 알밤동산 안돌오름 밖돌오름 송당머리로 구좌(舊左)읍 평대리지경까지 내려왔다.
평대의 갯마리 멍둥소천국신이 지달피 바지에 산달피 윗도리를 입고 늬눈이 반둥갱이[네눈박이 사냥개]를 데리고 꿩사냥을 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면 천자할아버지 있는 곳을 갑니까』
『여기 있으면 내가 길 인도할 사람을 보내주겠습니다』
백조아기가 앉아 있는 사이에 집으로 뛰어 간 멍둥소천국은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운문대단으로 수놓은 옷에 남색 비단 쾌자를 입고 꽃무늬 전대를 매고 나타나 아기씨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웃멍둥이 알멍둥이지경을 내려와 소천국집에 당도하니 집 한 쪽에는 소 뼈, 또 한 쪽에는 말 뼈가 쌓여 있는게 보였다.
『아이고 쇠도둑놈 말도둑놈 사는 곳이로구나』
겁이 난 백조아기는 도망치려고 했지만 소천국에게 손목을 잡히고 말았다.
소천국이 겁탈하려하자 파란 주머니에서 파란 가루, 하얀 주머니에서 하얀 가루를 꺼내 푸하고 입으로 불었다.
가루를 뒤집어 쓴 소천국이 노릇노릇 죽어갔다.
『더러운 놈 잡아던 손목인들 남겨둘 수 있으랴』
은장도로 손목을 깎아낸 백주애기는 물명주전대로 손목을 감고 천자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화가 난 천자 할아버지는 신당의 심부름꾼 당하니 당소미들을 부르고 마흔 여덟 상단골 신앙민, 서른 여덟 중단골 신앙민, 스물여덟 하단골 신앙민들을 불러모아 회의를 열고 갯마리 멍둥소천국을 대령시켰다.
『내 자손 오는데 작폐를 했으니 너희 자손은 나 있는데 못 오고 내 자손은 너 있는데 못 간다. 새로 사돈은 맺지도 못할 것이고 이후로는 땅 가르고 물 갈라 발들여 놓지 못한다』
하고 엄명을 했다.
그후 두 마을 사람들은 서로 불화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얼마후 강남천자국의 대장군 「금상님」이 별방[하도(下道)]바닷가로 들어와 백조아가씨의 낭군이 되었다.
금상님은 육식을 했기 때문에 백조애기가 신앙민들에게 열두 흉험을 불러 일으켜서 소도 바치고 돼지도 바치게 했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유교주의 전래이후에 완성된 신화

송당(松堂)리의 신화와 이 신화에 따른 신들이 도내에 가장 창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신화의 완성연대가 가장 늦은 것으로 보는 근거는 신화의 내용속에 중앙집권제의 흔적이 있다는 점, 또 조선(朝鮮)시대에 있었던 민간신앙탄압의 표적이 되지 않았다는 점등이다.
이 신앙의 모체가 되는 송당(松堂)리의 수호신은 세명주·소로소천국·금백조등 세 신위다.
금백조가 주신(主神)이지만 가장 오래 된 신은 「설문대」의 다른 명칭인 세명주로 보인다.
송당(松堂)리에 살았던 채희주옹은 세명주의 한자표기를 「설명주(說明主)」로 하고 있다.
설(說)은 「설」이라고 읽히기도 하고 「세」라고도 읽히기도 한다.
즉 「설문대」가 한자표기등 전래과정에서 「세명주」로 바뀐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소천국은 행태로 보아 산신, 즉 한라산신(漢拏山神)임을 알 수 있다.
금백조는 나중에 제주(濟州)에 들어 온 신으로서 양반의 가문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있다.
이 지역의 신앙의 대상은 역사적으로 두 번의 큰 변동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설문대, 즉 세명주는 모계사회의 신이며 소천국은 부계사회의 신, 금백조와 그의 아들들은 유교와 중앙집권적 사고가 전래된 이후의 신이다.
신들의 순서는 그러므로 세명주 => 소천국 => 금백조이다.
물론 신앙에 따라 신화도 변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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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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