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66<

굿에 빠져 가출(家出)…산속서 굿놀이

큰오빠에 붙잡혀와 방속에 갇힌채 죽어

양(梁)씨아미
양(梁)씨 집안에 아들 세 형제가 있었는데 그 밑으로 여자아이가 하나 태어났다.
얼굴도 절세 미인이고 목소리도 좋고 노래도 잘 불렀다.
다섯 살이 되면서부터는 양태를 짜는 양태청(廳)으로 나가 어른들이 일하는 사이에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서 인기를 끌었다.
또 앞일을 잘 알아 맞춰 친구들을 놀라게 했는데 『너 집에 가면 욕들리라』하면 어김없이 욕들을 일이 생겼고 『너 대바지[작은 허벅] 벌르겠다』하면 항아리를 꼭 깨뜨리게 되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이 아이를 「작은 심방」이라고 불렀다.
춤을 안 추고 노래를 안 부르면 하루도 견디질 못했다.
그래서 물 길러 우물가로 갔다가 사람들이 아무도 없으면 혼자 날이 저물도록 노래를 부르다 오곤 했다.
15세가 되던 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에서 귀향풀이 굿이 벌어졌다.
방안에 앉아서도 어깨춤으로 들썩이며 굿 하는 것을 따라 하던 양(梁)씨아미는 굿이 끝나자 심방들을 따라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굿하는 심방은 천민중에 천민이라 아무도 심방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또 양반집에서 심방이 되는 것은 집안이 망하는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양(梁)씨아미의 가출은 큰일날 일이었다.
더욱이 양(梁)씨 집안은 제주도(濟州島)에서도 세도가 호족이라 양(梁)씨 아미를 데리고 다니다가는 된서리를 맞기 십상이었다.
심방들은 울며 따라오는 양(梁)씨 아미를 내쫓아버렸다.
버림받은 양(梁)씨아미는 한라산(漢拏山)속 깊은 곳으로 가서 혼자 굿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세 오빠가 梁씨아미를 찾으러 다녔으나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었다.
봄이 되어 고사리를 캐러 다니는 아낙네들이 소문을 들어왔는데 양(梁)씨아미는 한라산(漢拏山) 물장오리 깊은 계곡에서 혼자 굿을 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세 형제가 찾아가보니 양(梁)씨아미는 고사리대를 꺾어 저승 열 두 대문을 세워놓고 억새를 잘라 손에 들고 신칼 삼아 굿놀이를 하고 있었다.
경민장을 하던 큰 오빠는 누이동생을 방안에 가두고 석달열흘동안 밥도 주지 않고 물도 못 먹게 했다.
누이를 끔찍히 사랑했던 둘째 셋째 오빠만 몰래 다니며 보리짚으로 물을 마시게 해서 겨우 연명했다.
한 여름이 다 지난 어느 날 큰 오빠가 양(梁)씨아미를 밖으로 불러냈다.
이제는 살려주는가 싶었는데 개장국을 한 솥 끓여놓고 양(梁)씨아미에게 다 먹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개와 귀신은 상극이라고 해서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 데는 개장국이 특효라고 했었다.
『죽으면 죽었지 냄새가 지독한 이것은 못 먹겠습니다』
화가 난 큰 오빠는 항아리째 양(梁)씨아미에게 뒤집어 씌우고는 국물이 줄줄 흐르는 양(梁)씨아미를 다시 방안에 가둬버리고 말았다.
개장국물을 뒤집어 써서 그런지 그동안 못 먹어서 그런지 양(梁)씨 아미는 방안에서 죽고 말았다.
얼굴이 고와도 목소리가 고와도 죽고 나니 모든 게 허사였다.
열 두 폭 치마를 찢어 죽은 양(梁)씨아미를 묶은 큰 오빠는 장례도 치르지 않고 그냥 산야에 갖다 버리고는 가시덤불로 덮어버렸다.
누이를 아꼈던 둘째 셋째 아들이 남몰래 가서 가시덤불을 벗기고 새로 무덤을 하여 잘 묻었다.
죽은 양(梁)씨아미의 영혼은 어린때 죽은 영혼들이 생명의 꽃을 키우는 서천꽃밭으로 갔다.
꽃감관이 양(梁)씨아미에게 꽃을 줘서 키우게 했다.
다른 꽃들은 다 잘 피는데 양(梁)씨아미가 기르는 꽃만은 궂은 냄새가 나고 시들시들하여 제대로 피지를 않았다.
시체를 씻지도 않고 그대로 묻는 통에 개장국을 뒤짚어 쓴 냄새가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소고기 콥내냐, 말고기 누린내냐, 개고기 누렁내냐, 돼지고기 종경내냐. 너는 냄새가 나서 안되겠다. 이승으로 돌아가라』
서천꽃밭에서도 쫓겨난 양(梁)씨아미가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자기 몸은 벌써 땅에 묻어버려 되살아 날 길이 없었다.
저승과 이승사이 용두머리 동산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얼마나 울었을까.
한 할아버지가 말을 타고 동산옆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어디로 가는 누구입니까』
『나는 고전적이요. 우리 자손들이 큰 굿 한다길레 얻어먹으러 가는 길이요』
양(梁)씨아미가 고전적을 따라 와 보니 다름아닌 양(梁)씨집안에서 굿을 하는 것이었다.
고전적의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자기를 알아보지 못해 제물을 올리지도 감주를 권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는 언제까지 이승과 저승을 떠돌며 굶고 살아야 할지 몰랐다.
귀신은 누가 대접을 하지 않으면 아무 음식이나 집어먹을 수 없는 법이었다.
생각타 못한 양(梁)씨아미는 둘째 오빠의 딸에게 의탁해 말했다.
『나는 개장국을 뒤집어 쓰고 죽은 양(梁)씨아미요. 나를 죽인 큰 오라비가문은 대를 끊겠소. 샛 오라버니와 작은 오라버니 가문은 대를 잇겠지만 제사·명절은 안 지내도 좋돼 큰 굿을 하면 크게 발복할 것이고 작은 굿을 하면 조금 발복을 할 것이요』
그 때부터 큰 오빠 양(梁)씨의 가지는 대가 끊겼고 양(梁)씨아미에게 굿을 하는 둘째, 셋째 오빠의 가문은 번성했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제주신화 「심방」관련된것 많아

양(梁)씨아미는 빼어난 미인이고 소리도 좋았다고 한다.
시쳇말로 하면 천부적인 소리꾼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같으면 연애인이 됐겠지만 당시에는 심방밖에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제주(濟州)의 신화는 무격(巫覡)인 심방과 관련된 것이 많다.
특히 가문의 조상신 신화에는 신병(神病)에 걸린 여인들의 한 맺힌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구전자들이 심방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인다.
또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굿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높다.
그나마 육지에 비해 놀이문화가 빈약했던 제주(濟州)에서는 굿판은 제의의 현장이면서 마을회의의 계기가 됐으며 축제의 장이기도 했다.
굿을 떠난 전통문화란 것은 생각하기가 힘들 정도다.
이 신화가 전승되고 현재도 굿이 치러지고 있는 것은 조천(朝天)읍 어느 마을의 양(梁)씨가문이다.
이 마을 양(梁)씨가문에서는 아직도 양(梁)씨아미에 대한 제의가 치러지고 있으며 신화 속의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났었다고 한다.
양(梁)씨아미가 묻혔다는 곳에는 지금도 찾아가서 기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제주(濟州)의 호족인 고양부(高梁夫)씨 세 가문에는 모두 이 비슷한 신화가 하나씩은 전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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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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