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일보 高大卿기자】


제주도神話 순례

神들의 故鄕 >75<

"점술(占術)에 명인"…곡성(谷城)현감 역임

제주에 앉아 중국(中國)황실 병자(病者)도 구환 일화

문곡성
제주(濟州)의 세 명인중 가장 이야기가 적게 전해지고 있는 것이 문곡성이다.
문곡성의 이야기는 주로 세 명인이 같이 행한 행적이나 진좌수와 얽힌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문곡성」이라는 호칭은 그가 전라(全羅)도 곡성(谷城)현의 현감을 지낸 적이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그가 곡성의 현감직을 지내게 된 것도 뛰어난 점술실력덕이었다고 전해진다.
풍수에 능했던 고전적과 의술에 밝았던 월계 진좌수, 또 점술사인 문곡성은 서로 친하여 같이 어울려 다닌 적이 많았다.
한 해는 세 명인이 육지에 나가 전라도 곡성지방을 지나갈 때였다.
마침 귀한 손님들이 온다는 점괘를 듣고 기다리던 그곳의 한 대감이 세 명인을 반가이 맞았다.
대감은 그들에게 식사를 잘 대접한 후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야외로 나갔다.
평소에 잘 봐두었던 자리에 앉은 대감은 고전적을 불러 물었다.
『여기 어디 명당자리가 없을까』
『대감이 앉은 자리가 바로 명당이요』
벌써 이곳의 지리를 훤히 읽고 있었던 고전적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허, 자네는 그만하면 밥께나 얻어먹고 살겠네』
집으로 돌아 온 대감이 이번에는 엽전 일곱 개를 바닥에 놓은 후 놋대야를 덮고 문곡성에게 물었다.
『이 속에는 무엇이 들었느냐』
『엽전 일곱 닢 정도 들었을 겁니다』
『너도 밥은 얻어 먹고 살겠다』
그 집에는 병약한 며느리가 있어서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진좌수의 의술을 시험해보기 위해 불러 세웠는데 며느리가 부끄러워하여 진맥하기를 어려워 했다.
『우리집에 몸이 약한 며느리가 있어 진맥을 한 번 해보려고 했는데 손목 잡히는 걸 꺼려하니 진맥을 하지 않고 병을 아는 방법은 없겠는가』
『있습지요』
진좌수는 실을 며느리의 손목에 묶어 그 끝을 방밖으로 내놓게 했다.
『며느님은 곧 죽겠습니다』
『어째서』
진좌수가 자신있게 말하니 대감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열은 있지만 맥이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놋쇠의 몸에서 나오는 듯 하니 어찌 살겠습니까』
이미 두 명인의 신통한 능력을 본 참이라 깜짝 놀란 대감이 방안으로 들어가 보니 며느리의 손목에 묶여야 할 실이 청동화로 다리에 묶여 있었다.
섬에서 온 촌놈들이라고 우습게 여긴 며느리가 장난을 친 것이었다.
진좌수가 그후 진짜 그 대감 며느리의 병을 고쳤는지 여부는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그것으로서 세 명인의 탁월한 능력은 모두 입증된 셈이었다.
대감은 세 명인 중 문씨에게 전라도 곡성의 현감 자리를 내줬다고 하며 그 후 점술가 문씨를 부르기를 「문곡성」이라고 했다고 한다.
세 명인의 명성이 멀리 중국(中國)에까지 미쳤다.
어느 해인가 중국 황실의 한 귀인이 병이 들었는데 천하의 명의·술사들을 모두 초빙하여도 병을 고치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이야기가 와전되어 그 병자가 황후였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황태자였던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제주(濟州)에 무슨 병이라도 잘 고친다는 명의 진좌수와 뛰어난 점술가 문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안 중국의 황실은 사신을 보내어 이들을 중국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진좌수는 중국까지 갔다 올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여 걱정하고 있었다.
사신들이 독촉하자 문곡성은 태연히 앉아서 말했다.
『중국까지 갈 일이 뭐 있소. 병만 고치면 될 일이 아니요』
한 며칠 수양을 한 문곡성이 점을 쳐 보니 『자참부두(子斬夫頭)하니 백설분분(白雪粉粉)이라』하는 점괘가 떨어졌다.
『아들이 아비의 목을 자르니 흰 눈이 펄펄 나리는도다』하는 말이었다.
사신들이 그 뜻을 물었으나 황실집안에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 문곡성은 차마 말을 하지 못했는데 분명히 무슨 연유가 있을 터였다.
곰곰 생각해 본 문곡성이 사신들에게 물었다.
『최근에 사당을 손 본 일이 있소』
『그렇소만』
『조상을 잘못 모셔 동티가 난 것이니 사당에 제를 잘 지내면 병이 낳겠소』
이역만리 떨어진 곳의 일을 쪽집게같이 알아맞추니 사신들도 놀래어 그 점괘를 들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사신들이 점괘를 들고 황실의 사당에 가서 확인해 보고는 조상의 위패들을 손본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상의 위패를 만들어 세우는 중에 윗대 조상의 위패서 커서 서로 크기가 맞지 않아 잘라 맞췄다는 것이다.
위패는 나무로 돼 있었는데 나무의 끝을 자르니 톱밥이 눈처럼 날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중국까지 가지 않고 제주(濟州)에 앉아서 황실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그림=김재경(서양화가)
미니해설
문곡성은 영조(英祖)때 실존 문영후(文榮後)로 알려져

제주(濟州)의 세 명인에는 고전적과 월계 진좌수외에 문곡성(文谷城)을 끼워넣는다.
구전자에 따라서는 양유찬이라는 인물이 문곡성대신 세 명인중 하나였다고 한다.
또 이 네 사람을 모두 합하여 「제주(濟州)의 사절(四絶)」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고전적과 진좌수의 행적이 설화상으로 뚜렷한 반면 문곡성이나 양유찬은 뚜렷하지 않은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 황실의 병을 고쳤다』는 일화는 두 가지로 전해지고 있다.
월계 진좌수의 의술이 너무 뛰어나 중국까지 가지 않고도 병을 고칠 정도였다는 이야기와 진좌수가 고민을 하는 것을 문곡성이 점술로 해결해 줬다는 이야기다.
모두 두 인물들의 뛰어난 신통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문곡성은 조선(朝鮮)시대 영조(英祖)때 실제 했던 인물 문영후(文榮後)로 알려졌다.
제주(濟州)에서 태어나거나 제주(濟州)를 거쳐간 인물들은 많다.
정치적인 이유로 제주(濟州)에 살았던 유배인들 중에서는 현재까지 전국에서 흠모받는 선비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백성들에 의해 구전되며 그 덕이 흠모되는 인물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민간신앙을 탄압했던 서린(徐憐)판관이나 이형상(李衡祥)목사의 이야기는 많이 남아있으나 이들의 무용담은 백성들로부터의 칭송을 받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적개심의 대상으로서 였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문헌이나 송덕비등에 의해 「선정관(善政官)」으로 분류되는 관헌들의 이야기도 민간에는 전해지고 있지 않거나 거꾸로 해석한 설화들이 없지 않다.
지배계층의 역사와 백성들의 역사가 일치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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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Updated on 22nd February,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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