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67<

인간에 집짓는법 가르쳐준 신(神)

성주
성주 안신국은 집을 맨 처음 지은 신이었으며 인간들에게 집 짓는 법을 가르쳤다. 그래서 사람들은 새로 집을 지을 때마다 성주신(城主神)에게 제의를 지내 고마움을 표하고 새 집에서는 굿은 일이 없도록 기원하곤 했다. 안신국은 하늘나라 천궁대왕과 땅 위의 옥지부인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물 일곱 살 나던 해에 두 살 위인 부인 귀아시와 결혼했다. 부부가 화목하여 그 사이에서 아들이 다섯 형제, 딸이 다섯 형제 태어났다. 결혼한 후 소나무씨를 받아 해동국 안동땅에 와서 큰 산, 작은 산에 모두 씨를 뿌려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예슨 일곱이 되서 안동땅으로 돌아와 보니 그 때 뿌렸던 소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울창한 숲이 돼 있었다. 안동땅의 백모래밭으로 간 안신국은 열 두 가지 연장을 만들어 큰 나무들을 베어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어 집을 지었다. 집이 다 되자 안신국은 상(上)성주신으로 들어 서고 큰 아들은 동쪽 성주로 금성을 맡고, 둘째 아들은 서쪽 성주로 화성을 맡고, 셋째 아들은 남방 성주로 목성을 맡고, 넷째 아들은 북방으로 수성을 맡고, 다섯 째 아들은 중앙으로 토성을 맡았다. 성주신들이 좌정해서 그 집안에는 화재가 일어나거나 홍수에 휩쓸리는 재앙으로부터 집을 보호했다. 다섯 딸들도 각각 집의 조상신들이 됐다. 이들이 돌보는 집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효자를 낳고, 딸을 낳으면 열녀가 됐다. 소도 새끼를 낳으면 황소를 낳고, 말이 새끼를 낳으면 역마(驛馬)가 되고, 개가 새끼를 낳으면 영주(英走), 닭이 새끼를 낳으면 봉황이 됐다. 안신국이 집을 지을 때 썼던 일 잘하는 목수가 강태공서목수였다. 강태공서목수는 도술에도 능했는데 한 곳에 살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 산 저 산으로 옮겨 다니며 생활하는 신이었다.

바다서 온 돌미륵…어로(漁擄) 도와

윤동지
바다에서 올라 온 미륵신으로 어로생활을 하는 주민들을 잘 살게 해 주는 돌미륵이 있었다.
옛날 제주(濟州)시 화북(禾北)마을에 사는 윤동지는 상선(上船)도 아홉, 중선(中船)도 아홉이나 되는 부자 선주였다.
윤동지는 힘이 장사인 「신조롱이」를 종으로 부렸다.
신조롱이는 날이 좋으면 한 쪽 손에 배 하나씩을 들고 바다로 내려놓아 고기 잡으러 나가고 날이 궂어지려고 하면 한 어깨에 배 하나씩 매고 개맡 위로 올려놓아 폭풍에 배가 파손되지 않도록 했다.
하루는 배를 타고 나가 고기를 낚으려고 낚싯줄을 바다에 드리우고 있었다.
낚싯줄이 팽팽히 당겨져서 큰 고기인 줄 알고 열심히 끌어올렸더니 고기가 아니라 눈도 없고 코도 없는 큰 돌미륵이었다.
낚싯줄을 때어내고 그 돌미륵을 바다에 던져넣고는 다시 낚싯줄을 들이치면 또 그 돌미륵이 걸려 올라오곤 했다.
한나절을 이렇게 되풀이 하다가 이상하게 생각한 윤동지는 그 돌을 싣고 화북(禾北)포구로 돌아와 선창에 올려놓고 다시 고기잡이를 나갔다.
그 때부터는 고기가 많이 잡혔다.
미륵돌을 선창에 던져 놓은 윤동지는 그 후 까마득히 그 돌을 잊어버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병이 들었다.
얼굴이 허물어지고 피부가 갈라지는 병이었다.
갖가지 약을 써도 낳지를 않아 용하다는 점장이를 찾아 문점을 했다.
요왕[바다]으로 올라 온 은진 미륵에게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 때야 바닷가에 버렸던 돌덩어리를 생각해 낸 윤동지가 그 곳으로 나가보니 큰 미륵돌이 아무렇게나 내버려져서 몹시 더럽고 금이 가 있었다.
윤동지는 그 돌을 마을 입구로 옮겨 굿을 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후로는 새해가 돌아올 때마다 과세를 하고 수호신으로 모셨는데 그 때부터는 윤동지집안에 궂은 일이 생기지 않고 큰 부자로 살게 됐다고 한다.
신조롱이가 죽자 마을주민들은 그 미륵돌 옆에 신조롱이의 형상을 한 돌을 세우고 정기적으로 제를 지내게 됐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불교와 민간신앙 생활현장서 융화

성주신은 제주(濟州)에만 특이한 것은 아니다.
새 집을 짓거나 집을 사서 입주했을 때 벌이는 성주풀이굿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서 이에 따른 신화도 전래되고 있다.
육지의 성주(城主)는 「집의 신」이라는 뜻으로 『건물이 있는 곳이면 어데나 성주가 있다』고 생각됐다.
제주(濟州)에서는 문전신(門前神)이 오히려 집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좀 더 토속적인 것으로 보이며 성주신은 뒤늦게 육지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추측된다.
신화에 나오는 「해동국 안동땅」도 경상(慶尙)도 안동(安東)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주(濟州)에서 성주풀이를 할 때는 산 속을 유랑하는 강태공서목수를 붙잡아 들여다가 나무의 신들을 쫓아낸다.
기둥이나 처마가 된 나무의 속에는 여전히 「낭낭서 패도목」이라는 잡귀신들이 있어서 그 집에 입주한 사람들에게 못된 짓을 할 우려가 많은데 강태공서목수가 굿을 하면서 도끼날로 찍어대면 이들이 쫓겨나 집안이 평안해 진다고 한다.
강태공은 중국 주(中國 周)나라 초기의 명재상 태공망(太公望)의 별칭이다.
강태공은 초야에 묻혀 낚시질을 하며 소일하다가 주나라 무왕의 발탁으로 세상에 나와 음학무도한 궁중생활을 하고 학정을 펼쳤던 은나라왕을 토벌하고 주나라를 세웠다는 인물이다.
업적이 하도 뛰어나서 후대에 소설화된 「강태공전」에서는 그가 온갖 도술을 펼쳐 은나라를 멸망시켰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 처럼 도술사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 신화에서는 신들을 쫓아내는 역할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성주는 집의 신이고 강태공서목수는 집을 지은 목수신인 셈이다.
「바다에서 올라온 미륵」에 대한 신앙은 조천·구좌(朝天·舊左)읍지역등 도내 다른 마을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미륵은 부처가 입멸한 후 56억 7천만년 후에 나타나 모든 중생을 구원한다는 메시아적인 미래불이다.
민속학자인 주강현(朱剛玄)씨는 자신이 최근에 발간한 저서 「마을로 간 미륵」에서 제주(濟州)의 미륵신앙은 생활의 현장에서 불교와 민간신앙이 융화된 것으로서 전국에서 가장 민중화된 미륵신앙으로 평가했다.
즉 제주의 미륵신앙은, 삶의 터전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장소인 바다, 즉 생과 사를 동시에 제공하는 장소에서 민중적 방식으로 출현하는 것으로서 미래불인 미륵이 민간신앙의 대상으로서 정착한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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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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