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62<

열세살소녀(少女) 마라도(馬羅島)에 제물로

“아기업개 두고가야 살아 돌아갈수 있다”

처녀신들
한국(韓國)의 최남단 마라도(馬羅島)는 바람이 그칠 날이 없는 금단의 섬이었다.
이 섬의 수호신은 어부들의 뱃길을 보호해주고 잠수들이 바다에서 사고를 당하지 않게 하는 처녀신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목숨을 걸고 해산물을 채취해야 했던 제주(濟州) 여인들의 한이 서린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옛날 마라도(馬羅島)에는 사람이 살지 않아 이곳 주변 바다에는 해산물이 유난히 풍부했다.
그러나 이 섬에서 어로작업을 하거나 해산물을 채취하면 바다의 신이 노하여 반드시 바람이 불고 섬 전체에 흉년이 들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섬에 가면 안된다고 출입을 금했으며 이때문에 이 섬에는 「금(禁)섬」이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출입이 금지되기는 했으나 어부나 해녀들은 남몰래 이곳에 와서 며칠씩 어로작업을 하는 일이 있었다.
어느 해 봄 모슬포(摹瑟浦)잠수들 7~8명이 이곳으로 물질을 왔다.
떼배[테우]주인인 상모(上摹)리 이(李)씨와 그 부인, 또 부부의 어린아이와 열세살난 아기업개 처녀가 같이 왔다.
이들은 마라도(馬羅島) 「선비물」 해안에 배를 대고 작업을 시작했다.
왠일인지 이번 물질에는 소라·전복등 해산물들이 많이 잡혔다.
해산물을 잡는데 날이 가는 줄 모르다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다 가고 양식이 떨어졌다.
잠수들이 섬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잔잔했던 바다가 거칠어지고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출발하려고 배를 타면 바람이 불고 갯가에 배를 대고 내리면 바람이 누그러들곤 했다.
그러기를 여러 날.
먹을 게 없어 잡아 놓은 해산물까지 모두 먹었다.
잠수들은 『바다의 신이 노했다』느니
『이제는 살아서 돌아갈 수 없다』는 말들을 주고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가장 나이 많은 잠수가 선주에게 말했다.
『어젯밤 꿈에 누가 나타나 이르기를 아기업개를 두고 가야지 데리고 가다가는 모두 물 속에서 죽으리라 합디다. 어멍도 없고 아방도 없는 아이니 두고 가야겠습니다』
『나도 그런 꿈 보이더라』
하루밤을 더 묵으니 물이고 양식이고 완전히 바닥이 나서 더 이상은 어째 볼 도리가 없었다.
다시 배를 띄워 사람들이 오르자 잔잔했던 바다에 다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 때 아기 어머니가 소녀에게 말했다.
『아이야 저 바위위에 흰 걸랭이배[기저귀] 보이지. 깜박 잊고 그냥 왔다. 빨리 강 가져오라』
아기업개가 기저귀를 가지러 달려간 사이에 배는 바다 가운데로 빠져나갔다.
아기업개 처녀는 해안에서 같이 데려다 달라고 울부짖었지만 배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는 더 이상 거칠어지지 않았다.
배는 모슬포(摹瑟浦)쪽으로 선수를 돌렸고 서쪽으로 반 바다쯤 나아가니 하늘 위로 지네 형상의 구름이 날아 올라갔다.
주민들은 무서워서 더 이상 마라도(馬羅島)로 어로작업을 다니지 못했다.
삼년이 지난 후 다시 왔을 때 「선비물」해안의 왼쪽 아기기저귀를 널었던 자리에는 처녀의 뼈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모슬포(摹瑟浦)쪽으로만 한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그 자리에서 굶어 죽은 것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이 섬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이 마을 김(金)씨 할아버지의 꿈에 자꾸 그 처녀가 현몽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처녀를 위해 매달 7일, 17일, 27일에 그 자리에서 제를 지내고 해상의 안전을 기원하게 됐다.
그 이후로는 사람들이 바다에서 죽는 일이 드물어 졌다고 한다.
죽은 처녀신이어서 「처녀당신」이라고 하지만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었다고 하여 「할망」이라고도 부른다.
성산(城山)읍 신천(新川)리와 표선(表善)면 하천(下川)리의 수호신중에도 처녀신이 있었다.
「현(玄)씨일월」이라고 불리는 여신이었는데 두 마을에서는 당굿을 할 때마다 반드시 이 처녀신에 대해 무사안녕을 기원하곤 한다.
성산(城山)읍 신풍·신천(新豊·新川)리와 표선(表善)면 하천(下川)리 「내끼 삼마을」을 설촌한 것은 원래 현(玄)씨가문이었다.
양반가문이었던 이 집안에서는 어느 해 어여쁜 여자아이가 태어났으나 건강이 좋지 않았다.
이 아이는 나이 세 살에 죽었다가 일곱세에 살아나기도 했다고 하며 열 다섯 살에는 큰 병이 걸려 죽을둥 살둥 했다.
신이 들린 것이다.
열여덟·열아홉이 되어도 나을 줄을 몰라 문점을 해 봤더니 심방이 돼야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라비 현(玄)씨 총각은 누이동생을 살리기 위해 배를 마련하여 육지로 나갔다.
누이동생에게 해입힐 무복(巫服)을 장만하여 들어오던 청년은 신천(新川)리앞바다에 이르렀을 때 풍파를 만나 물에 빠져 죽고 말았다.
이에 절망한 누이동생은 『나만 살아 무엇하랴』 하고 신천(新川)리 「연뒤」앞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
마을사람들이 시체를 건져다가 「신낭밭」에 묘를 마련해줬으나 처음에는 아무도 (현)玄씨 처녀에게 제사를 지내주지 않았다.
이 무덤에서는 밤낮없이 요령소리가 울리곤 해서 마을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기곤 했었는데 어느 해 현(玄)씨 가문에 어린아이가 큰 병에 걸렸다.
백가지 약을 써 봐도 낫지를 않아 점장이에게 문점을 했더니 현(玄)씨 처녀의 원혼이 의탁했다는 것이었다.
이때 현(玄)씨집안에서는 이 처녀를 위해 큰 굿을 해서 병이 나았는데 그후로 마을사람들은 당굿을 할 때마다 현(玄)씨 처녀를 위한 상을 따로 마련하여 원혼을 위로하고 있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마을의 생업 따라 신(神)의 성격도 규정돼

신들의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濟州)의 당(堂)은 보통 돌담으로 둘러싸여진 자그만한 터이다.
그곳에 둥치가 굵은 나무를 심어놓거나 그나마 나무도 없는 초라한 곳도 많다.
이제는 어촌이라기보다 관광지가 돼 버린 마라도(馬羅島)에 가면 지금도 바닷가 바위 위에 돌담이 둘려진 자그만 신전(神殿)을 볼 수 있다.
이 당은 당에 얽힌 신화가 실제적인 사실이라고 주장이라도 하듯 모슬포(摹瑟浦)와 가파도(加波島)가 가장 잘 바라다 보이는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생활형태에 따라 신의 성격이 정해지는 게 보통인 다른 마을들처럼 이곳의 여신도 주민들의 생활양식[어업]에 관련된 해신(海神)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당에는 잠수들이 자주 찾으며 마을사람들이 다 다닌다.
흥미로운 것은 마라도(馬羅島)와 표선(表善)면 토산(兎山)리신화와의 상관관계이다.
토산(兎山)리의 「신중부인」신화에 따르면 그녀가 남편에게 쫓겨나 「귀양」을 왔던 곳이 마라도(馬羅島)라고 한다.
「신중부인」은 마라도(馬羅島)에서 아이 일곱 명을 낳고 살다가 토산(兎山)리로 돌아갔는데 귀양이 풀려 돌아갈 때 바로 기저귀를 갖고 가게 되는 것이다.
두 신화에 아기기저귀가 공통적으로 나오는 점, 또 두 여신의 제일이 모두 7일이라는 점에서 원래는 같은 신앙이었으나 전승과정에서 신화가 변천됐음을 알 수 있다.
신·하천(新·下川)리의 「현(玄)씨 일월」은 원래 현(玄)씨 가문의 조상신이었으나 마을사람들이 모두 섬기게 되면서 마을의 수호신격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신앙민들중 가장 세력을 갖고 있는 것은 현(玄)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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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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