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74<

죽어서도 묘소 찾아오는 환자들 구환

반상(班常) 의식않고 백정집딸 며느리로 맞아

월계 진좌수 <4>
진좌수가 사람의 일이라면 모두 사리에 맞게 판단하고 행동했는데 그중 사람들에게 의아심을 샀던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며느리를 굳이 백정의 딸로 맞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이면에는 남 모르는 사연이 있었다.
어느 날 진좌수가 밤길을 가고 있었는데 맞은 편에서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급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보통 할머니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 물어보았다.
『어데로 급히 가는 할머닙니까』
『자네는 어디로 가는가』
『난 그저 밤길 걷는 나그넵니다』
『난 대정(大靜)고을도 가고 정의(旌義)고을도 가야 하네』
할머니가 밤길로 명월진(明月鎭)[현재의 한림(翰林)읍]에서 대정(大靜)도 가고 정의(旌義)[지금의 성산(城山)지역]도 간다는 게 예삿일이 아니었다.
『뭐하는 할머닌데…』
『난 삼신(産神)할망인데 대정(大靜)고을에는 아들을 점지하고 정의(旌義)고을에는 딸을 점지하러 가네. 대정(大靜)고을에서 날 사내아이는 하루에 띠 세 집치를 타고 나고, 정의(旌義)고을의 계집아이는 백정집안이지만 하루 백미 세 홉씩은 타고 날거야』
갈 길은 바쁜데 젊은이가 꼬치꼬치 캐물으니 귀찮아진 할머니가 물어보지 않은 말까지 모두 말해주고 황급히 길을 갔다.
이 말을 잊지 않고 있던 진좌수는 아들이 나이가 들자 정의(旌義)고을 백정집안의 딸에게 청혼했다.
반상을 무시하고 청혼을 했기 때문에 백정집에서 깜짝 놀랐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진좌수도 늙으니 실성을 했다』는 말까지 나돌았으나 진좌수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백정집 딸을 며느리로 맞아들이고 나서 진좌수가 세상을 떠났다.
내키지 않은 결혼을 시켰던 친족들과 아들은 진좌수가 죽자 며느리를 천한 집안의 딸이라고하여 집에서 내쫓아 버렸다.
갈 곳 없이 쫓겨난 며느리는 길가에 앉아 울고 있다가 도부장사를 만나 부부가 됐다.
산간마을에 가서 밭을 일구며 살았는데 농사가 잘 되어 금새 부자가 됐다.
백정가문에 태어날 때 큰 복을 받고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부자가 되어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데 옛 남편의 가문이 망하여 거지가 됐다는 소문이 들렸다.
불쌍하게 생각한 부인은 어느 날 남편과 의논하여 거지잔치를 열었다.
두이레 열나흘 동안 잔치를 열었는데 마지막 날 저물녘에야 옛 남편이 찾아왔다.
부인은 옛 남편에게 새 옷을 해 입히고 음식을 잘 대접하고 쌀까지 한 가마 등에 지워서 보냈다고 한다.
진좌수는 죽은 후에도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줬다고 한다.
그가 죽기 며칠 전에 아들을 불러 유언했다.
『머지않아 웬 사람이 올테니 궤 위에 놓아둔 약방문을 내주어라』
며칠 후 어떤 사람이 부친의 병이 위독하여 약을 구하러 명월진(明月鎭)의 진좌수를 찾아왔다.
마을로 들어서려다 보니 진좌수가 말을 타고 어데론가 가고 있었다.
『약방문을 얻으러 오는데 어디를 가십니까』
『나는 가야할 곳으로 가고 있으니 걱정 말고 내집에 가보게』
약방문을 얻으러 온 사람이 진좌수집에 가 보았더니 그가 방금 죽어서 가족·친지들이 모여 장례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약방문을 내줬다.
진좌수는 저승으로 가면서도 누가 무엇 때문에 찾아올 것인지를 알고 미리 처방을 해뒀던 것이다.
장사나 현인들의 묘에서 밤을 지새면 병이 낫는다는 말이 전해진다.
진좌수의 묘에서도 병을 고친 사람들이 있었다.
학질로 고생하던 어떤 사람은 진좌수 가족들에게 사정하여 그의 묘에서 하룻밤을 지냈는데 백발노인이 나타나 침을 주는 꿈을 꾸고는 그대로 병이 나았다.
진좌수의 후손들 중에도 그의 무덤에 가서 잠을 자고는 병이 나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또 진좌수같은 신인들의 무덤에 세워진 동자석의 코를 깎아다 갈아 먹으면 병이 낫는다는 말이 있어서 무덤에 세워진 동자석의 코를 많이 쪼아갔다고도 한다.
제주에는 의성(醫星)이 비추기 때문에 옛부터 의술에 능한 사람이 많았다.
진좌수가 못 고치는 병을 고쳤던 목자(牧者) 만일이의 이야기도 남아있다.
구좌(舊左)면 송당(松堂)리 인근에 문일이라는 목자가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그집 주인의 딸이 어깨뼈가 탈골되어 한쪽 팔을 들은 채 내리질 못했다.
주인이 진좌수를 청하여 병을 보게 했는데 천하의 진좌수도 쉽게 고치지 못해서 난처한 지경에 이르렀다.
부엌에 쭈그리고 있던 문일이가 『그까짓 병을 못 고쳐?』하고 비웃었다.
마침 밥하는 종년이 그 얘기를 듣고 마님에게 고해 바쳤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라고 욕은 들었으나 병을 고치는 것이 우선이라 문일이를 시켜보기로 했다.
부엌에서 나온 문일이는 주인집 딸의 속옷을 모두 벗기고 치마만 입혀서 나오게 했다.
마당에 서있는 딸을 보던 문일이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치마를 위로 휙 걷어올렸다.
속에 아무 것도 입지 않았던 처녀가 부끄러워서 얼른 팔을 내려 알몸을 가렸는데 그때 병이 나아버렸다.
진좌수가 집으로 돌아갈 때 문일이가 말고삐를 잡았다.
문일이는 진좌수가 말을 타고 가면서 손끝이 아려서 고생하는 걸 봤다.
『메밀그릇에 쌀깨풀[오랑캐꽃]』
문일이가 못 보는 척 하면서 혼잣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진좌수가 곧 깨닫고 인근 메밀밭에 들어가서 쌀깨풀을 캐서 손톱에 처매자 손톱끝이 허물처럼 탁 터져 나아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진좌수도 문일이를 인정했다고 한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허례·허식 배제한 실학자적 면모

백정의 딸과 자신의 아들을 혼인시킨 이야기는 양반과 상놈을 구별하지 않으려는 성품을 보여주는 것 같다.
큰 죄로만 여겨지는 낙태의 인술을 베풀었다든가, 가문을 의식하지 않고 부지런함을 으뜸으로 쳐서 사돈을 맺었다는 이야기들은 16세기말~17세기 우리나라에 나타났던 실학자들을 연상시키는 것으로서 진좌수의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진좌수의 의술은 동의보감을 공부해 얻은 것이라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동의보감은 허준이 선조의 명으로 편찬한 것으로서 17세기초 광해군때 완성됐다.
「3백년전」이라는 진좌수의 생존연대를 봤을 때 동의보감을 통해 의학지식을 얻었거나 실학파와 같은 생각을 했다는 짐작이 근거가 없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죽기 전에 찾아올 환자를 미리 알아서 처방을 해뒀다는 이야기는 사전에 주문을 받은 것을 처방해 뒀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죽기 직전까지 남의 병을 걱정하여 약을 처방해 둔다는 것은 진좌수의 의사로서의 인품을 짐작케 한다.
목자 문일의 이야기는 진좌수의 명성을 흠모한 사람들이 지어낸 우스갯소리처럼 보인다.
어깨뼈가 탈골한 처녀를 고치는 일화는 진좌수가 목사의 목에 걸린 뼈를 뽑아내던 방법과 흡사하다.



종합안내|교통|숙박|명소|레포츠|해수욕장|등산|낚시|쇼핑|음식|날씨|지도|전화번호|DB

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Copyright 1996 SOOASUNG ( All rights reserv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