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68<

날개 잘린 아기장수 "힘이 장사(壯士)"

「대각」벼슬얻고 귀향(歸鄕)길 바다에 빠져 죽어

부(夫)대각
구좌(舊左)읍 부(夫)씨가문에서는 날개 달린 아기장수가 있었으나 아깝게 큰 뜻을 펴지 못하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다.
제주목(濟州牧)에는 고(高)씨판관, 대정현(大靜縣)에는 양(梁)씨판관, 정의현(旌義縣)에는 부(夫)씨현감이 있던 시절이었다.
부(夫)현감 집안의 한 부인이 어느 날 하늘에서 큰 용이 내려와 몸속으로 들어가는 꿈을 꿨다.
귀한 자식을 볼 꿈이라 해서 부부가 다 즐거워했다.
그날 이후 임신을 한 부인은 식욕이 엄청나게 좋아져서 소 한 마리를 잡아도 며칠만에 다 먹어버리곤 했다.
날이 차서 아기를 낳았는데 쌍동이를 낳았다.
두 형제는 날 때부터 몸집이 커서 마을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이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의 겨드랑이에는 혹이 있었는데 백 일이 지나자 날개로 변했다.
부인이 물길러 갔다오자면 마당에서 푸드득 푸드득 기러기 나는 소리가 집밖까지 들리곤 했는데 물을 비우고 집안으로 들어와 보면 아이들이 얌전히 자고 있었다.
아이들은 물오이가 크듯 당배추가 자라듯 무럭무럭 자랐다.
얼마나 컸는지 열 살이 채 안됐는데도 열 여덟, 열 아홉 살 난 소년들처럼 덩치가 크고 힘이 장사인데다가 머리도 영리했다.
아이들이 건장하게 자랄수록 부모들은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
집안에 영웅이 나면 역적으로 몰리고 역적으로 몰리면 삼족을 멸하기가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소년들이 자라면서 거동이 이상하여 하루는 밖으로 일 보러 가는 척하며 대문밖에서 살그머니 엿봤다.
두 소년이 옷을 벗는 모습을 보니 어깨밑으로 날개가 나 있었다.
한 소년이 날개를 펴서 날아가면 한 소년은 날아서 쫓아가 잡는 장난을 했다.
날개돋친 아이가 나면 관가에 알려야 했을 때였다.
관가에서 이를 알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다.
아이들의 생일을 기다린 부모는 맛있는 음식과 술을 준비하여 아이들에게 줬다.
뭣도 모르고 술을 마시고 취한 아이들이 깊이 잠들자 부모는 장도리 칼로 작은 아들의 날개를 잘라 버렸다.
그 사이에 눈치를 챈 큰 아들은 날개를 펴서 날아가 버리고 작은 아들은 한 쪽 날개가 짤려 마당까지 날아가다가 붙잡혔다.
큰 아들은 어데론가 가 버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작은 아들만 날개가 잘린 채 살았다.
날개가 잘리긴 했으나 작은 아들은 힘이 장사여서 인근에서는 당할 자가 없었다.
눈은 부리부리하게 커서 비위가 틀어져 눈만 번쩍하게 떠도 지나가던 사람이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못박혀 서곤 했다.
그는 커서 사공이 됐는데 배를 한 손으로 들고 다닐 정도였다.
어느 해 인가 어전에서 무과과거를 본다고 하여 부(夫)씨 청년도 서울로 올라갔다.
남들은 문으로 들어갔으나 이 청년은 한 손으로 담을 짚고 나는 듯이 넘어 과거장으로 들어갔다.
힘도 장군이고 달리기도 일등이었는데 낙방하고 말았다.
삼천선비들이 모두 급제를 하여 돌아갔으나 이 청년은 그대로 과거장에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상시관(上試官)이 물어봤다.
『너는 어떤 인간이길레 안 가는 거냐』
『나는 제주도 고양부 부씨요. 나는 왜 급제를 안 주는 거요』
화가 난 부(夫)씨 청년이 눈을 부릅뜨자 놀랜 상시관이 무서운 김에 「대각」벼슬을 내려줬다.
그래서 이때부터 부(夫)대각이라고 불리게 됐다.
병졸들을 내주자 부(夫)대각은 제주(濟州)로 배를 띄웠다.
앞 배에는 전령들이 타고 뒷 배에는 자신이 타고 제주(濟州)바다를 다 건너올 때였다.
한라산(漢拏山)봉우리가 조그맣게 보이자 기세가 좋은 부(夫)대각이 펄쩍 뛰어 올랐다.
어릴 적 생각에 단숨에 날아갈 것 같아 뛰어오른 것인데 그만 바다에 빠져 숨지고 말았다.
바닷속에 빠진 그는 간 곳이 없어져 시체도 찾지 못했다.
부하들만 집에 와서 그 사실을 고하니 부(夫)대각덕에 고생이나 면해 보려던 부(夫)씨집안에서는 크게 실망했다.
부(夫)대각이 입던 홋 적삼을 꺼내 바다에서 굿을 하여 혼을 부르고 평대(坪岱)리 남쪽 산에 헛 봉분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변방인 차별에 대한 반감 담겨

「날개 달린 아기 장수」의 이야기는 중앙집권제 치하의 변방에서 흔히 발견되는 설화의 유형이다.
제주도 부(濟州島 夫)씨가문에서 전해 지는 이 이야기도 아기장수 설화의 일종이다.
날개는 제거되며 그로 인해 화는 모면하지만 반대급부로 큰 인물이 탄생하지도 못하게 된다.
이런 류의 이야기도 풍수지리와 관련된 설화유형처럼 중앙집권화과정에서의 정신적 속지화와 변방의 인물에 대한 차별정책등이 반영돼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고려·조선(高麗·朝鮮)시대 제주(濟州)사람들은 서울에 가서 과거를 치르기가 힘들었고 또 어쩌다 힘들게 급제, 관료로서의 재능도 인정받았다 할 지라도 제주(濟州)출신이라는 사실때문에 높은 벼슬을 하지는 못했다.
변방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만 가지고 중용되는데 걸림돌이 됐었던 것이다.
부(夫)대각의 이야기는 민간설화와 민간신앙의 현장에서 구송되는 신화, 두 가지로 전승되고 있다.
구좌(舊左)읍 평대(坪岱)리의 부(夫)씨가문에 의하면 부(夫)대각의 본명은 부시흥(夫時興)으로 조선(朝鮮)시대 인조(仁祖) 4년[1626년] 어모(禦侮)장군 벼슬을 지낸 아버지 부경필(夫景弼)과 어머니 김해 김(金海 金)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힘이 장사였으므로 부대각(夫大脚)이라고 불렸는데 무과에 급제하여 숙종(肅宗)때 서울에서 관리를 지냈으며 명월(明月)만호로 제수되어 제주(濟州)로 귀향하던 중 바다에서 숨졌다.
바다에서 숨진 일이 당시 제주(濟州)목사의 간계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래된다.
반면 일부 부(夫)씨집안에서 굿판이 벌어졌을 때 구송되는 신화는 이 주인공을 「부대감」이라고 하며 배에서 한라산(漢拏山)까지 날아오려다가 바다로 떨어져서 없어졌다고 전한다.
부(夫)대각의 부모도 정의현(旌義縣)현감이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는데 고양부(高梁夫)씨가 제주도(濟州島)를 일·이·삼도(一·二·三徒)로 나눠 다스렸다는 신화를 원용, 제주목(濟州牧) 판관이 고(高)씨, 대정(大靜)현감이 양(梁)씨, 정의(旌義)현감이 부(夫)씨라고 설정한 점이 그럴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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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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