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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高)전적 <1>

미니해설
제주(濟州) 삼신안의 이야기는 학계를 중심으로 많이 채집된 얘기다.
「고전적」은 고봉래(高蓬萊)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실제 인물인 고홍진(高弘進)으로 알려졌다.
또 「월계 진좌수」는 한림(翰林)읍 명월(明月)출신인 진국태(秦國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곡성」은 「곡성(谷城)」의 현감을 지냈기때문에 그렇게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 사람은 동시대인으로서 친구처럼 같이 다녔다고도 전해지는데 실제 인물들의 연대를 보면 사실과는 다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홍진(高弘進)은 1602년생으로 조선(朝鮮)시대 선조-숙종(宣祖-肅宗)때 인물로 현종(顯宗) 7년 65세의 나이에 성균관(成均館)에서 실시한 식년시에 합격하여 전적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그는 이원진(李元鎭)이 제주(濟州)목사로 있었던 1653년 이(李)목사와 함께 「탐라지(耽羅志)」를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다.
일부 전설에는 고전적, 즉 고홍진(高弘進)이 명도암 김진용(明道巖 金晋鎔)선생의 제자였던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김진용(金晋鎔)은 1605년생으로 출생연도로는 오히려 고홍진(高弘進)보다 나이가 아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월계 진좌수는 조선(朝鮮)시대 영조(英祖)때 인물로 고전적과는 시대적으로 다른 시기에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세 인물이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신격화됐다.
김진용(金晋鎔)선생이 거주하면서 마을이름이 「명도암」이 된 제주(濟州)시 명도암에는 뚜렷한 연유가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고전적을 모시는 「도욕남밭당」이 있었다.
이 당에는 신병(神病)이 들렸으나 심방이 되지 못해 숨진 고전적의 딸에 관한 신화가 남아 있다.
이 당의 「고전적」이 명지관(地官)인 고전적과 같은 인물이었는지 다른 인물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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