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59<

가시리(加時里)마을 강씨아기에 혼 들려

여드레도 <2>
왜구에 겁탈당한 두처녀 한(恨)맺힌채 죽어

토산(兎山)리에 와서 앉아 보니 물도 좋고 산도 좋아 살암직한 곳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를 않아 음식을 대접하지 않는 통에 매일 배를 굶으며 살았다.
여드레도는 어느날 인근 마을의 오(吳)씨아미를 데리고 토산리 「오리소」 시냇가로 나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토산 앞바다에 큰 배들이 떠 다니고 있었다.
『설운 상전님, 웬 배들이 대천 바다에 떠 다닙니다』
『볼 일도 없거든 말지 연서답[빨래]나 해라』
웬 배들인고 구경하고 있는데 홀연히 광풍이 불어 배들이 파선했다.
바닷가로 내린 선원들이 육지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천미천인근에는 생수가 많이 나기 때문에 외국배들이 지나가다가 식수를 긷기 위해 종종 내려오는 일이 있었던 곳이다.
『아이고, 남의 나라 왜적이 오는 듯 합니다』
그제야 여드레도가 눈을 들어보니 정말 사내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가까이 오는 걸 보니 칼을 차고 험악한 모양이 도적놈들이 분명했다.
그때야 겁이 나 젖은 빨래를 두고 들판으로 계곡으로 도망을 쳤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를 본 도적들이 처녀들을 뒤쫓아 와 억새밭에 숨어있는 것을 붙잡아 꼼짝 못하게 하고는 겁탈을 해 버렸다.
두 처녀는 가슴에 한이 맺힌 채 죽고 말았다.
죽어 혼령이 된 여드레도가 가만히 생각하니 고향을 떠나 먼 타향에까지 와서 이런 변을 당하고 죽은 게 억울하기 그지 없었다.
모두 강(康)씨 형방, 오(吳)씨 이방, 한(韓)씨 선주의 탓이었다.
그들이 바다 건너 제주(濟州)까지 데려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당할 리가 있으랴.
여드레도의 원혼은 인근 마을 가시(加時)리로 가서 보리에 물을 말아 방아를 찧던 강(康)감관집 딸 아기씨에게로 빙의하여 버렸다.
방아를 찧던 강씨아기는 갑자기 얼굴이 파래지고 뚜렷한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갔다.
백약을 써 보아도 쓰러진 아기씨는 소생할 기색이 없었다.
병의 원인을 몰라 답답한 강감관내외가 용하다는 점장이를 불러 문점을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나 외국에서 온 신령에게 죄를 지어 그 혼이 들렸으니 두 이레 열 나흘 큰 굿을 해야 그 혼령을 풀리겠습니다』
그날부터 강감관집에서는 소과 닭을 잡아 제물을 차리고 두 이레 열 나흘 동안 큰 굿을 치렀다.
초감제를 지내고 제신을 청하여 대접하고 염라대왕을 청할 때가 되자 죽어가던 강씨아기가 눈을 뜨고 심방에게 말했다.
『설운 신(神)의 형방아,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제를 지내느냐』
빙의한 신의 음성이 분명했다.
『상전님을 살리려고 굿을 합니다』
『나를 살리려거든 나 눕던 방안에 가 봐라. 금동으로 만든 궤짝이 있다. 그것을 열어보면 아버님 서울 갔다 올 때 사다 준 강명주 물명주 천이 있으니 그 천으로 마흔 여덟 상방울, 서른 여덟 중방울, 스물 여덟 하방울을 맺어 놓고 그 것을 풀어다오』
강씨아기의 방에 가서 궤짝을 열어봤더니 아닌게 아니라 그 속에 긴 명주천들이 구비구비 사려져 들어 있었다.
천을 들어내자 그 밑에서 말라붙은 뱀가죽이 나왔다.
심방은 그 천을 묶어 수없이 방울을 만들고 방울 푸는 굿을 했다.
『아야 머리여, 아야 머리여』
머리에 맺힌 방울을 풀었는데 이번에는 양쪽 어깨가 아파왔다.
오른쪽 어깨, 왼쪽 어깨에 맺힌 방울을 풀었더니 이제는 가슴이 저려왔다.
머리에 맺힌 마흔 여덟 방울, 몸에 맺힌 서른 여덟 방울, 가슴에 맺힌 스물 여덟 방울을 다 풀어내자 그때야 한도 시름도 모두 걷히는 듯 했다.
강씨 아기도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그때부터 토산리 주민들은 이 신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섬기게 됐으며 이 신에 빙의하여 병이 들면 마흔 여덟 방울로 맺힌 한을 푸는 제의를 치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나주영산에서 들어온 이 신위에 대한 제의는 가시리 강(康)씨가문에서 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마을 인근에서는 강씨아기가 방아를 찧던 당시의 이야기가 여러가지 방아노래로 전해 불려지고 있다.
「이어 이어 가스름[가시리] 강(康)당장집이/ 세쿨 방애[세 사람이 찧는 방아] 새 글럼서라[장단이 안 맞는구나]/ 가스름은 가난 세 쿨도 새가 그른디/ 우린 여섯 쿨도 새가 맞아 온다/ 이어 이어…」
「가시오름 강당장 집이 세 쿨 방애 새 글럼서라./ 전싱[전생(前生)] 궂은 이 내 몸 가난 여섯 쿨도 새 골람서라.[장단이 맞는구나]/ 쿵덩쿵덩 물방애야/ 백년 천년 물방애로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왜구에 침략당했던 역사 신화(神話)의 한 부분으로

이 신화에는 왜구에 침략당했던 역사적 사실이 신화의 한 부분으로 끼어 있다.
사면이 바다인 제주(濟州)는 중국(中國)이나 한반도의 강대국으로부터 군사적 침략을 받은 일은 드물다.
그러나 섬나라여서 바닷길을 자주 이용했던 일본(日本)의 왜구들로부터는 잦은 침략을 당했다.
섬주민들로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존재였으며 제주(濟州)섬의 해안에 쌓여진 환해장성도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것이었다.
이들에 의한 피해가 신화에 남아있는 것은 이곳 외에도 조천(朝天)읍 신흥(新興)리가 있다.
신흥(新興)리의 수호신중 하나인 「볼레낭 할망」도 왜구에게 겁탈당하여 자살한 처녀의 원혼이다.
왜구의 침략이 가장 잦았던 것은 7년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15세기에서 16세기 전반으로 기록되고 있다.
토산(兎山)리 인근의 천미천(川尾川)일대에 상륙했던 것은 기록상 1552년과 1554년 두 차례로 알려졌다.
첫 해인 1552년[명종(明宗) 7년] 5월에 왜구는 어촌의 주민들을 살상하고 재물을 약탈했는데 2일간 전투를 벌였다고 하며 이에 대한 문책으로 목사와 현감이 경질됐다.
두번째인 1554년[명종(明宗) 9년] 5월에는 왜선 1척이 천미포근처에 정박했다가 10명이 상륙하여 이중 1명을 사살하니 퇴각했다고 한다.
구전자에 따라 이때 도적들은 「팔대구애선」을 타고 왔다고도 하고 「덕판배[일본배]」을 타고 왔다고도 한다.
또 이때 처녀들을 겁탈했던 도적들은 여덟명이었다고도 전한다.
구전되는 신화에는 배가 파선되어 상륙했다고 하므로 패전하던 잔군들이거나 바람을 피하여 피항해 왔던 왜구들이 물을 길러 갔다가 연못가에서 처녀들을 발견하여 겁탈했을 수 있다.
겁탈을 당한 것은 여드레도라고도 하고 오(吳)좌수의 딸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인근 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들이 신화화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신화는 훨씬 먼저 형성됐겠으나 신앙이 형성·전파되던 과정에서 이 이야기가 끼어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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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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