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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성 방금 ·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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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한 '지도자 명석']
인생역경을 헤처나온 지도자 이재명! 정치역경을
헤처나온 지도자 김민석!
명석한 '지도자 명석'이 진짜 대한민국
완성하고 진짜 대한민국이 한민족 한나라
한만년 구축한다!



이진홍 2일 ·
김민석.
김민석이라는 정치인을 제가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2012년 대선 직전 이동형 작가의 이이제이
노무현 특집이었습니다. 당연히 '김민새'라는
멸칭, "새가 날아든다~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라는
노래를 이용한 조롱이었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을 만큼,
흔한 민주당 지지자들이 가졌던 그 반감 그대로
저에게도 김민석이라는 세글자가 각인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후단협(후보단일화 협의회)...
그 과정에 대한 김민석 총리의 해명에 대해서는
굳이 제가 자세히 또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24년 전의 일이고, 김민석 총리도 사과를 할
만큼 했습니다. 김어준이 진행하는 방송(파파이스)에도
직접 나와서 해당 발언들을 했었고, 그
이후에도 여러 팟케스트, 유튜브 방송에 나와서
당시에 대한 상황설명과 사과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김민석이라는 정치인이 걸어온 길을
뜯어보며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김민석이라는 존재를 처음으로 인식했던 2012년... 그때
김민석은 이미 본인의 정치적 판단과 행동(그것이
어떤 이유였든, 결과가 어떠했든)에 대해 이미
10년째 책임을 지고있는 중이었고 10년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조롱의 대상 그대로 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 김민석의 현실이었습니다. 그로부터도
14년이 지난 2026년 아직도 김민석을 향해
그 아픔을 끌어와 공격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인간 김민석을 봐주시길....많이
길더라도 김민석을 이해하시는데 조금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민석은 아시다시피 전학련 초대 의장
출신입니다. 김민석은 미문화원 사건 및
삼민투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로
5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3년을 복역하고
출소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해인 1989년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운동권 학생들과는 다르게
노동운동이나 다른 활동없이 바로 정치에 뛰어듭니다.
모두가 아시다시피 김민석은 DJ의 황태자
였습니다. DJ와 김민석은 어떻게 처음만났을까요? 김민석이
수감중이던 1987년 김민석의 둘째 형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시고 이때 김수환 추기경의 노력으로 김민석에게
귀휴조치가 내려지고 이때 조문객으로 참석한
DJ를 처음만난 것입니다. 김민석의 어머님인
김춘옥 여사는 둘째형님의 사망보상금으로
민화의 집(김민석의 둘째형님 이름)을 설립하여
구속자 가족과 수배학생들을 돌보셨습니다. 김춘옥
여사는 그 이후에 민가협 초대의장이 되십니다.(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이
민화의 집 개소식에 YS, DJ부부가 참석했다는데...
김민석 어머님이 신망이 높으셔서 그랬답니다.
어쨋든 그렇게 1989년 출소하고 1990년
노무현의 꼬마민주당에 입당하며 그것이 그의
정치의 첫출발이 됩니다. 그리고 결국
DJ의 신민주연합당과 합당하여 DJ와 함께하게
됩니다. 이때 그의 나이가 25세입니다.(정민철군
나이 정도 되려나요?ㅋ)
1992년 27세의 나이에 그는 영등포 을에
공천을 받아 민자당의 거물과 붙게 되는데...260표
차이로 패하게 됩니다. 이 선거에서 DJ가
김민석을 얼마나 아꼈는지 그야말로 전폭적인
지지를 해줬다고 합니다. DJ가 김민석을
얼마나 아꼈는지는... 이후에도 계속 말씀드리죠.
선거에서 패하고 미국으로 3년간 유학갔다가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하였고 DJ가
정계복귀를 하시고 기존 이기택의 민주당을
깨고 DJ가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가장 먼저
합류합니다.
1996년 그는 영등포 을 선거에 다시 출마해
당선되는 쾌거를 이룹니다. 그의 상대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배우 최불암씨 입니다
ㅋㅋㅋㅋ신한국당.... 아무튼 그는 15대
국회 최연소 국회의원이 됩니다. 32세에
국회의원이 된 것입니다. 이때 노무현 대통령님과도
같이 활동을 하였습니다.
DJ가 김민석을 얼마나 애지중지 했는지
일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김민석은 15대
국회에서 본인이 관심이 있던 보건복지위로
상임위를 정하려고 했으나, DJ 총재 본인이
초선시절에 재정위원회를 맡았던 것이 경제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김민석을 재정위원회에
꽂아 넣으셨다고 합니다. 저는 DJ가 김민석을
얼마나 아끼시고 그 미래를 크고 밝게 생각하셨는지
느낄 수가 있습니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시던 15대 대선 때는
김민석 단독으로 선거광고를 찍었고 'DJ와
함께' 광고에도 출연했습니다.(김종필, 박태준,
노무현, 추미애, 김민석)
집권여당이 되는 새천년 민주당의 창당작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새천년 민주당'이라는
당명자체를 김민석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DJ가
매우 흡족해 하셨다는....ㅋ DJP 연합에서
박태준과의 협상을 김민석이 이끌었고 임종석,
이인영같은 586을 끌어오는데 역할을 했던
것도 김민석입니다. 그리고 DJ의 외연확장,
동진정책으로 보수인사, 제계인사를 이끌어오는
역할을 한 것도 김민석입니다.
16대 총선에서 여의도 을에 다시 출마하여
60%를 돌파하는데 이는 현재까지도 해당 지역구의
민주당 후보 득표율중 가장 높습니다. (김민석
지역구는 서울에서도 험지 중의 험지입니다.) 그야말로
김민석의 시대였습니다.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
여론조사 2위였다고 합니다. 40세가 안된
나이에 말입니다...ㄷㄷ
1997년 대선, 국민의 정부에서 김민석이
맡았던 직함들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너무
많아서... DJ는 김민석을 선거에도 쓰고
IMF를 극복하는데도 쓰셨습니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 말기... DJ와 관련하여
여러 문제가 터지고 인기가 하락한 채로 맞이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경선을 통해
확정되지만 이명박에게 큰 차이로 패배하고
맙니다.
어떤 이들은 이해찬 총리님의 자서전을
빌어 이걸 또 김민석의 권력욕으로 공격하지만... 이
지방선거는 민주당이 이길 판이 아니었습니다. 전남,
전북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완패했습니다.
김민석은 당시 38세였고 어차피 대선에
출마할 수 없는 처지였고(나이제한 40세) 처음에는
출마할 생각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김민석에게
나가라는 압박이 들어왔고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몇일 동안 고민하며 누군가는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출마함 것이고 이때 이해찬 전 총리님을
찾아간 것 같습니다.
이때 DJ는 하야하라고, DJ는 정상적인 판단이
안된다고, 국민의 정부는 실패했다고 주장하던
그들이... 김민석을 비판하는 것이 저는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어쨋든 그 이후에... 모두가 아는 후단협.... 이것에
대해서는 길게 설명하지 않는 것이 좋겠죠.
김민석 본인이 또 다시 설득해야 할 주홍글씨이며
낙인이니까...
어쨋든... 후단협 전의 김민석이라는 정치인을
제가 알았다면... 그야말로 승승장구만 하던
포스트 DJ? 라고 설명하면 될까요? 이것이
김민석의 전부였다면 지금의 김민석은 존재하지도
않았겠죠.
후단협 문제로 무려 18년간 엄청난 고난을
겪습니다. 김민석은 말씀드렸다시피 그의
모든 인생이 정치였습니다.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만큼 정치에
대한 욕망이 큰 사람이죠. 노대통령께서
당선되시고 김민석은 바로 돌아가지 않고 2003년에
새천년민주당으로 복당합니다. 그 이후에
열린우리당으로 분당이 되는데 김민석은 열린우리당으로
가지 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척을 졌던
많은 사람들도 열린우리당에 갔고 17대 탄돌이
총선에 출마도 했습니다만.. 김민석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열린우리당 당적이 없는 것이고
이 기간에 청문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로스쿨에 진학하기도 합니다.
다른 586들은 17대 총선 이후에도 승승장구하지만
김민석은 민주당적만 유지한채 거의 야인생활을
하다가... 2008년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된
이후, 통합된 민주당 즉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으로(2위)
당선됩니다. 의원직 없이 최고위원으로요.
# 제가 주로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이 바로
이부분인데...# 2008년 노무현 대통령께서
퇴임하시고 봉하마을에 계실 때, 새로 선출된
통합민주당 지도부는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합니다. 이때
노무현 대통령님께서는 지도부를 마중나오셨고
김민석을 맞아주시는 장면이 언론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냥 김민석이
노무현 대통령님을 찾아뵀다는 것만 생각합니다.
맥락은 무시한 채....
2008년 7월 바로 이 전날, DJ께서 민주당
지도부에게 김대중 지지층+ 노무현 지지층의
복원을 당부하십니다. 이명박이 당선되고
민주당이 완전히 분열되고 갈라져 있을 때(유시민
같은 사람들은 탈당) 그나마 겨우 다시 뭉친
민주당에게 DJ가 당부하고 또 하신 겁니다.
노대통령님을 방문했을 때가 김민석이 노대통령님을
5년 만에 재회하는 자리였고... 김민석도
노무현 대통령도 여러 감정이 교차했을 겁니다. 김민석은
참여정부 동안 검찰에 의해 엄청난 고난을
겪습니다. 김민석 입장에서는 인간적인
감정이 있을 수도 있었겠죠. 김민석은 노무현
대통령께 " 김민석과 노대통령님 사이엔
제 입장에서 죄송한 역사가 있고, 또 제가
아쉬운 역사도 있다. 전당대회 이후에
저 혼자서라도 오려고 했다." 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노대통령께서는 "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의원들이 김 최고위원을 선택해 오늘 한
테이블에 앉은 것은 대의원들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공식화해한 것"이라고
김민석을 품어주십니다. 대통령께서 본인의
입으로 "역사적 공식화해" 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이때 같은 최고위원이었던 박주선(극혐하는
인간입니다. 박그네에게 붙었죠?)이 참여정부
시절 본인이 검찰에게 탈탈 털렸다고 참여정부가
너무 검찰을 놔준 것 아니냐고 개헛소리를
지껄입니다. 전직 대통령을 앞에 두고
이 오만한 태도...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그런 점이 있었던
것 같다. 박 의원께 미안하다. 오늘 이렇게
방문해 준 것은 ‘뜻있는 10년’이었는데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했던 것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복권의 절차를
밟고 있는 것" 이라고 답하십니다.(복당
추진)
이게 무슨 소리냐면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님들을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탈당시키고
모두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정청래는 과연 그 당시 어느
위치였습니까? 후... 죄송합니다.
어쨋든... 김민석과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여러 감정들과 사연을 갖고 긴 시간을 지나왔지만...
그리고 김민석이 최고위원에 당선되며 그나마
다시 길이 열리나 싶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
검찰의 칼은 김민석에게도 노무현 대통령님에게도
향하게 됩니다. 김민석 총리가 추징금과
벌금을 갚느라 지금까지도 재산이 얼마인지
아실 것입니다. 김민석은 이때 홍준표
원내대표를 찾아가 농성을 벌이기도 했었죠.
노무현 대통령께서는...그 이후 9개월 만에...
아무튼 그 이후에 김민석은 훗날 노대통령님의
자서전을 (대통령 서거 이후에 출간되었기에)
읽게 되는데... 모두가 다 아는 내용처럼...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김민석을 끌어안아 주셨습니다. 후단협
관련하여 충정이라는 말,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가 옳았다는 말.. 그리고 그의 앞날이 어려워져
안타깝다고도 해주셨던 겁니다.
김민석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요? 노무현
대통령님에게 여러 감정도 있었을 것이고(솔직히)
본인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처참한 후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김민석은 2014년에 민주당을 창당하는데(거의
1인 정당.. 이름만 민주당)... 그 이유는
당시 김한길과 안철수등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했기 때문에 언젠가 민주당의 이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정세균, 김원기, 권노갑등을 찾아가서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2016년 추미애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과의
합당이 이루어지며 민주당에 복귀하게 됩니다. 합당하고
나서도 그가 국회의원 벳지를 되찾은 것은
2020년 입니다. 그 기간동안 민주연구원장,
문재인 대선캠프 상황본부장등을 지내며 4년을
더 기다린 겁니다. 벳지를 잃은지 18년
만에,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지
11년 만에 국회의원이 된 것입니다.
2022년 대선에 김민석은 정세균 캠프에
갔습니다. 그 당시에도 정세균이 대선후보가
될 확률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세균
캠프로 향했던 이유는.... 그 힘든 시기, 정세균만큼은
벗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랍니다. 김민석이
나서서 또 누구를 지지하고 또 누구를 공격하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사실 민주당
의원들도 김민석이 누구인지를 모를 정도였다고
하니... 포스트 DJ라던 김민석이 원내대표
선거에 나갔더니 거의 표를 받지 못하는...
김민석은 여의도 을에서(안그래도 어려운
지역에서) 신경민(.... 이낙연계, 경선에서
패배하자 경선불복)을 이기고 국회에 복귀한
것입니다.
단 하나도 쉬운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김민석에게 손을 내밀어준 것이 바로
이재명 대통령님 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에게 씌워진 낙인 때문에 다가가기도 꺼려하던,
그는 그저 선거를 위해 이용해먹는.. 그러나
신뢰하지는 않는 그런 존재. 이재명 대통령은
그에게 총선을 맡겼고 본인이 가장 어려운
시절 김민석과 함께 그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부의 초대 총리를 김민석에게 맡겼습니다.
김민석 총리의 재산신고액은 2026년 3월
기준 3억3천이 조금 넘습니다. 이것도 전년대비
1억7천이 늘어난 것입니다.
그 18년의 시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태에서 검찰의 표적이 되고 정치판에서는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 2026년
한국 정치판은 정청래가 김민석에게 민주당의
적통을 따지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김민석을 이언주와 묶어 철새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김민석은 뼛속까지
민주당인 사람입니다. 민주당의 처음부터
끝입니다. 박지원 의원이 적통따지자면
정청래보다 김민석이 적통이라고 한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죠. 김민석은 처음 꼬마민주당에
입당하던 그때부터 국민통합21의 그 몇개월을
빼고는 민주당이 아닌 다른 정당에 간 적이
없습니다.
24년... 입니다. 그 24년동안 김민석에게
가해진 이 낙인이...이 폭력이... 아무리
김민석이 잘못했어도 이성윤같은 사람이 감기약
성분 운운하며 조롱할 정도의... 그런 것인가요?
DJ의 그 마음, 노무현 대통령의 그 마음, 이재명
대통령의 그 마음은... 도대체 무엇인가요?
어떻게 계엄을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예측하고
대비했던 서울의 봄 TF(김민석, 박선원등)에게... 그
엄혹한 시절 김용현과 대놓고 싸우던 김민석에게...
계엄 때 겁먹고 도망갔다는 프레임을
씌울 수가 있습니까? 도대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제가 어디서 찾아볼
수가 있는거죠?
후단협을 끌고와 노무현 대통령께서 김민석에게
배푸셨던 배려는 싸그리 무시한 채 공격해대는
최민희같은 사람들...
김민석은 노대통령께 사과라도 드리고 노대통령께서도
김민석 개인에 대한 여러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배려하셨습니다. 정청래는 어떤가요?
어떻게 사람들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습니까?
그들이 민주당의 대통령들에 대해서 도대체
어떤 배려를 하고, 그들의 뜻을 얼마만큼이나
따라가려고 노력합니까...
김민석은 또 배신할거야.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안합니다. 그 좌절과 실패의
20년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김민석을 이재명
대통령도 신뢰하는 거죠. 본인이 한 판단에
대한 책임, 국민과 당원들의 무서움을 김민석보다
더 뼈저리게 느낀 정치인도 흔하지는 않을
겁니다.
인간적으로 김민석이 너무 안타까워 새벽에
이 장문의 글을 씁니다. 이건 정말 해도
너무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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