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64<

벼락맞아 죽은 목동(牧童)의 넋 기려

옥황상제 말 엿듣고 마을위해 거꾸로 하명(下命)

백중이
옥황상제가 천지운행과 일기를 좌우하였지만 비를 내리는 것은 용왕들의 권능이었다.
그래서 비를 내릴 때가 되면 옥황상제가 용왕들에게 요청을 하여 그대로 비가 내리곤 했다.
사해(四海)에 용왕이 모두 있었는데 동쪽 바다에는 광덕(廣德)왕, 서쪽 바다에는 광신(廣神)요왕, 남쪽 바다에는 광청(廣靑)요왕, 북쪽 바다에는 흑(黑)요왕이 살았다.
옥황상제의 지시는 밤에 내려지는데 그 말을 매번 용왕의 사자인 거북이 「부원군」이 용왕에게 전달하곤 했다.
거북사자는 바다일을 관장하여 어선이나 운반선 각종 배의 운을 좌우했고 잠수들의 바닷일을 도와 궂은 일이 있게도 하고, 막아주기도 했으며 일하는데 편하게 물길을 터주기도 하는가하면 바다에 빠져 죽는 자의 영혼을 인도하기도 했다.
거북사자는 위엄을 보이기 위해 배 앞에 임금 왕(王)자를 새기고 등뒤에는 날 용(勇)자를 달고 다닌다.
모습은 의젓한데 머리는 작아서 가끔 멍청한 짓을 하기가 일쑤였다.
인간 세상에는 그 때 백중이라는 목동이 살고 있었다.
낮에는 산에서 소·말들을 방목하고 밤에는 바닷가로 내려와 가축들을 지키곤 했다.
어느 날 밤 그 날도 백중이는 바닷가에 내려와 있다가 옥황상제가 용왕의 사자 거북이에게 비를 내리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말았다.
『요왕, 요왕』
옥황상제가 바다를 향해 용왕을 부른 후 거북이가 나타나자 말했다.
『이 마을에는 비를 다섯자 오치를 주어 흘러넘치게 하고 저 들판에는 햇빛이 쨍쨍하여 날이 좋도록 하시오』
백중이가 가만히 엿듣자니 자기가 있는 마을에 큰 비가 내려 다 죽게 될 판이었다.
다섯자 오치의 비가 내리면 사람이고 집이고 말이고 곡식이고 모두 물에 잠겨 버리고 말 터였다.
꾀를 낸 백중이는 옥황상제가 올라가기를 기다려 그 목소리를 흉내내어 용왕을 다시 불렀다.
『요왕, 요왕』
용궁 깊은 곳으로 돌아가던 거북사자 부원군이 왠 일인고 하여 다시 물 위로 돌아왔다.
『아까는 내가 잘못 말했소. 저 들판에는 다섯자 오치 풍우대작(風雨大作)하고 이 마을에는 날도 좋고 시절도 좋게 하시오』
원래 어눌한데다 어두워서 잘 볼 수 없었던 거북이는 옥황상제가 말하는 줄만 알고 그대로 용왕에게 고했다.
다음날 먼 들에는 폭풍우가 치고 바람이 불어 큰 물난리가 났지만 마을 인근에는 날이 맑고 시절이 좋았다.
밤에 바닷가를 지키던 백중이가 옥황상제가 마을로 피해를 주려고 할 때마다 저지를 하니 마을에 육축은 번성하고 사람들은 난리를 겪는 일이 없이 평안히 살았다.
이런 일이 계속되다보면 들통이 나게 마련이다.
옥황상제가 지상을 내려보다가 번번히 자기가 말하는 것과는 반대로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을 알게 됐다.
화가 난 옥황상제가 용왕을 불러 야단을 쳤으나 용왕도 영문 모를 일이었다.
그 날 밤 옥황상제는 다시 내려와서 거북사자에게 『비를 내리라』하고 지시를 하고는 올라가는 척 하면서 몰래 숨어서 봤다.
목동인 백중이가 엿보고 있다가 나와 자신의 말을 거꾸로 하는 게 아닌가.
『허, 거 몹쓸 놈이로고』
옥황상제는 벼락장군을 불러 번개를 쳐서 백중이를 처벌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백중이의 죽음을 슬퍼하여 매해 제사를 지내게 됐다.
백중이가 음력 7월 보름날 벼락을 맞아 죽었기 때문에 제사는 그 전날인 7월 14일에 지내 백중이의 혼을 위로하고 우마의 번성을 기원하여 목축신으로 섬겼다.
이에서 비롯되어 「백중날」 밤에는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고 물맞이를 가는 풍습도 생겼다.
말을 목장에서 방목하는 사람들은 이날만은 목장으로 올라가서 말들의 건강상태를 살피고 백중이가 썼던 말고삐를 제삿상 위에 올려 제사를 지내곤 했다.
마을에서 지내는 백중제의는 많이 남았으나 목장에서 지내는 백중제의 전통은 오랜 세월을 흘러 내려오고 있으나 지금은 거의 없어져서 제주(濟州)시 회천(回泉)동등 일부 마을의 공동목장에서만 희귀하게 최근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동회천(東回泉)에선 아직도 음력7월14일 백중제의

제주도(濟州道)에는 만물의 기가 가장 왕성해지는 음력 7월 보름을 앞두고 「백중제」를 치르거나 「백중」과 관련된 갖가지 풍습이 남아있다.
백중제는 「마불림제」라고도 한다.
「마불림」이라는 말의 뜻은 『장마때 집안에 찬 습기를 제거한다』는 뜻과 『말(馬)을 불린다』는 두가지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이 때가 되면 두 종류의 풍습이 모두 벌어지는데 집안의 이불·의복등속이나 신당(神堂)에서 제를 치를 때 쓰이는 물색옷을 꺼내 말린다.
또 제의를 지내면서 육축의 번성을 기원하기도 한다.
백중이라는 목동의 신화는 이러한 제의의 유래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이 신화도 구전자에 따라 다르게 전해지고 있다.
구좌(舊左)읍 김녕(金寧)리 인근에서는 목동 「백중」이 원래 비의 신이었으나 옥황상제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벌을 받고 그 이후로 용왕이 비의 신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곳에서는 백중이가 벌을 받기 전에 물에 빠져 자살했다고도 한다.
차귀마을[현재의 한경(翰京)면 고산(高山)리]에서는 「백중」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마을의 신당을 설립한 목동 「법성」의 이야기인 것으로 전래된다.
이 곳에서는 또 이 신화에 따라 「차귀본향놀이」라는 민속놀이가 전래되고 있다.
놀이의 내용은 목동인 법성과 거북이가 용왕을 농락하는 것으로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놀이였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모두 같은 주제에서 변이된 신화로 보인다.
제주(濟州)시 동회천(東回泉)마을에는 아직도 공동목장에서 제의를 지내는 관습이 남아있다.
이 마을의 축산농가 주민들은 7월14일이면 마을공동목장으로 올라간다.
「백중」이 목동이었기 때문에 제의는 목동인 「테우리」가 제관이 되어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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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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