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71<

「여의주」삼킨후 의술(醫術)에 신통력

임산부의 출산 돕는데 탁월한 기량 발휘

월계 진좌수 <1>
명의(名醫) 월계 진좌수는 가만히 앉아도 사람의 뱃속을 환하게 들여다 보았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는가 하면 손만 만져도 완치가 되고 말만 건네도 병이 나았으며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길가의 풀만 가리켜도 약, 문에 붙은 창호지를 떼어 줘도 약이 됐다고 한다.
월계 진좌수는 어린 때부터 유별나게 똑똑하여 서당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은 글까지 모두 알았다.
한 번은 어린 서생이 훈장에게 물었다.
『귀양감을 유배라고 하는데 왜 흐를 유(流)자를 씁니까』
『그런 것까지 벌써 알 필요없다.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옆에서 듣던 진좌수가 그 아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물은 흐르면 돌아오지 않고 귀양을 가도 돌아올 수 없으니 흐를 유자를 쓴거지』
대답을 제대로 못해 어물거렸던 훈장은 어린 진좌수의 대답을 듣고 내심 깜짝 놀랐다.
또 한 번은 훈장이 말방아를 놓고 글을 지으라고 했더니 진좌수가 「외병천북두 중추지락양(外柄天北斗 中樞地洛陽)」이라고 했다.
말방아가 빙빙 돌아가니 그 자루는 북두칠성이 계절에 따라 도는 것과 같고 가운데 기둥은 중심을 이루니 낙양땅과 같다는 뜻이었다.
지금의 한림(翰林)읍 옹포(瓮浦)리경에 살았다는 진좌수는 한경(翰京)면 지경에 있는 서당에 다니느라고 매일 10여리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길가에 예쁜 처녀가 나와 있다가 진좌수가 가까이 오면 불러서 놀다가게 하곤 했다.
그 일이 생긴 후부터 진좌수의 얼굴에는 날로 핏기가 없어졌다.
훈장이 걱정되어 물었다.
『요즘 무슨 일이 있느냐』
『별 일 없습니다』
『그런데 왜 얼굴이 파리하냐. 숨김없이 말해 봐라』
『사실은 서당에 오려면 꼭 한 아가씨가 나타나서 놀다오게 하는데 구슬을 입에 물었다가 내 입에 전해주고 다시 내 입에 놓았던 구슬을 받아 자기 입에 넣고는 합니다』
훈장은 그 말을 듣자 곧 늙은 여우의 농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옛날에 여우가 아리따운 여인으로 변해 사람을 홀리는 일은 심심치 않게 생기는 일이었다.
『내일 다시 그 처녀를 만나 구슬을 주거든 꿀꺽 삼켜버리고 하늘과 땅을 보고 사람을 보아라』
『알겠습니다』
다음날 진좌수가 처녀를 만나 구슬을 받자 냉큼 삼켜버렸는데 구슬을 삼키자마자 화가 난 처녀가 여우로 변신해 덤벼들었다.
겁이 난 진좌수는 하늘이고 땅이고 볼 생각을 못하고 정신없이 달아나다가 지나가던 사람을 만나 겨우 목숨을 건졌다.
진좌수가 삼켰던 구슬은 여의주라고도 하고 야광주라고도 전한다.
그때부터 그는 사람의 일이라면 훤히 꿰뚫게 됐다고 한다.
훈장이 시킨대로 하늘과 땅을 봤더라면 위로는 하늘의 뜻을 알고[상통천문(上通天文)] 아래로는 지리에 밝게 됐을 터인데[하달지리(下達地理)] 겁이 나서 사람만 찾았기 때문에 의술에만 밝게 됐다는 것이다.
진좌수는 특히 임산부의 출산을 돕는데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어느 날 한 마을을 지나가는데 곡소리가 들렸다.
연유를 알아보니 그 마을의 한 산모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것이다.
집안으로 들어가 진맥을 해 보니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진좌수가 배에 침을 하나 놓자 갑자기 아기가 빽소리를 지르며 태어났다.
산모도 깊은 숨을 몰아쉬며 되살아났다.
신기하게 생각한 사람들이 진좌수에게 어떻게 된 연유냐고 물었다.
『아기가 너무 건강해서 왼손으로 에미의 숨통을 꽉 잡고 놓지않고 있길레 한 침 놨지요』
진좌수가 돌아간 후에 사람들이 태어난 아기를 자세히 들여다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에미의 숨통을 쥐었다는 왼손 손톱밑에 침자국이 있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또 다른 마을에서는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가 임신하여 죽도록 고민하고 있었다.
들길을 가다가 밭에서 하염없이 김을 매고 있는 이 처녀를 본 진좌수가 처녀를 넌지시 불렀다.
『그대로 있다가는 살기 힘들겠다. 내가 침을 한 방 놔 줄 테니 집으로 들어가서 대변이 마려우면 눕되 그것을 보지는 말아라』
침을 맞은 처녀는 진좌수말대로 대변이 마려워 변을 봤다.
그랬더니 동산만큼 불러오르던 배가 쑥 가라앉았다.
이상하게 생각한 처녀가 뒤를 돌아다 봤더니 큰 뱀이 죽은 채 나와 있었다.
처녀의 아버지가 그 말을 듣고 뱀을 묶어 나뭇가지에 달아매 두었는데 한참 후에 가보니 긴 머리카락에 보리쌀 한 방울이 꿰어져 매달려 있었다.
진좌수가 이렇게 의술이 형통하니 사람들이 그것을 흉내내려다 오히려 생명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
어느 해인가 이른 새벽에 한 동네사람이 달려와 부인이 해산을 못해 죽게 됐다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잠이 채 깨지 않은 진좌수는 『거 문지방이나 깎아 살라 먹이지』하고 잠코대처럼 말했다.
우스운 처방이라고 생각이 됐지만 워낙 신통한 의원인지라 그대로 했더니 거짓말처럼 순산이 되었다.
며칠 후에 다른 여인이 난산을 했는데 아침부터 아프기 시작한 배가 저녁이 되도록 낫지 않고 아이도 나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진좌수에게 처방을 물으러 왔는데 마침 진좌수는 집에 없었다.
『문지방을 깎아 불살라 먹이시오』
진좌수의 부인이 옆에서 들었던 풍월로 처방을 했는데 그대로 해도 해산이 되지 않고 오히려 더 고통스러워했다.
나중에 그 말을 들은 진좌수는 깜짝 놀랬다.
『아침에는 문을 여는 때라 문지방을 깎아먹이면 되지만 저녁에는 문을 닫을 때인데 그러면 더 해산이 힘들지 않겠는가』
화가 난 진좌수는 부인의 잘못을 책망하여 침을 주어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다고도 전한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순산 도운것 이외에 낙태 인술도

진좌수를 명의로 만든 여우의 이야기는 육지의 전래동화에서 차용된 듯 하다.
제주(濟州)에서는 여우가 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여우에 관한 설화도 좀체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해산에 관한 지식이 충분치 않았던 옛날에는 부인이 아이를 낳다가 죽거나 사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아이를 낳도록 돕는 일은 큰 일이었다.
진좌수는 남성이면서 산파역을 했으니 이름이 날만도 하다.
그는 순산을 도왔던 이외에 낙태도 시켰던 것 같다.
처녀의 몸 속에서 죽은 뱀이 나왔다는 것은 낙태를 했다는 말을 숨기기 위해 둘러댄 것으로 받아 들여진다.
유교적 도덕률이 엄격한 시대에 처녀가 원치 않은 임신을 했으니 낙태를 해 주는 것도 인술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지방을 살라먹게 했다는 둥 하는 처방은 터무니 없는 것이겠지만 단순히 『아이낳는 것을 잘 도와줬다』는 정도의 이야기 가지고는 인구에 회자할 만한 얘기가 되지 않으니 조금 변형된 것이다.
궁핍하고 힘들게 살던 시절 이렇다할 보수도 받지 않고 사람들의 생명을 자신의 것처럼 구해 준 진좌수의 신통한 의술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사이에 강퍅한 마음들을 기분좋게 어루만져 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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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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