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58<

전라도 나주 곡물신(神) 제주(濟州)에 들어와

여드레도 <1>
진상갔던 강(康)씨·오(吳)씨·한(韓)씨 귀향길에 전래

매달 음력 8일이 제일(祭日)이어서 「여드레도」라고 불리는 신이 있었다.
우리나라 곡창중 하나인 전라(全羅)도 나주(羅州)인근에 살다가 제주(濟州)에 온 신인데 표선(表善)면 토산(兎山)에 살고 있었으나 영험이 뛰어 난 신이어서 점차 전도에서 섬김을 받았다.
나주 금성산(羅州 錦城山)에는 영기가 세고 혼령이 센 신이 살고 있어서 옛날부터 명성이 높았다.
관리들이 파견되어도 석달 열흘을 못 채우고 죽거나 봉고파직을 당하곤 했다.
그래서 관리들은 나주(羅州)목사로 가기를 꺼려했다.
임금님이 관리를 보내고자 하나 아무도 가려고 하지를 않아 고민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담대한 장수가 나타나서 나주(羅州)목사로 임명해 달라고 자청했다.
『삼만관속을 내어주랴, 육방하인을 내 주랴』
『삼만관속도 싫습니다. 육방하인도 싫습니다. 단매단구종[단마단구종(單馬單驅從)]이 좋습니다』
임금이 병졸을 많이 내 주고자 했으나 이 사내는 말 하나와 종 하나만 붙여주면 충분하다고 큰 소리를 쳤다.
말 하나에 종 하나만 데리고 목사로 부임한 사내가 나주(羅州) 금성산에 다다랐을 때 길을 안내하던 자가 말했다.
『목사님, 여기서는 말을 내려서 걸어가야 합니다』
『내가 이 마을 목사로 부임하는데 나보다 높은 웬 놈이 있어서 내가 말을 내려야 한다는 말이냐』
목사가 화를 몹시 내면서 그대로 길을 가는데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고 폭우가 쏟아지더니 말도 힘을 못쓰고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웬 일이냐』
『이 마을 토주관(土主官) 금성산 신이 노한 것 같습니다』
『내가 목사인데 나보다 더한 토주관이 있느냐』
목사가 한 눈을 부릅뜨니 동남풍이 불어 비가 오고 안개가 자욱하던 것이 두 눈을 부릅뜨자 서풍이 불어 뽀얀 안개가 걷혔다.
눈 앞에는 청기와집에 네 기둥, 여덟 칸짜리 큰 집이 나타났는데 그 안에는 일흔 여덟 고무살장 방안에서 어여쁜 여인이 은대야를 받고 앉아서 쉬흔 다섯자 방패머리를 삼동나무 빗으로 슬슬 빗고 있었다.
『네 놈이 영(靈)이냐』
목사가 큰 소리를 치자 처녀가 갑자기 변신하며 입을 쩍 벌려 웃입술은 천황[하늘]에 붙고 아랫입턱은 지황[땅]에 붙어 무시무시한 뱀이 되었다.
『이 마을에 총 잘 쏘는 총장이 있느냐, 불 잘 놓는 불포수있느냐, 말 잘 달리는 지리산장이 있느냐』
나주목사가 인력을 동원하여 총을 쏘아 뱀을 죽이고 불을 놓아 집을 불사른다음 발 빠른 말을 타고 도망쳐 버렸다.
이 때 죽은 뱀은 금바둑 옥바둑알로 변신하여 서울「동재기강알」에 떨어져 있었다.
제주(濟州)에서 상시관에 진상을 올리러 갔던 강(康)씨 형방과 오(吳)씨 이방, 한(韓)씨 선주가 종로(鐘路)네거리에서 그 바둑알을 주웠다.
그런데 이 바둑알은 길에 놓으면 보물같이 보이는 것이 손에 잡으면 아무 것도 아닌 바둑알이 되었다.
『쓸 모 없는 것이로고』
바둑알을 바다로 던져버리고 제주(濟州)섬으로 배를 띄우려고 했으나 바람이 일지를 않아 배를 띄울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각한 세 사람이 문점(問占)을 하니 점장이가 말했다.
『뱃장아래 금바둑 옥바둑이 있어 바람구멍을 막고 있습니다』
배안을 살펴보니 바다로 던져버린 바둑알이 어느새 그 안에 있었다.
바둑알을 젯상위에 올리고 돌래떡에 자소주, 계알안주[계란]을 마련하여 징을 세 차례 치니 샛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돛을 높이 올리고 제주(濟州)로 들어 온 배는 성산(城山)읍 온평(溫平)리 「개맞」바다로 닻을 내렸다.
같이 들어 온 신위는 처녀로 변신하여 배를 내렸다.
온평(溫平)리 명호부인과 같이 살아보자고 명함을 들였더니 『땅도 내 땅이요 물도 내 물이요 자손도 내 자손이요, 공(空)한 땅 공한 자손이 없다』하고는 내쫓아버렸다.
『그러면 어데로 가서 살면 좋겠습니까』
『저 토산 「메떼기마루」로 가 봐라. 앞에는 넓은 터가 있어 좋고 뒤에는 금세숫물, 옆에는 금벳릿[벼룻]물이 좋아진다』
이 처녀가 토산을 향하여 가는데 하천(下川)리 경을 지나갈 때 개로육서도를 만났다.
『토산(兎山)리 가는 길이 어느 쪽입니까』
백망건에 백도포를 입고 거리에 앉아 바둑을 두던 개로육서도는 어여쁜 아가씨가 나타나서 길을 묻자 염치불구하고 손목부터 잡았다.
『얼굴은 양반인데 행실은 상놈이구나』
손을 뿌리친 이 처녀는 은장도를 꺼내 잡혔던 손목을 베어냈다.
자주색 피가 불끈 솟구치니 물명주 전대로 손목을 감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요왕황제국에서는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이 처녀를 도로 뭍으로 쫓아내 버렸다.
그래서 이 처녀는 토산(兎山)리 바닷가에서 살게 됐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물질적 풍요 누리려는 주민들 염원 표출

전라(全羅)도 나주(羅州)는 유명한 곡창지대이다.
그곳의 신이 「뱀」이라는 것은 앞에서 살폈듯이 곡물과 풍요의 신인 용(龍)의 다른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이 곳의 신앙과 신화도 마찬가지로 악의에 찬 구전자에 의해 변이됐을 것이다.
이 신이 제주(濟州)로 왔다는 것은 그 곳의 신앙민들이 제주(濟州)로 이주를 왔거나 나주(羅州)처럼 곡물의 풍요와 번성을 이뤄보려는 당시 제주(濟州)주민들의 의도로 신앙이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곡창지대인 만큼 나주(羅州)는 물질적 풍요를 누렸을 것이다.
그래서 관리들이 부정하기도 쉬웠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주민들의 반발을 사는가 하면 탐관오리임이 드러나 삭탈관직되기도 했을 것이다.
『나주(羅州)목사가 석달 열흘을 가지 못했다』는 것은 이같은 역사적 사실들이 신화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보인다.
서울에서 금바둑·옥바둑을 제주(濟州)로 가져왔다는 강(康)씨, 오(吳)씨, 한(韓)씨는 이 신앙을 제주(濟州)로 가져 온 신앙민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토산(兎山)리 인근 가시(加時)리에는 조선(朝鮮)초기 입도했다는 한(韓)씨 입도조인 한(韓)천의 사당이 있다.
당시 이 지역에는 한(韓)씨가 집성촌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토산(兎山)리는 신앙때문에 피해를 많이 보아 온 마을이다.
이곳의 부녀자들이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면 뱀이 따라다닌다는 속설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뱀신앙」은 「용신앙」이 변천된 것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도 이 마을만의 신앙이 아니라 도(道) 전역에서 이같은 신앙이 있었음을 알면 그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뱀이 따라 다닌다』는 말은 『신앙이 전파됐다』는 말과 동의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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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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