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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청아기

미니해설
집안의 조상중에 특이한 내력을 가진 선조가 있는 경우 조상신으로 숭배되는 경우가 있다.
「광청아기」 또는 「여동지따님아기」로 불리는 이 여신은 손(孫)씨나 한(韓)씨가문중 일부 집안에서 모시는 조상신이다.
이 신화가 성립된 것은 제주(濟州)의 역사중에서 가장 쓰라린 역사중 하나인 「출륙금지(出陸禁止)」의 관행때문이었다.
출륙금지는 제주(濟州)가 현으로 편입된 고려(高麗)때부터 있었으며 조선(朝鮮)시대인 1830년까지 부정기적으로 행해졌다.
제주(濟州)에 외세가 처음으로 상륙한 삼별초(三別抄)직후 몽고(蒙古)는 일본(日本)원정에 필요한 전선 1천척을 고려(高麗)에 요구했는데 이때 제주(濟州)에도 1백척이 배정됐다.
배를 짓는 고역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이 육지로 달아나는 경우가 생기자 고려(高麗)는 「탐라도누인물추고색耽羅逃漏人物推考色」이라는 관서를 만들어 달아난 주민들을 잡아들여 엄히 처벌했다.
또 탐라(耽羅)의 호족인 고·양·부(高·梁·夫)씨가 좌도지관·우도지관 직책을 반납하여 평민이 되고 중앙집권정책이 활발히 추진되던 1천4백년대초에도 출륙이 금지됐었으며 1629년[인조(仁祖) 7년]에 다시 내려진 출륙금지령은 1830년[순조(純祖)말]까지 약 2백년간 이어져 악명을 떨쳤다.
의녀 만덕여인이 흉년에 사재를 털어 구휼을 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짐으로써 임금을 알현하게 되어 육지땅을 밟았을 때도 출륙금지되던 기간중이었다.
만덕은 이 기간중 육지땅을 밟았던 유일한 여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차별대우를 받으며 강제로 이 섬에 살아야 했으며, 다른 지역의 여인들과 결혼을 하지도 못했던 당시 주민들의 애환이 신화속에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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