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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곡성

미니해설
제주(濟州)의 세 명인에는 고전적과 월계 진좌수외에 문곡성(文谷城)을 끼워넣는다.
구전자에 따라서는 양유찬이라는 인물이 문곡성대신 세 명인중 하나였다고 한다.
또 이 네 사람을 모두 합하여 「제주(濟州)의 사절(四絶)」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고전적과 진좌수의 행적이 설화상으로 뚜렷한 반면 문곡성이나 양유찬은 뚜렷하지 않은 때문으로 보인다.
『중국 황실의 병을 고쳤다』는 일화는 두 가지로 전해지고 있다.
월계 진좌수의 의술이 너무 뛰어나 중국까지 가지 않고도 병을 고칠 정도였다는 이야기와 진좌수가 고민을 하는 것을 문곡성이 점술로 해결해 줬다는 이야기다.
모두 두 인물들의 뛰어난 신통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문곡성은 조선(朝鮮)시대 영조(英祖)때 실제 했던 인물 문영후(文榮後)로 알려졌다.
제주(濟州)에서 태어나거나 제주(濟州)를 거쳐간 인물들은 많다.
정치적인 이유로 제주(濟州)에 살았던 유배인들 중에서는 현재까지 전국에서 흠모받는 선비들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백성들에 의해 구전되며 그 덕이 흠모되는 인물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민간신앙을 탄압했던 서린(徐憐)판관이나 이형상(李衡祥)목사의 이야기는 많이 남아있으나 이들의 무용담은 백성들로부터의 칭송을 받은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라 적개심의 대상으로서 였던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문헌이나 송덕비등에 의해 「선정관(善政官)」으로 분류되는 관헌들의 이야기도 민간에는 전해지고 있지 않거나 거꾸로 해석한 설화들이 없지 않다.
지배계층의 역사와 백성들의 역사가 일치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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