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56<

세째아들 육서도 「내끼 3마을」수호

금백조의 아들들 <1>
큰부인 천미천(川尾川) 가운데 버려 “여기서 살라”

한라산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긴 내가 있어서 그 하구를 사람들은 「내끼」 또는 천미천(川尾川)이라고 불렀다.
내가 흘러 바다로 들어가는 꼬리부분의 하천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 하천을 끼고 세 마을이 있었는데 성산읍 신풍리와 신천리, 표선면 하천리였다.
세 마을은 원래 같은 마을이었으며 예로부터 「내끼 삼(三)마을」이라고 불렸다.
이 마을들을 수호해 온 개로육서도는 금백조의 세째 아들이었다.
시절이 좋고 꽃도 잘 핀 어느 날 그는 동부인을 하여 한라산으로 구경을 갔다.
인근 마을 토산리 「새금상」까지 갔던 그는 먼 발치에서 어여쁜 처녀를 보고는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나는 사냥을 하다가 갈테니 당신 먼저 내려가시오』
처녀에 홀딱 반해 버린 육서도는 큰 부인을 앞서서 가라고 보내 놓고 새금상의 처녀와 둘이 손잡고 구경을 하며 내려왔다.
눈치 모를 큰 부인이 아니었다.
먼 산길을 혼자 내려 오노라니 시기심으로 애가 타고 목이 말랐다.
물을 찾지 못한 큰 부인은 산돼지 발굽에 고인 물이라도 먹기 위해 엎드렸다.
체통이 있는지라 맨 입으로는 못 먹고 보릿짚을 대고 빨아 먹었다.
그래도 몸에서는 지린내가 났다.
뒤늦게 와서 부인의 몸에서 지린내가 나는 것을 발견한 육서도는 몹시 화를 냈다.
『목만 가시지 말고 몸도 씻으시오』
육서도는 큰 부인을 허랑방탕 천미천 한가운데 버려두고 거기서 살도록 했다.
천미천은 여름철이 되어 큰 비가 오면 영락없이 물이 넘쳐 내가 터지는 곳이었다.
마른 하천의 돌투성이 속에서 살게 된 큰 부인은 평소에는 목이 말라하다가도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물에 흠뻑 젖어버리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사람들은 이 여신이 사는 곳을 「자운당」이라고 불렀다.
이 여신은 무서운 여신이 아니었다.
집안에 어린애가 아프거나 궂은 일이 생기면 이 곳에 찾아와 빌곤 했다.
그때마다 정성껏 제물을 준비하여 와서 대접을 하곤 했으나 비가 내릴 때면 금방 쓸려가서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하곤 했다.
한편 「육서도」와 같이 내려 온 작은 부인 새금상 처녀는 내끼지경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표선앞바다의 푸른 물결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표선리에는 남자답고 늠름한 「저바당한집」이 살고 있었다.
육서도가 같이 살자고 하소연했으나 마음은 벌써 바다로 가곤 했다.
『마음이 벌써 저바당한집에게 갔는데 어찌 당신과 같이 살 수 있겠습니까. 같이 살 수는 없지만 이왕 맺은 인연이니 제일이 돌아오면 제사상이나 같이 받고 일배(一盃) 한 잔씩 합시다』
새금상 처녀는 육서도를 두고 신천리 바닷가로 내려가 버렸다.
개로육서도는 슬펐지만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새금상의 처녀가 반한 저바당한집은 바로 개로육서도의 형이었다.
바닷가로 간 작은 부인은 잠수[해녀]들을 보살피고 오는 배 가는 배를 돌봐주면서 살았다.
이렇게 해서 세 부처는 따로 살게 됐는데 이 여신이 사는 곳을 가리켜 사람들은 「고첫당」이라고 불렀다.
제주시 동회천의 새미산신도는 금백조의 여덟번째 아들이라고 한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되 글을 읽을 줄도 모르고 활을 쏠 줄도 몰라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았다.
놀고 먹기만 하는 아들을 보다 못한 부모는 냄새를 잘 맡아 코가 맑은 개와 총열이 바른 총을 주어 한라산으로 쫓아보내고 말았다.
한라산에 들어 간 새미산신도는 그래도 곧잘 사냥을 했다.
물장오리 태역장오리, 긴 길거리 작은 길거리, 오름마다 산천마다 꿩사냥을 하고 매사냥을 하여 먹고 살았다.
아침이면 남노루, 낮이면 낮노루, 저녁이면 청노루도 잡아 간 콩팥 염통을 석석 회쳐먹고 더운 피를 받아 쌀 삼아 먹었다.
머무를 곳을 찾아 돌아다녀 보니 동회천마을이 살 만하였다.
동네 가까이에 살려고 했으나 간장·고추장냄새, 사람냄새가 못견뎌서 마을 동쪽의 만년 묵은 팽나무밑으로 가서 살았다.
이 산신도는 글도 못 쓰고 활도 못 쏘아 문신이나 무신으로 출세하기는 글렀으나 포용력이 있고 영험이 있는 신이었다.
사냥을 해서 먹고 살았던 신이라 이 신에게 빌면 마을에 가축들이 잘 자랐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여름에 이 신에게 「백중제」를 지내 마을의 평안과 소, 말들의 번성을 기원하곤 했다.
이 신은 마을에 궂은 일이 생기는 것도 곧잘 막아줬는데 인근 마을에 호열자같은 전염병이 심하게 번질 때도 이 마을만은 환자가 생기지 않았으며 큰 난리가 났을 때도 사람들이 다른 마을 사람들보다 훨씬 덜 죽었다고 한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행정구역상 셋으로 분리 마을역사(歷史) 신화화

신의 이름 앞부분의 「개로」는 천미천의 옛이름이다.
신의 이름은 곧잘 인근 지명에서 따서 붙여지곤 한다.
천미천은 한라산의 동쪽에서는 하천의 모습을 갖춘 유일한 하천이다.
이 내가 흐르는 곳은 경사가 완만하여 하천의 굴곡이 심하며 이때문에 홍수가 나기 일쑤인 곳이다.
개로육서도의 큰 부인이 사는 집은 하천의 한가운데 돌무더기가 있는 곳이다.
이 하천이 옛부터 심하게 범람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원래 하천의 신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내끼마을의 신 개로육서도의 작은 아내 고첫당신이 표선리 본향당신을 사모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하천리가 표선면 지역으로 편입된 행정구역 개편의 역사를 연상케 한다.
마을이 분리된 것은, 주민들에 의하면 조선시대인 1609년 김치(金緻)판관이 제주에 왔을 때 동서방리제를 실시하면서부터 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당시 정의(旌義)읍이 면으로 나뉘었는데 천미천을 기준으로 하여 동쪽인 신풍·신천리지역은 좌면, 서쪽인 하천리 지역은 동중(東中)면이 됐다.
이때의 구분이 이어져 신풍·신천리는 성산읍, 하천리는 표선면 소속이 됐다.
그렇지만 이 세 마을은 모두 성산읍의 읍소재지와 중심 상권과도 멀었기 때문에 생활권으로는 오히려 표선면과 가까운 편이다.
그러니까 3백90년전 행정구역의 개편 당시 어떤 형태의 아쉬움이 신화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어쨌든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마을이 갈렸다. 그렇지만 생활권은 여전히 안바뀌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저바당한집에게 반하여 바닷가로 내려갔다』는 식으로 패러디한 신화적 표현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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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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