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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할망
관청할망

미니해설
수산(水山)리의 신화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성을 쌓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했던 옛 주민들의 원한이 서려있다.
주민들은 방어시설의 구축에 동원이 됐으나 정작 주민들의 마을은 이 성의 바깥 즉 해변쪽에 있었다.
군인들은 땅을 지키는데만 골몰했으며 주민들의 보호는 등한했던 게 아닌가 싶다.
성을 쌓거나 큰 종을 만들면서 산사람을 제물로 바쳤다는 인신공희(人身供犧)의 전설은 적지 않다.
실제로 사람을 제물로 바쳤을 수도 있고 나중에 신화를 지어냈을 수도 있다.
성산(城山)읍 수산(水山)리의 여신 「진안할망」과 표선(表善)면 성읍(城邑)리의 「관청할망」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성읍(城邑)의 「관청할망」은 주민들 사이에 「광청할망」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신의 직능이나 의미로 봤을 때 「관청할망」이 맞는 것 같다.
두 신은 모두 관(官)의 주변에 있으며 송사와 벼슬길에 오른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이라는데 공통점이 있다.
제주(濟州)시의 「운주당 한집」이나 대정(大靜)의 「가운당」등도 대개 비슷한 직능을 가졌던 당들인 것으로 보인다.
수산(水山)은 군사요새지였으며 성읍(城邑)은 현청소재지였다.
고대에 중심지였던 성읍(城邑)은 해안변이 중시되면서 다른 마을들처럼 발전을 하지 못했다.
그대신 산남(山南)지역에서는 서귀포(西歸浦)가 행정중심지로 발전을 했는데 서귀포(西歸浦)에는 언제부터인지 이곳 자구리해안에 「관청할망」에 대한 제의가 지내지고 있다.
수산(水山)리에 방호소가 설치된 것은 문헌상 조선(朝鮮) 세종21년[1439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성읍(城邑)이 제주삼읍(濟州三邑)의 현청소재지가 된 것은 이보다 앞선 태종 16년[1416년]인 것으로 보인다.
이때 비로서 삼읍(三邑)이 정립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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