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70<

「전적(典籍)」벼슬도 아버지묘(墓) 잘쓴 덕

욕심많은 자엔 화(禍)자초 묏자리 정혈해줘

고(高)전적 <2>
소(蘇)목사가 고전적(高典籍)을 서울로 데리고 올라갈 때 일이었다.
길가에 아기무덤처럼 작고 볼품없는 무덤이 있었다.
잘됐다 싶은 목사가 고전적에게 물었다.
『저것도 무덤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거 제주(濟州)목사 하나 나겠습니다』
그 무덤은 바로 목사의 할아버지묘였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덕에 제주(濟州)목사 3년을 살았던 셈이었다.
소목사는 『귀신같은 놈』이라고 혀를 내두르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로 고전적(高典籍)에게 전적벼슬을 내려줬다고 한다.
서자인 고전적(高典籍)이 전적 벼슬이라도 하게 된 것은 부친의 묘를 잘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작은 아들이었다.
형은 동생이 지리로 유명하니 구산(求山)을 할 것으로 믿고, 고전적(高典籍)은 형님이 계시니 자기가 앞장 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서로 잊고 있었다.
토롱을 해 놓고 1년 가까이 된 후에야 형이 동생을 청하여 산을 보게 했는데 고전적(高典籍)은 서귀(西歸)읍 「도래미」[월라봉(月羅峯)]에 가서 자리를 하나 골랐다.
『형님 이만하면 아버지 묻을 만 합니다』
『이게 무슨 형인고』
『역두(力頭)형입니다』
역두란 남근 모양이란 말이었다.
『그러면 배(配)가 있느냐. 옥문(玉門)이 있어야 하는데』
『저기 제제기 오름이 옥문형입니다』
고전적은 바닷가쪽 보목리경에 있는 산을 가리켰다.
이 산은 여인이 알몸으로 앉아있는 형국이라는 곳이었다.
『그러면 저 옥문이 살아있느냐』
『예, 물이 납니다』
내려가 보니 산기슭 밑으로 생수가 졸졸 흐르고 있었다.
그만하면 쓸 만하다 해서 장사를 하게 됐다.
광중(壙中)을 거의 다 팠는데 땅에 구멍이 툭 터졌다.
역군들이 구멍이 터져 장사를 못하겠다고 수근거리자 고전적(高典籍)이 달려가더니 상복을 재빨리 벗어 둘돌 말아 그 구멍을 꽉 막았다.
『그대로 하관하시오. 갑반(甲班)과거 하나는 날테니 그만하면 되었지』
이렇게하여 장사를 치렀더니 과연 얼마 안 가 그가 전적이 됐다.
전적이 된 후, 고전적은 「터진 땅에서 갑반 과거 하나 났으니 그만 떠나자」 하고 아버지 묘를 이장해 버렸다고 한다.
그 후 얼마 안 가 구좌(舊左)면 뒷개[북촌(北村)] 이(李)씨집에서 그 자리에 장사를 지내고 싶다고 양해를 구하러 왔다.
고전적은 「우리는 이미 떠났으니 어서 쓰라」고 허락하고 원래 묻었던 자리에서 한 광중 내리앉혀 개광하도록 했다.
이 자리에 묘를 쓴 이(李)씨집안에는 그후 얼마 안가 무과벼슬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고전적(高典籍)이 정혈을 해 줬다고 해서 반드시 잘 되지는 않았다.
욕심이 많은 경우에는 오히려 잘못된 묏자리로 인해 화를 입기도 했다.
한 번은 고전적(高典籍)의 형이 자신의 묏자리를 봐달라고 청했다.
그래서 명월(明月)리 「개꼬리오름」에 자리를 봐 줬는데 욕심이 많은 형인지라 마음에 차지 않았다.
『네 묘자리는 어디냐』
『난 저 서근오름에나 묻힐 생각입니다』
지형을 보니 동생의 묘자리가 훨씬 좋아보였다.
『우리 서로 누울 자리 바꾸는게 어떠냐』
『좋을 대로 하십시오』
그래서 둘의 묘자리가 바뀌었는데 형이 묻힌 자리는 지형과 사람이 어울리지 않아 그 후손은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고전적(高典籍)은 그의 조카를 위해서도 땅을 봐준 적이 있었다.
『이곳은 부지(富地)니 소가 많아 생길 것이다. 소 열댓마리 생기면 내게 송아지나 하나 다오』
『송아지가 무엇입니까. 큰 소라도 드리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소가 불어 금새 열다섯마리를 넘었다.
그러나 욕심이 생긴 조카는 이 핑계 저 핑계하며 소를 주지 않았다.
소가 늘어 외양간을 옮기게 되자 이번에도 고전적(高典籍)이 자리를 봐주었다.
그런데 외양간을 옮기자 마자 소가 죽기 시작하여 한 마리도 없게 돼 버렸다.
괘씸하게 생각한 고전적(高典籍)이 나쁜 장소를 가리켜 줬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관(地官)은 돈이나 대우를 바래서 땅을 봐줘서는 안된다고 한다.
고전적(高典籍)도 아무에게나 땅을 봐주지는 않았다.
애월(涯月)읍 고내(高內)리출신 양반가문 홍(洪)씨 집안에서 청했을 때였다.
첫째 둘째 아들이 와서 청해도 가지 않던 그는 셋째 아들까지 와서 거만한 행동을 사과하고 정중하게 청한 후에야 묏자리를 봐줬다고 한다.
한번은 서귀포 동홍(西歸浦 東烘)리의 현령집안에서 산을 쓴 일이 있었다.
고전적(高典籍)이 하도 유명해서 모셔다 놓으니 자리를 볼 생각은 않고 먹고 놀기만 했다.
아침에 밥을 먹으면 야산으로 나가서 따뜻한 햇볕을 쪼이며 이를 잡다가 날이 저물면 돌아오기를 석달동안 했다.
드디어 화가 난 주인집에서 인상이 험악해지자 할 수 없이 정혈을 하고 말했다.
『석달만 더 기다렸으면 삼대가 내리 문과급제할텐데 오래 폐를 끼칠 수 없으니 할 수 없다. 이곳에 산을 쓰면 사랑문은 안 닫히겠으나 대대로 양을 들여야 할거요』
그후 그 집안은 사랑방에 손님이 그치지 않을 정도로 영화가 이어졌으나 번번이 대가 끊길 처지에 놓여서 양자를 들여야만 했다고 한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서민들의 영웅 소박한 무용담

그리스·로마나 서구의 신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웅들은 화려한 무공과 업적을 자랑한다.
그러나 제주도(濟州道)신화의 주인공들은 땅을 잘 보는 지관이거나 병을 잘 고치는 의사이거나 미래를 예언하는 점장이이다.
서구의 신화의 주인공들이 지배계층의 무용담과 힘을 대변하는 존재들이라면 고전적(高典籍)·월계 진좌수·문곡성과 같은 제주(濟州)의 주인공들은 피지배계층, 즉 민중의 영웅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서자출신이거나, 고작 좌수의 대우를 받거나, 시골의 현감을 지낸 인물들이다.
세 인물이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으나 제대로 대우를 받지도 못했다.
그러나 정작 민중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 힘없는 영웅들이었다.
약탈당하고 수난을 겪어 온 민중의 역사에 있어서 힘 세고 강한 자는 숭배의 대상이 되지도 인구에 회자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죽어서 묻힐 자리를 봐주는 지관, 죽을 병도 고쳐주는 의원, 불안한 미래를 예고해주는 점장이야말로 서민들의 욕구와 고충을 달래주는 해결사가 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양반계층과 욕심많은 사람들을 우롱하는 이야기도 끼어있는 이같은 소박한 「무용담」들 속에는 그러므로 부조리한 사회와 지배계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까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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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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